조성될「역사향기 숲 테마공원」주변 향토문화유산
조성될「역사향기 숲 테마공원」주변 향토문화유산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6.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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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문화관광해설사, 전 부산면장)
문병길(문화관광해설사, 전 부산면장)

「역사향기 숲 테마공원」관광상품화

장흥읍 예양공원 주변에「역사향기 숲 테마공원」을 총사업비 100억원으로 2022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한반도 사방진(정동진, 정서진,정남진,정북진)테마관련 사업, 숲속 문화예술 공방사업, 주민주도형 축제 등이 추진되겠지만, 외지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아래와 같이 순환형 연계동선 관광상품을 만들어 활용했으면 한다.

장흥토요시장→예양서원→영회당(국가사적 제498호)→장흥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7호)→천도교 장흥교당(전라남도 기념물 제218호)→장흥동학혁명기념관→장흥석대들(국가사적 제498호)→동학농민혁명기념탑→장원봉→장흥읍성→장흥토요시장

◆주5일 근무제도가 시작된 2005년에 개장된「전국 최초토요시장」

관광낙후지역을 벗어나려고 전국 최초로 토요일마다 열리는 장흥토요시장을 2005년 7월 2일 개장하여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 놀거리가 풍부한 전통시장을 운영하고있다.

외지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여 중앙정부에서 2015년‘한국관광의 별’로 선정하였고‘지방행정달인’을 등극시켰으며, 2018년에는 전국 전통시장 가운데 가장 성공한 주말시장으로 발표하였다.

◆장흥지방 최초의 서원「예양서원」

장흥토요시장에서 예양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영회당 건물이 있고 그 옆에는‘예양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1521년에 신사무옥 때 장흥으로 유배되어 17년간 장흥지방의 민풍을 순화시켰던 영천 신잠 선생과 장흥성리학 선구자 천방 유호인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612년 사당을 건립하고 배향했다.

그 이후 월봉 김광원 선생을 추가 배향해오다가, 장흥지방을 유람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한 추강 남효온 선생과 고려 말 1393년에 장흥으로 유배되었던 목은 이색 선생을 또다시 추가 배향함으로써 오현사(五賢祠)라고 했다.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 훼철되었다가 현재 강당은 1927년에 중건되고, 신실은 1975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장흥부사와 관군들의 영혼을 달래는 「영회당」(국가사적 제498호)

1894년 12월 5일 새벽에 장흥읍성을 장흥동학 농민군이 공격해 방어하다 순절한 당시 장흥부사 박헌양을 비롯한 장졸 95명을 추모하기 위해 1928년에 장흥남산공원 한 컨에 세운 사당이다. 뒤편에 갑오동란 장졸 순절비각, 벽사찰방 김일원 불망비, 군수 김택규 불망비석이 있다.

◆호남5대향교 명성을 지켜온「장흥향교」(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1398년에 처음 창건된 이래 그 위치를 변경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으로 3년마다 실시되는 과거시험 문과 68명 무과 292명이 급제하여 호남 5대 향교(전주.나주.광주.남원.장흥) 가운데 하나여서 그 명성은 대단했다.

입구에 홍살문과 함께 외삼문이 있고 명륜당(유생들 강학소),성현 25분을 배향하고 있는 대성전이 있으며 600년 넘은 은행나무 2그루는 전라남도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향교 앞 좌우측에 장흥부사(府使:종3품직 벼슬아치)와 군수 선정비 등이 있으며 1881년에 세워진‘척사윤음비’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동학농민군 후세가 모였던 「천도교 장흥교당」(전남도 기념물 제218호)

동학농민군 후세들은 천도교인으로서 어렵게 살아오면서 1906년에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회진면에 있던 천도교당을 장흥향교가 있는 장흥읍 교촌리로 옮기는 규합을 보였고, 장흥지방의 3.1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중계몽 및 항일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한식형 일본식 집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전투가 벌여졌던 장흥 석대들이 보이는 곳에 2015년 건립하여 전시실(분노의 불씨, 개벽의 들불, 타오르는 불꽃, 영혼의 불)을 둘러보면서 장흥석대들 전투를 파악할 수 있다.

일반 전시실에는 동학관련 고문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이 사용했던 무기류, 역사 속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동학혁명의 최후 혈전지「장흥석대들」(국가사적 제498호)

1894년 12월 15일 동학농민혁명의 최후격전지이며 동학농민 혁명군과 일본군, 관군 사이에 많은 사상자를 냈던 전적지이다.

특히 장흥석대들 전투는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 혁명지도자가 체포된 이후에 항전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서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민족 민주운동의 역사적 장소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탑

장흥공설 운동장 좌측 윗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어지러운 정치와 외세를 몰아내고 패망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지려는 숭고한 뜻을 기리고 의로운 선현들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농민군들의 유해가 묻혔던 언덕에 1992년에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을 세웠다.

◆장원봉

장흥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장흥읍성을 오르면 장원봉(171m)이 있다.

장원봉 아래 마을(현재 장흥법원 자리)은 장흥위씨 집성촌이었고 위원개, 위문개, 위신개 등 3형제가 살았다. 위문개와 위원개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고 위신개도 과거에 급제해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은 뒷산 봉우리를 ‘장원봉’이라고 이름 하였다.

◆장흥읍성

최초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시대 성터 3km를 1422년에 고쳐쌓아 현재에 이른 것으로 전한다. 장흥도호부 주요기관이 장흥읍성안에 위치했던 관계로 동학혁명 때 많이 훼손되었으나 현재 남문지에서 동문지까지 예양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화예술회관, 가사문학공원, 팔각정, 충혼탑, 영회당이 자리하고 있어 호국성지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장흥공설운동장 등 여러 곳에서 장흥읍성을 오를 수 있으며 장흥읍 주변 아름다운 산과 들과 강을 바라볼 수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장흥도호부 동헌(현재 군청) 터

1414년부터 1949년까지 관청으로 자리했으나 장흥군청이 현재 위치로 이건 되어, 1953년 11월 3일 장흥농업기술학교로 개교되어 1973년 2월 말까지 운영하다가 그 이후 장원아파트를 건축하였다.

장원아파트 주변 공터에 “관찰사 김성근 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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