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원감국사 진영, 보림사 봉안에 부쳐
■사 설- 원감국사 진영, 보림사 봉안에 부쳐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2.2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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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국사의 위대한 문학성 조명 학술심포지엄 개최해야

가지산문의 보림사 역사에서 그 첫 출발은 784년 당나라로 가 37년 동안 남종선의 조사선(祖師禪=중국 선종 제6조 혜능)을 수행하고 귀국한 제1조 도의(道義 ?∼821)로부터 비롯된다. 도의로부터 법통을 이은 이가 제2조 염거(廉居 ?∼844)였고, 염거로부터 다시 법을 전수받아 보림사를 개창한 이가 제3조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이었다.

그러므로 보림사는 체징이 보림사(당시는 ‘가지산문’) 산문을 개창하였지만, 보림사의 법통은 체징 이전 도의에서 비롯 염거로 이어져 체징 대에서 ‘보림사 개창’이라는 결실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즉 중국 강서의 선맥(남선종)이 신라 승 도의에게 이어지고, 도의로부터 다시 염거선사 → 보조선사 체징으로 이어져 그 선맥이 보림사에서 만개되며 비로소 보림사가 한국 선종이 뿌리내리는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달마는 당唐나라의 제1조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곧 도의대사를

제1조, 염거선사를 제2조로 삼고, 우리 스님-체징-을 제3조로 한다 是以達摩爲唐第一祖, 我國則以儀大師爲第一祖, 居禪師爲第二祖, 我師第三祖矣. -보조선사 창성탑비)

보림사는 개창 이후 800여 명의 승려들이 운집해 수행했을 정도로 성세했다.(“선사가…누운 채로 임종했다.…제자 영혜英惠·청환淸奐 등 800여인은 의리가 어버이를 잃은 듯 깊었고 정이 하늘과 땅에 사무쳐 추모하여 울부짖으니…右脇臥終 … 弟子英惠, 淸奐等, 八百餘人, 義深考

妣, 情感乾坤…‘보조선사 창성 탑비명’).

그러나 고려조에 들어와 천태종이 성세하며 구산선문은 자연 쇠퇴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서 보림사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나 고려 말에 이르러 구산선문 중 보림사만큼은 크게 흥성하게 된다.

체징 이후 보림사는 체징의 제자로 사무외대사(신라 말 모든 이들의 존숭을 받던 고승들로 이들 중 이른바 ‘사무외대사’라 불리던 4인의 고승과 도선道詵이 있었다. 사무외대사로 통칭된 4인의 고승으로 진철眞澈, 이엄利嚴, 대경大鏡, 여엄麗嚴, 법경法經, 경유(猷),선각先覺, 형미逈微) 있었다)의 한 분이었던 선각대사(先覺大師) 형미(逈微, 864〜917년) 스님 시대에 이르러 보림사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고려조에 와 천태종이 선종보다 더 성세하는 중에서도 가지산파의 한 분으로 당대 선종의 대표적 인물로 왕사를 역임한 원융 국사 학일(學一, 1052~1144년) 스님이 주석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후 다시 보우 선사가 주석하면서 보림사의 선풍을 크게 일으킨다.

보우 선사가 보림사에 주석했을 때 그의 명성은 이미 전 고려를 떨치고 있었다. 이는 보우선사가 원나라에 들어가 임제종(臨濟宗, 당 나라 임제의현臨濟義玄) 의해 창시된 중국 불교 선종 5가家의 한 종파로 그 법맥은 혜능의 남종선南宗禪을 계승한 남악회양南嶽懷讓-마조도일馬祖道一 -백장회해百丈懷海-황벽희운黃檗希運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법맥에 따라 선사상은 ‘육조단경六祖壇經’의 선사상을 계승하고 있다)의 적손인 당대 고승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선사로부터 법맥을 이어왔고, 원나라에서 보우와 교우했던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선사를 왕사로 추대했다.

그렇잖아도 불문에 들어 처음 수행처가 보림사였던 인연을 가졌던 보우는 보림사 주지가 된 이후 보림사에서 단절되다시피 한 가지산문을 크게 일으켰고 다시 임제선풍((臨濟禪風)을 드날렸던 것이다.

하여 통일신라 때 개창됐던 보림사는 고려 말 태고 보우에 의해 크게 성세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처럼 가지산 보림사는 산문 개창의 주역이었던 제1조 도의 제2조 염거, 제3조 체징대사를 조사전에 모시게 됐고 이어 보림사의 중흥조였던 태고 보우선사까지 4인이 보림사 조사전에 봉안돼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보림사 그 조사전에, 원감국사 충지 스님의 진영이 봉안됐다.

보림사에 주석하지도 않았고, 생전에 보림사와는 큰 인연이 없었던 원감국사였음에도 그분의 진영이 보림사에 봉안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보림사는 장흥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구산선문의 종찰이며 현대 한국 불교 조계종의 원류가 되는 천년고찰이다.

그런데 원감국사는 역대 장흥 출신 승려로 최고의 대선사이며 선승이었다.

특히 역대 장흥인 중 고대 문학사에서 원감국사만한 문학적 위업을 남긴 이가 없었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조선조 초기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수록한 동문선에서 승려로서 가장 많은 작품이 수록된 이가 바로 원감국사였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 고려조까지 원감국사는 불교문학의 최고봉에 이르렀던 인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그 원감국사를 기억해 낼 수 있는 곳은송광사 국사전이 유일했다.

그곳에는 송광사 16국사 진영이 봉안돼 있고, 6세조인 원감국사 진영도 거기에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림사 조사전에도 국사의 진영이 봉안돼 있어, 누구라도 어느 때이던 국사를 참배‧참례할 수 있고, 해마다 5월 2일에 봉행하는 보림사 조사 다례에 참여하여 4분의 선사와 함께 원감국사도 함께 참례하며 그를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감국사에 대한 기억과 조명,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굳이 장흥위씨 종인이 아니더라도, 장흥인이라면 그 누구든지 간에 그분이 남긴 그 위대한 업적을 되새기고 기억하며 길이 기려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할 일은 그분의 문학적 위상과 업적을 조명하는, 그분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학

술세미나를 개최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실로 장흥 출신 원감국사의 문학은 장흥 고문학의 자랑이요 긍지요 자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의 고을 장흥’, ‘문림의향의 메카 장흥’이 할 일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장흥 문학의 뿌리, 장흥 고문학의 원류가 바로 원감국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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