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논단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은 임금이 작명했다
■장흥논단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은 임금이 작명했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6.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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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 당동마을은 공예태후 임(任)씨 친정, 고려왕들의 외가집
문병길/문화관광해설사, 전부산면장

 

 

 

 

 

 

 

 

 

 

 

 

우리 고장 장흥(長興)이란 이름은 고려시대 임금이 “길이길이 흥하기를 바란다.” 라고 하면서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을 직접 작명하여 하사하면서 장흥부사(府使: 종3품직 벼슬아치)가 관할하는 큰 고을로 승격되었다. 천관산 아래 관산 당동마을은 고려 인종왕비 공예태후 임(任)씨의 친정이며, 고려 18대 의종임금, 19대 명종임금, 20대 신종임금 외가집이다.

임금이 우리고장 이름을 지어 “길이 번창 하라”하시어

고려 제17대 임금 인종(仁宗)은 아버지인 예종(睿宗)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으나, 외조부 이자겸(李資謙)이가 세도(勢道)를 부려 정권을 장악하여 정치를 흩뜨리자, 이자겸을 귀양 보내고 인종왕의 부인이자 이모였던 왕비2명을 내몰고, 새 왕비를 맞아들였는데 그 왕비는 장흥임(任)씨였다.

새 왕비였던 공예태후 임(任)씨는 인종 왕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5남4녀를 낳아 첫째 아들이 의종(毅宗) 임금이 되었고, 셋째 아들이 명종(明宗) 임금, 다섯째 아들이 신종(神宗)임금이 되었다.

공예태후 임(任)씨 태생지였던 우리고을을 “길이길이 번창하기를 바란다”며 장흥(長興)이라 이름하고 부사(府使:종3품직)고을로 승격시켜 현재 장흥지역은 물론 보성일부와, 고흥지역 일부, 강진지역 일부를 거느리는 전남 서남부 중추적인 고장으로 성장하였다. 장흥부(府) 승격은 공예태후 임(任)씨의 단순한 예우차원에서가 아니라, 당시 우리고장에서 중앙왕권과 연계되어 혼인할 수 있는 강력한 토호 문반가문(土豪文班家門) 장흥임(任)씨가 있었음이 자랑스럽다.

고려 인종 왕비 간택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공예태후 임(任)씨가 1126년에 연덕궁주로 입궁했으며 장흥임(任)씨가 인종 왕비로 간택된 것은 당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이자겸이 왕비를 시켜 인종 왕을 독살하려다 실패하자 반역을 도모한 난을 일으키게 되었고, 고려 17대 인종 임금은 최사전, 척준경 등으로 하여금 반란을 평정하게 하고 이자겸을 영광으로 귀양 보내고 이자겸의 딸 왕비 2명을 폐출시켰다.

당시 궁궐의사(內醫)였던 최사전은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이 되었고, 후에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던 인물로 당시 탐진현(현재 강진군)출신이다.

최사전은 이자겸이 권세를 남용하자 인종 임금과 협의하여 이자겸의 심복 척준경으로 하여금 이자겸을 제거할 계획을 논의할 수 있는 측근 신하였던 임원후의 딸을 후궁으로 추천했다는 기록이 있어 어떤 형태로든 장흥임(任)씨를 왕비로 간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자겸의 난까지 경험한 인종 왕은 왕비를 간택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이자겸 같은 외척이 나오지 않기 위해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명문귀족 집안이면서 국모로서 덕망을 갖춘 여자를 찾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예태후 임(任)씨 그 당시 집안을 살펴보면 할아버지 임의(任懿)는 여섯 임금(문종, 순종, 선종, 현종, 숙종, 예종)을 보좌하는 관직에 몸담아온 청렴한 명신으로 평장사(장관직)와 문하시중(수상직)에 오른 명문가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임원후는 훗날 평장사, 문하시중에 올랐지만 당시에는 진중내급사(종6품)관리였고 숙부 임원준은 원외랑직에 있다 유배당한 상태였다.

그래서 왕실의 외척이 되더라도 그들의 세도문제가 크게 우려되지 않았으며 가장 신뢰한 최사전 추천으로 이자겸의 인주이씨 몰락한 이후 장흥임(任)씨 왕비간택은 이처럼 치밀한 정치적인 전제된 것이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공예태후 임(任)씨 때문에 장흥부(府)로 승격되었다.

장흥부(府) 승격이 공예태후 임(任)씨로 인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전제하면, 공예태후 임(任)씨가 왕자 5명(의종 임금, 대령후, 명종 임금, 충희(원경국사), 신종 임금)과 공주 4명(승경, 덕령, 창락, 영화)을 낳은 것은 왕비 후덕이다.

인종 임금이 길이길이 흥하라고 찬양했다는 기록에서 고려시대 지방행정 관행에 따라 장흥부(府)승격은 공예태후 임(任)씨 탄향(誕鄕)지 정안현(현감:종6품직 현재 관산읍․대덕읍․회진면․용산면, 완도군 금일읍․금당읍․생일면 관할)을 장흥부(府使:종3품직)로 승격해 현재 주변(완도군, 고흥군, 보성군, 강진군) 일부지역과 장흥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태후(太后) 임(任)씨 책봉은 언제인가?

고려 제17대 인종 왕비로 간택된 장흥임(任)씨는 1127년 의종 임금을 낳고 1129년에 정식으로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렇다면 ‘태후’라고 언제 책봉되었을까? 고려 제17대 인종 임금 마지막 해 1146년에 고려 제18대 의종 왕에게 양위되었다. 인종 임금이 1146년에 타계하였기 때문에 3년상을 마치고 1149년에 아들 의종(고려 18대 임금)이 어머니인 태후(太后)로 모시는 행사를 거행했다.

※근거 자료: 윤경진(경상대학교 교수)논문, 고려사 지리지 분석과 보정)

그 당시 보성군과 영암군 관할 지역이던 백성이 “장흥”이라는 하나의 지역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부사(府使:종3품직 벼슬아치)고을로서 생활하다가 1895년 갑오개혁까지 746년 동안 현재 전라남도 서남부지역 중추고을로써 역할을 하면서 차별화된 고싸움놀이 등 독특한 전통문화를 만들어냈다.

공예태후 임(任)씨 친정과 관련된 정안사(定安祀)

정안사는 공예태후 임(任)씨 탄향지(誕鄕地)임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6천800여평 넓은 부지에 외삼문(紹興門), 내삼문(崇仰門), 소강당(長川堂), 대강당(景慕齋), 신실(神室), 주차장 등을 정부의 지원 없이 장흥임(任)씨 대종회에서 10억원 헌성금으로 1999년에 건립하였다.

▣소흥문(紹興門:외삼문) : 소흥(紹興)은 중국어로 ‘사오싱’으로 발음되며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 위치한 인구 20여만 도시였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월(越)나라 수도로 항주만(杭州灣)남쪽에 자리했으며 중국 근대 대표작가 루쉰 출생지이고, 중국 명주(名酒) 소흥주가 생산된 곳이다.

장흥임(任)씨 시조 임호(任顥)는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관직생활을 하다 1040년경 중국 송나라 때 전란을 피해 현재 ‘정남진전망대’ 앞섬 ‘돌의도’에 정박했다가 관산 옥당리 당동(堂洞)마을로 건너와 정착했다.

그리고 중국 고향을 후손들이 영원히 잊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정안사 입구 첫 문(門)인 외삼문 이름을 소흥문(紹興門)이라 현판했다.

▣숭앙문(崇仰門:내삼문) : 숭앙(崇仰)이라고 함은 ‘높여 우러러 본다’는 의미이다. 자손들이 숭상하는 마음자세를 갖고 들어서야 한다는 뜻에서 숭앙문(崇仰門)이라 이름 하였다.

▣장천당(長川堂:소강당) : 천관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 앞을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어 이곳에 강당을 세웠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문자 그대로 장천당(長川堂)이라 하였다.

▣경모재(景慕齋:대강당) : 경모(景慕)라 함은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이다. 전국 장흥임(任)씨들이 매년 4월 넷째주 일요일에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선조님을 추모하고 숭조(崇祖) 사상을 앙양하는 대강당을 경모재(景慕齋)라 이름 하였다.

▣신실(정안사:定安祀) : 정안사는 장흥임(任)씨 사우이다. 장흥임(任)씨의 가장 웃어른인 태자태부(贈太子太傅) 임호(任顥), 그의 아드님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 그의 손자 문숙공(文肅公) 임원숙(文忠公), 문충공(文忠公) 임원후(文獻公), 문헌공(文憲公) 임원준(任元濬) 등 다섯분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있는 신실이다.

▣공예태후 임(任)씨 기전비(恭睿太后 紀傳碑) : 공예태후(恭睿太后) 탄향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문(碑文)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공예태후 임(任)씨(1109~1183)는 고려 제17대 인종(仁宗)왕비로 문하시중(수상직)을 역임한 문충공(文忠公) 임원후(任元厚) 처음이름 원애(元獃)따님이며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에서 탄생하셨다.

할아버지는 좌리공신 문하시랑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 이고 외할아버지는 장숙공(莊肅公) 이위(李瑋)이다.

1129년(인종7)에 왕비로 책봉된 후 제18대 의종, 대령후(大寧侯)경(暻), 제19대 명종(明宗), 원경국사 충희(沖曦), 제20대 신종(神宗)과 승경(承慶), 덕령(德寧), 창락(昌樂), 영화(永和)의 공주를 낳으셨다.

당시 장흥 정안현(定安縣)으로 영암군에 소속되었는데 인종(仁宗)때에 공예태후의 탄생지라 하여 현재 이름 장흥(長興)으로 고쳐 부(府)로 승격시켰다.

지금의 장흥군(長興郡)은 공예태후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기 1991年 12月 대한민국(大韓民國)

▣역사관 : 선대의 혼(魂)이 서려있는 교지(敎旨)등 주요 유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기 위해 2013년에 장흥군에서 건립하였다.

▣아지(娥池)연못 : 아지(娥池)는 “아름다운 여자 연못이라는 뜻이다. ‘아지(娥池)’는 공예태후 임(任)씨 탄생지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 입구에 있었던 연못으로 지금도 그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 민선3기 때 연못을 조성하였다.

▣시비(詩碑) : 마을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은 1995년에 도로포장하면서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놓고 ‘아지교’ 라고 부른다. 민선3기 때 시비(詩碑)를 세웠다.

고려 공예태후 임(任)씨 친정과 왕들의 외가집 주변 관광지 조성

필자가 현직(군청 관광홍보계장)에 있던 2003년 11월에 KBS 1TV 드라마 ‘무인시대’ 공예태후 역을 맡았던 김윤경 탤런트를 초청하여 관산 당동마을(정안사)을 방문하는 친정나들이 행사 개최하여 공예태후 임(任)씨 친정이며 고려 18대 의종 임금, 19대 명종 임금, 20대 신종 임금 외가집이 장흥이라는 것을 전국에 홍보한바 있다.

공예태후 임(任)씨는 오늘날 장흥(長興)이란 이름을 만들어냈던 어머니이다. 장흥이라는 인연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공예태후 임(任)씨 탄향지(誕鄕地)관산 당동마을 정안사 주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머니 테마공원’ 등 향토문화자원(정안사, 아지 연못, 시비 등)을 현실에 맞게 관리하고 홍보하여 향후 관광지로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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