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일제 수탈의 일문 한 토막
독자기고-일제 수탈의 일문 한 토막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8.20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 정 배

일제강점기 농촌 수탈의 일화를 옮긴다. 당시 강진군수를 역임한 윤길중 씨의 제치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함이다.

훗날의 홍익대 이항녕 총장과 박정희 유신시절(?) 민정당(여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윤길중 씨는 일제시 20대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두 분 다 지방 군수를 지냈다.

윤길중 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자기 고향 강진군에서 군수로서의 행정의 수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토종벌(한봉) 꿀단지 하나를 준비해 광주로 올라갔다.

당시 전남지방장관인 도백(도지사)은 일본인이었다. 면담이 끝난 뒤 윤준수는 조그만 꿀단지 하나를 내놓으며 말했다.

‘지난 겨울 밑꿀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 벌들이 약군이 되어 이번 봄에 꿀을 조금밖에 따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랬더니 일본인 도지사가 이 말을 받아 ‘아 밑꿀을 많이 넣어주지, 왜 조금만 넣었느냐’고 했다. 윤군수가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려 ‘글쎄 말입니다.

밑꿀을 뺏지 말고 많이 넣어 줄 것을 그랬습니다.’라고 했다.

바로 그때다. 지사는 무릎를 치며 ‘앗차! 당신한테 당했구려’라고 소리쳤다.

그날 그후, 전남도지사는 도청 직원과 강진군청에 조용히 하명했다.

강진군 내에서는 수탈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일제시 강진군에서는 많은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여타 군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탈을 당해야 했다.

수탈이란 강제로 빼앗음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농어촌 수탈의 참상을 이제라도 밝히어 기록으로 남겨 놓으면 좋겠다.

우리 군에서도 안양 해창으로 빠져나간 임산물이나 농산물, 수산물이 많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 각 고을마다 체계적인 도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물증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 폭력을 앞세워 우리 선조들의 일상을 침탈한 일제의 잔재를 지금이라도 샅샅이 찾아내야 하겠다.

그날의 그 아픈 기억을 남겨 후세에 경고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나무 송진까지 수탈해 갔으니, 그 피폐함이 오죽했으랴! 다행인 것은 각 마을마다 90세 이상의 노인들이 더러 있다.

그분들께 물어도 상당한 실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군지나 읍지, 면지에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빼앗겼는지 밝혀놓아야 지금 우리의 생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이 일을 장흥군청이나 문화원에서 해냈으면 좋겠다.

당돌한 요구일지 모르겠으나, 이를 어느 개인이 해내기는 벅차기 때문이다.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