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고문학/산문1/보조선사 창성탑비(2)
■장흥의 고문학/산문1/보조선사 창성탑비(2)
  • 김선욱
  • 승인 2021.11.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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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문학 첫 장을 연 ‘보조선사 창성탑비’
당대 명 문장가 신라 당 관리 겸직한 문장가 김영이 찬술
선종 조사 승계 정리, 신라선종 종찰로서 보림사 위상 제고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보림사 전경
보조선사 부도탑(보물157호)

 

 

 

 

 

 

 

 

 

 

<지난호에 이어 계속>

선사의 이름은 체징(體澄)이요 종성(宗姓)은 김씨(金氏)이며 웅진 사람이다. 집안은 대대로 명망과 어진 가풍을 이어왔다. 이로써 즐거운 일이 하늘로부터 모이고 덕이 큰 산으로부터 내려와, 효의가 향리에 기려졌고 벼슬에 나아가서는 예악은 고관들 중 으뜸이었다.

禪師, 諱體澄, 宗姓金, 熊津人也. 家承令望, 門襲仁風. 是以, 慶自天鍾, 德從嶽降, 孝義旌表於鄕里, 禮樂冠盖於軒裳者也.

*웅진(熊津):지금의 충청남도 공주 지방이다.(『삼국사기』 권36 ‘잡지’ 5 지리.

*헌상(軒裳):사대부(士大夫)의 복장을 일컫는 말로서 귀한 지위를 뜻한다.

선사를 잉태하던 해 어머니의 꿈에, 둥근 해가 공중에 떠서 빛을 내려 배를 뚫고 지나갔다. 이 때문에 놀라 깨어 문득 임신하였음을 깨달았다.

달이 차도 태어나지 않으니, 어머니가 상서로운 꿈을 미루어 살펴 좋은 인연이 이루어지도록 빌고, 식사에 고기를 멀리하며 술을 금하고 계율로써 태교하면서 복전을 섬겼다. 이로 말미암아 해산의 괴로움을 이기고 아들을 낳는 경사를 맞았다.

禪師託體之年, 尊夫人夢, 日輪駕空, 垂光貫腹. 因之驚寤, 便覺有懷. 及逾朞月, 不之誕生, 尊夫人追尋瑞夢, 誓禱良因, 膳徹腵脩, 飮斷醪醴, 胎訓淨戒, 騭事福田. 由是克解分蓐之憂, 允叶弄璋之慶.

*복전(福田):불법을 장양하는 터전으로서의 삼보(三寶)를 말한다.

*분욕지우(分蓐之憂):욕(蓐)은 해산할 때 까는 자리이니, 난산(難産)의 고통을 뜻한다.

*농장지경(弄璋之慶):아들을 낳은 기쁨을 농장지경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농와지사(弄瓦之事)라고 한다.

*[全文] [總覽]의 騭자가 옳으며 [苑]의는 오자임.

선사는 체모가 커서 산이 우뚝 선 듯하고 기색이 윤택하여 하백(河伯)과 같았으며, 치아가 고르고 금발이 특이하여 마을 사람들이 찬탄하고 친척들이 모두 놀라와 했다. 갓난아이 때부터 세속을 떠나고자 하는 뜻이 뚜렷했고 7, 8세가 되어서는 길이 세속을 버리려는 반연(攀緣)을 품으니, 양친이 부귀로써 붙잡아 두기 어렵고 재색으로써도 얽맬 수 없음을 알아 출가하여 유학할 것을 허락했다.

禪師貌雄岳立, 氣潤河靈, 輪齒自然, 金髮特異, 閭里聲歎, 親33)4)戚咸驚. 從襁褓之年, 宛有出塵之趣, 登齠齔之歲, 永懷捨俗之緣, 二親知其富貴難留, 財色莫繋, 許其出家遊學.

(이에) 지팡이를 짚고 스승을 찾아 나서 화산 권법사의 문하에 들어갔다. 경을 듣는 것으로 일을 삼고 옷을 여미어 법문을 청하여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한번 들은 것은 반드시 기억했다. 항상 마음의 때를 씻고 닦으며 스님로서의 몸가짐을 익히고, 어질고 순함을 쌓아 번뇌를 없애며 항상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여 신통묘용(神通妙用)하니, 초연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나고 우뚝함이 견줄 사람이 없었다. 그 후 태화 정미년에 가량협산 보원사에 이르러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 한번은 계단장(戒壇場)에 들어가 7일 동안 도를 닦는데, 문득 어떤 이상한 꿩이 갑자기 순하게 날아들었다. 어떤 옛일을 잘 아는 사람이 “옛날에는 진창에서 패왕의 도를 드러냈는데, 오늘은 절에 날아드니 장차 불법을 일으킬 큰스님이 나타날 징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策杖尋師, 投花山勸法師座下. 聽經爲業, 摳衣請益, 夙夜精勤, 觸目無遺, 歷耳必記. 常以陶冶麤鄙, 藻練僧儀, 積仁順而煩惱蠲除, 習虛靜而神通妙用, 超然出衆, 卓爾不群. 後以大和丁未歲, 至加良峽山普願寺, 受具戒,42) 一入壇場, 七宵行道, 俄有異雉, 忽爾馴飛. 有43)稽古者曰, “昔向陳倉, 用顯覇王之道, 今來寶地, 將興法主之徵者焉.”

*화산(花山):7세기 건립된 인각사(麟角寺)가 소재한 경북 군위군 고로면의 화산으로 추측.

*구의(摳衣):옷을 여미고 경예(敬禮)한다는 뜻. 불교의 편단우견(偏袒右肩)과 같은 뜻이다.

*태화정미년(太和丁未年):827, 흥덕왕(興德王) 2년.

*보원사(普願寺):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성왕산에 있던 절로 신라말 고려초기에 활약했던 법인국사(法印國師)탄문(坦文:900~975)의 비(碑)가 있다.

*진창(陳倉):중국 춘추시대의 진(秦)나라가 설치했던 현(縣)의 이름으로 한(漢)·위(魏)·진(晉) 때까지 있었으나 북주(北周) 때에 폐지했다. 수(隋)나라 때에 다시 설치했으며 당(唐) 지덕(至德) 2년(757) 진문왕(秦文王)의 고사(故事)에 따라 보계현(寶鷄縣)으로 고쳤으니 오늘날의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이다.

*패왕지도(霸王之道):『사기史記』 권28 ‘봉선서封禪書’에 “B.C. 754년 진문공(秦文公)이 야석(若石)을 얻어 진창북판성(陳倉北阪城)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신(神)이 어느 해에는 오지 않고 또 어느 해에는 자주 왔다. 항상 밤에만 빛을 뿌리면서 유성(流星)처럼 동남쪽으로부터 사성(祠城)에 모여들었다. 그 오는 소리가 수탉처럼 우렁차니, 문공(文公)이 뇌(牢)로써 제사하고 진보(陳寶)라 일컬었다”라고 전한다.

처음 도의선사가 서당에게서 심인(心印)을 전수받고 후일 우리나라에 돌아와 그 선(禪)의 이치를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경의 가르침과 관법을 익혀 정신을 보존하는 법만을 숭상하여 무위임운의 종47)에 모이지 아니하고 허탄한 것으로 여겨 높이어 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마치 달마조사가 양 무제를 만났음에도 뜻이 통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함을 알고 산림에 은거하여 법을 염거선사에게 부촉했다.

初道儀大師者, 受心印於西堂, 後歸我國, 說其禪50)理. 時人雅尙經敎, 與習觀存神之法, 未臻其爲任運之宗, 以爲虛誕, 不之崇重, 有若達摩不遇梁武也. 由是知時未集, 隱於山林, 付法於廉居禪師.

*도의선사(道儀禪師):『조당집祖堂集』‘진전사원적선사전陳田寺元寂禪師傳’에 따르면, 도의선사는 북한군(北漢郡) 사람으로 호(號)는 명적(明寂)이다. 784년 당나라에 건너가 오대산(五臺山) 광부(廣府)의 보단사(寶檀寺)에서 비구계를 받고, 조계산 육조(六祖)의 영당에 참배했다. 강서 홍주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에게 법을 전수받고 821년 귀국하였으나, 아직 때가 아님을 알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서 40년을 수도하다가 염거(廉居)에게 법을 전하고 입적했다. 염거의 제자 체징(體澄)이 크게 종풍(宗風)을 떨침으로써 가지산파의 제1조로 숭앙되었다.

*서당(西堂):지장선사(智藏禪師 735~814)를 가리키는데, 그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강서 홍주 개원사에 머물렀다. 신라스님 가운데 도의를 비롯하여 혜철(惠哲)·홍척(洪陟) 등이 그의 심인을 받고 귀국하여 선문(禪門)을 개창했다.(최병헌, ‘신라 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한국사연구』 7, 1972.)

*존신지법(存神之法):교종(敎宗)을 가리킨다.

* 무위임운지종(無爲任運之宗):선종(禪宗)을 가리킨다.

* 달마불우양무(達摩不遇梁武):달마대사가 양나라 보통(普通) 1년(520) 10월 광주자사 소앙의 소개로 금릉(金陵)에 가서 무제(武帝)와 문답하다가 기연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돌아선 고사를 이른다.

*염거선사(廉居禪師):도의의 법을 이은 가지산파의 제2조로서 문성왕 6년(844)에 입적했다. 탑은 원주 흥법사지(興法寺址)에 있었는데 탑지(塔誌)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에 염거선사가 설산 억성사에 머물면서 조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여니, 체징선사가 가서 그를 섬겼다. 선사가 맑게 일심을 닦고 삼계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여 목숨을 자기의 목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몸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지 않았다. 염거선사가 그 뜻과 기개에 짝할만한 이가 없고 그 타고난 바탕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 현주(玄珠)를 부촉하고 법인(法印)을 전해 주었다.

居雪山億聖寺, 傳祖心, 闢師敎, 我禪師往而事焉. 淨修一心, 求出三界, 以命非命, 以軀非軀. 禪師察志氣非偶, 素槩殊常, 付玄珠, 授法印.

*설산(雪山):설악산

*억성사(億聖寺):지금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본비가 세워져 있었던 강원도(江原道) 양양군(襄陽郡) 서면(西面) 황이리(黃耳里)의 이른바 사림사지(沙林寺址) 혹은 선림원지(禪林院址)를 억성사지(億聖寺址)로 추정한 견해가 있다. (권덕영,‘홍각선사비문의 복원 시도’, 역사학회 월례발표회 요지, 1992.4.11.)

*삼계(三界):끊임없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하는 중생미계(衆生迷界)를 세 갈래로 나누어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라 이른다. 이 삼계를 다시 6도(途)·25유(有)·9지(地)로 나누기도 한다.

개성 2년 정사에 동학인 정육(貞育)·허회(虛懷) 등과 함께 바닷길로 서쪽 중국에 들어갔다. 선지식을 찾아 삼오주를 편력하면서 온 누리가 좋아하고 하고자 함이 같으며 성상(性相)이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이에 “우리 조사께서 말씀하신 바에 더할 것이 없는데 어찌 수고로이 멀리 가겠는가”라고 이르며, (구법의) 발길을 멈추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至開成二年丁巳, 與同學貞56)育虗懷等, 路出滄波, 西入華夏. 叅善知識, 歷三五州, 知其法界, 嗜欲共同, 性相無異. 乃曰, “我祖師所說, 無以爲加, 何勞遠適.” 止足意興.

*개성(開成) 2년:희강왕(僖康王) 2년(837).

* 삼오주(三五州):『신당서新唐書』(권37 “지志’ 27지리(地理)1)에 따르면, 당나라가 일어나면서 고조(高祖)가 군(郡)을 주(州)로, 태수(太守)를 자사(刺史)로 고치고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여 전국을 다스렸다. 그 후 태종원년(627)에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으며, 경운(景雲) 2년(711)에 천하를 군현(郡縣)으로 나누고, 24 도독부를 설치했다. 개원(開元) 21년(733)에는 전국을 다시 15도로 나누고 각 도에 채방사(採訪使)를 두었으며 건원년간(乾元年間 758~759) 이후에 각지에서 병란이 일어나자 이를 폐지하고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본 비문에서 체징이 편력했다는 삼오주란 중국전역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신라의 ‘9주’와 같은 의미의 ‘15도’를 일컫는 것으로 풀이된다.

5년 봄 2월에 평노사(平盧使)를 따라 신라에 돌아와 고향을 교화했다.

이에 단월들이 마음을 불교에 기울여 발길을 잇는 것이, 수백의 내가 오학에 모이듯 수많은 계곡과 산들이 영취산을 우러르듯 했다고 이르더라도 충분한 비유가 아니될 정도였다. 드디어 무주 황학(黃壑)의 난야(蘭若)에 머무르니 때는 대중 13년 용이 석목의 진에 모인 무인년 헌안대왕 즉위 이듬해였다.

五年春二月, 隨平盧61)使, 歸舊國, 化故鄕. 於是檀越, 傾心釋敎, 繼踵百川之朝, 鼇壑群嶺之宗, 鷲山未足爲喩也. 遂次武州黃壑蘭若, 時大中十三 , 龍集于析62)木之津, 憲安大王卽位之後年也.

*개성 5년:문성왕(文聖王) 2년(840).

*오학(鼇壑):오산(鼇山)과 같은 말. 큰 바다 거북이 떠받치고 있는 바다 가운데의 산으로 신선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인데,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 대학(大壑)이 있어 그 가운데 오산(五山)이 있다. 오산의 밑둥지는 서로 연결되어 지탱하는 곳이 없는 까닭에 파도에 따라 오르내리는데, 천제(天帝)가 서쪽 끝으로 떠내려 갈 것을 염려하여 15마리의 큰 거북으로 이를 떠받치게 했다”고 이르고 있어, 오산 아래의 대학을 가리키는 듯하다.

* 대중(大中) 13년:헌안왕(憲安王) 2년(858).

*석목지진(析木之津):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의 인마궁(人馬宮), 곧 미수(尾宿)를 가리키며 12지(支)의 인(寅)에 해당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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