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한담 7-전설의 반물 쪽 천연염색장
■장흥한담 7-전설의 반물 쪽 천연염색장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09.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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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 시인·수필가

두런두런 햇살이 숲을 채워가는 가을, 서늘한 바람이라도 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해름 참에 내린 이슬에서 가을이 묻어날 때, 숲이 비워내며 동비증((同悲症))을 치유해 가는 장엄함을 보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무가 흔드는 몸짓에 가을의 포로가 될 것 같은 날, 만삭의 여름은 물 그늘로 사라지고 잔잔한 연못 바람이 산자락에서 살금 거리자 하늘을 닮은 천 하나가 흔들리며 자연의 빛깔을 만들어내는 반물 쪽 천연염색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산 아래 낮은 곳으로 구부정하게 늙은 길을 따라간다. 가을은 여름의 한 매듭을 물리쳤지만 아직은 성근 여름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을 즈음 생량(生凉)머리에 선들선들 불어오는 건들바람에 코 끗을 자극하는 물비린내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포근하고 정겨운 한옥 두 채와 가지런한 정자 한 채가 연못 위에 자리 잡은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에 소담한 정자의 그늘은 여름과 가을의 계절을 가르며, 가지런한 항아리에 설익은 반물이 익어가고, 쏟아낸 반물은 곱게 가라앉아 하늘을 품고 닮아가고 있다.

흰 구름이 머무른 제암산 아래 다산의 제자(다신계)중 한 사람인 반산 정수칠의 탯자리에서 잊혀진 전설의 반물 쪽을 살려놓은 (사)한국 수공예기능인협회 평생 문화 센터장 옛골 박순진 원장이 전통의 가치를 이어가는 곳이다. 꽃 물든 잔디밭에 쪽물바다를 이루어 과학과 고전의 아름다움이 펄럭이는 산 아래 청룡지에서는 지하수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흘러 반산의 들판을 적시고, 마당 한켠에 뿌리내린 오래된 감나무는 욕진세월을 견디며 올곧게 살다간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걸까. 잔가지 흔들리는 감나무 옆 정자에 앉아 아등바등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뻐꾹 나리꽃을 닮은 천 하나가 옛골 염색쟁이의 손끝에서 자주 빛 반점을 그려내며 탄생하고 있다.

옛골 염색쟁이는 말한다. “청취지어람 이청어람(靑取之於藍 而靑於藍)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푸르다’라며 쪽(요람)은 한해살이 넝쿨 식물로 우리나라 쪽에는 인디고 색소와 인디루빈(ndirubin) 이라는 항암제가 함유되었다. 쪽은 습기를 좋아하고 일조량이 많은 곳인 남쪽 지방에서 색소함량이 높고 잘 자란다. 쪽은 고문헌 본초강목, 임원경제지. 동의보감 등에 의하면 항균, 살균, 해열, 방충, 방독 효과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물 쪽 염색법은 생쪽 잎을 항아리에 담아 물을 붓고 뜨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아두면 잎에서 담록 색소가 추출된다. 이 추출된 색소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서 잿물을 붓고 푸른색 거품이 일 때까지 젓으면 발효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반물 쪽 염색은 바닷가 주변에서 이용하던 쪽 염색과는 달리 소석회를 사용하지 않고 염색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고문헌 속 글씨로만 전해내려 오던 산간지방의 반물 쪽 염색방식이 손에서 손으로 근근이 이어왔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맥이 끊어지고, 왜곡 변질해 버려 고문헌 속 그대로 되살리는데 청정자연이 절대 필요했다며 최적의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는 정남진 장흥에서 반물 쪽을 되살릴 수 있었다.”며 자랑스러워한다.

30년 이상 쪽을 심어 반물을 추출한 후 옷을 만드는 염색쟁이는 KBS. MBC. EBS 등에 출연한 톱스타 연예인들의 드라마 의상을 제작 협찬하는 등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열정의 반물 쪽 염색쟁이이다. 어제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반짝임이 있는 것이리라.

반물에 손 담그고 짜고 털어내는 반복된 염색의 과정에서 한 홀이라도 욕심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텅 빈 마음에 자연이 주는 빛깔만을 오롯이 채워야 하는 겸손이 있었기에 오늘을 충만하게 담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노동은 인간이 부리는 재주일지 모르나 쪽물의 오묘함은 오직 햇볕과 바람이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반물을 만들어 내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자연은 무한한 조화로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

조상들은 우리에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오염은 갈수록 심화하고 개발의 논리에 환경은 뒷전으로 밀리어 황폐해지고 있다. 도시는 획일화된 풍경과 마천루(摩天樓)로 채워져 옛것은 사라지고 주변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지만, 자연을 어루만지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옛골 염색쟁이의 옹골진 삶은 잔잔한 바람과 빛의 햇살에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오늘의 기억은 머리에 담는 것보다 가슴에 담아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찌들고 거칠어진 마음 헹구고 싶을 때, 가슴에 담아둔 쪽빛 하나를 끄집어내어 보아야 할 것 같다. 혹여, 지혜는 묻히고 집착과 욕심이 구름떼처럼 밀려드는 치열한 삶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다면 가만히 찾아와 비릿한 꽃물 냄새를 긴 숨으로 들이켜 보시라. 몸은 어느새 자연과 하나 되어 편안함과 안락함 (Hygge) 속에 있을 것이다.

초록이 가득한 가을날. 갈급 하는 마음을 적셔준 전설의 반물 쪽 천연염색장에서 하루해가 미소를 머금고 연못 속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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