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이 ‘송기숙 문학’ 품어 안아야 한다
장흥이 ‘송기숙 문학’ 품어 안아야 한다
  • 김선욱
  • 승인 2021.11.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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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後 고려, 포곡마을에 문학자리 확보, 송기숙문학비 건립 추진해야

송기숙(宋基淑, 1935~), 이청준(1939~), 한승원(1939~) - 이들 3인 모두 한국 현대 소설문학의 거봉이요, 장흥의 대표 소설가요, 장흥을 ‘문학고을’, ‘문학특구’로 만든 주역들이다.

이들 3인 중 이청준은 이미 고인으로, 출신 마을인 선학동에 생가(확보 보존)며 천년학 세트장, 문학자리(묘지) 등 현지에 문학자원이 넘쳐나고 이청준 문학관 조성도 추진 중이다. 한승원 역시 안양 율산 마을에 해산토굴이며, 문학교실 그리고 여다지 해변의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는 등 한승원의 문학 현장도 현지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런데 송기숙만 다르다. 출신 마을인 용산 포곡마을 입구에 낡은 문학 현판만 달랑 걸려있을 뿐, 생가는 이 모 씨에 팔려 새집이 들어서 있고 그 외 다른 어떤 문학 자원도 확보‧조성돼 있지 않아 지금 같으면 송기숙의 문학자원이 장흥에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게다가 선생은 15년부터 병마로 인해 문학 활동을 완전히 접어버렸고, 그때부터 자연스레 장흥과도 절연되면서 장흥과 인연 쌓기도 전무, 이제는 ‘장흥 문학인 송기숙’이 아니라 ‘장흥 외인(外人)의 송기숙’이 돼 버린 것이나 진배없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장흥과 지척인 선생의 ‘화순 살이’도 2021년 4월 서울로 이거하면서, 송 선생은 화순은 물론 광주와도 인연을 아주 끊겨가고 있는 상태이다. 송기숙 선생은 부인 김영애 씨(84세)와 사이에 1남 4녀를 두었다. 첫째 송석희(여, 56세), 둘째 송강희(여, 54세), 셋째 송원(여, 52세), 넷째 송승렬(男, 50세, 2019년 작고), 막내 송송희(여, 48세)고, 손주는 모두 6명을 두었다. 선생의 자녀들이 모두 서울에서 살고 있어, 15년째 병중의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를 홀로 화순에 둘 수 없어 서울로 아주 이주시킨 것이라고 한다.

선생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마가 찾아든 것은 지난 2006년, 선생의 나이 71세 때였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므로 선생의 투병생활은 무려 15년째이다. 하여 지금은 가족들도 선생의 사후를 고민 중이라고 하는데, 선생이 5.18 유공자이므로 사후 엔 당연히 광주 5.18묘역으로 안장 될 것이라고 예견되지만, 언제인가부터 광주 5.18 측과 선생의 자녀들 간에 심한 갈등이 불거지면서 딸들은 선생 사후 5.18 묘역 안장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송 선생의 가족들은, 특히 장흥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천관문학관에 비치된 송기숙의 문학공간이 이청준 한승원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사실이며, 그동안 장흥군이 이청준·한승원과는 달리 송기숙 선생에겐 전혀 소규모 재정적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 송 선생 생가 경우만 해도 당초 그 생가를 매입한 용산 면장 출신의 이 모 씨가 장흥군에 송기숙 생가를 매입하겠다면 팔겠다고 몇 번 연락했는데도 아무런 답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생가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지어, 송 선생 생가를 아주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장흥군의 송 선생에 대한 그런저런 처사에 매우 마뜩잖아 하며 몹시 섭섭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랜 병마와의 사투로 송 선생의 사후 문제가 점차 불거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광주의 모대학교나 모처에서 ‘송기숙 기념관(문학관)’ 조성을 추진하려 한다고 한다.

송 선생은 전남대에서 3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였다. 송 선생은 1978년 전남대 교수 10명과 함께 ‘국민교육현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교수직까지 파면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내란죄를 적용받아 10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대학 복직 후 송 선생은 1987년 ‘5.18광주민중항쟁 사료전집’을 발간했고, 같은 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초대 의장,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1996년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초대 소장, 2004년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국무총리급) 등을 역임했다.

이처럼 송 선생은 국내 대표적인 민중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선도적 교수로서 역할, 5.18 광주민주화 운동 정신 발현을 주도한 대표자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하여 광주의 모대학교나 모처에선 이러한 송 선생의 민중작가로서 사명수행과 투철한 민중‧민주화 운동 실천가로서 위업을 귀감삼아 기념관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송 선생을 ‘민주화 성지인 광주 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그의 기념관 유치를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닐 것으로 믿지만,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런 움직임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여태까지처럼 장흥이, 장흥군이 여전히 송기숙 선생을, ‘송기숙 문학’을 외면하려 한다면, 결국 송기숙의 문학은 장흥에서 떠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송 선생은 사후엔 5.18묘역으로 안장될 것이고 그 모대학교나 또는 모처에로 송기숙 문학자원이 옮겨진다면, 장흥은 눈뜬 채 '송기숙 문학'을  빼앗긴 꼴이 될 것이다.

송기숙에 대해 장흥이 언제까지 침묵하기만 할 것인가. 장흥이 언제까지 송기숙을 내쳐 놓고만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장흥 문학인들이 ‘송기숙 기념사업회’라도 결성하든지 해야 한다. 하여 장흥군이, 장흥 군수가 ‘송기숙 문학 껴안기 사업’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도록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송기숙을 장흥이 품어 안을 수 있도록, 송기숙 문학을 장흥에 안착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학 고을 장흥이 장흥 출신의 송기숙 문학을 외지에 빼앗겨버린다면, 과연 누가 장흥을 문학고을로 인정해 줄 것인가.

우선적으로, 송기숙 문학자리(묘지)를 확보해 놓아 사후라도 송기숙을 장흥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곡마을에서 억불산 허리께인 자포치재 고개를 넘나들며 장흥중고를 통학하였던 그 산길을 ‘송기숙 문학길’로 또는 장흥동학혁명 때 장흥동학군의 피난길이었던 그 자포치재를 ‘송기숙 동학문학길’로 조성한다든지, 포곡마을 입구 주차장 자리 한 켠에 송기숙 문학비를 조성한다든지, 장기계획으로 송기숙 생가를 매입, 재건‧중건을 추진한다든지, 하다못해 포곡마을에 단출한 송기숙 기념 공간이라도 마련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안으로, 송기숙 문학이 그의 출생마을인 포곡에 안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송기숙 문학관’ 조성도 장기적으로 추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송기숙 품어 껴안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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