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산책- 삶의 인과율이란 과연 존재할까
실학산책- 삶의 인과율이란 과연 존재할까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09.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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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기숙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메가트렌드라는 동시대 감각
최근 1,200만 관객이라는 놀라운 호응을 보이며 상영되고 있는 영화〈신과 함께2〉( 2018, 김용화)는 한국 서사무가를 원천 소스로 삼아 창작된 주호민 작가의 웹툰/만화가 원작이다. 1편에서 1,4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일종의 감성적 메가트렌드를 형성한 데 이어, 2편에서도 흥행가도를 이으며 한국인의 동시대적 감성의 행방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문화적 의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사후 세계에 대한 아시아적 공통 감각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저승, 즉 사후세계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지옥 관념에 바탕을 둔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강림차사, 현실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성주신, 살아온 내력에 따라 저승의 삶을 판결하는 염라대왕. 저승에 대한 상상은 1편의 139분으로도 모자라 2편을 이어갔고, 심지어 다음 편을 예고하는 듯하다(‘3편’을 제작한다면 ‘여신’의 분량을 확보해 주었으면.).

지옥에 대한 상상은 왜 이리 다채로운가. ‘도대체 지옥이 끝나지 않는다’는 상상력에 한국과 아시아의 관객은 어째서 그토록 열광적 반응을 보내는 걸까(보도에 따르면, 이 영화는 홍콩과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흥행 중이다.).

뒤집힌 지옥도
영화에 재현된 지옥도는 당연히 한국과 아시아에 익숙한 전통적 상상력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현생이 전부가 아니며, 인과율에 따라 사후로 이어진다는 도덕률은 이 영화를 낯설지 않은 상상물로 변용시키는 문화적 장치다.

그것은 묘하게도 관객에게 통쾌감을 전한다. 살아서 대놓고, (더 자주는 정교한 덫을 놓아, 여럿이 함께) 못된 짓을 한 사람은 죽어서 한 치의 가감 없이 판결받는다는 보상 심리가 작동한 것은 물론, 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선행일지라도 죽어서는 결단코 보답받는다는 위안의 장치가 도저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호응은 저승 판타지의 유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 현실을 비추는 비판과 공감의 감성으로 쌓여가고 있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지옥도 연작은 뒤집어진 현실 풍속도이다. 거짓지옥, 나태지옥, 불의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천륜지옥은 사후에 맞닥뜨릴 지옥 풍경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티, 현실의 반사판이다(이곳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이 영화의 묘미다). 누군가 우리 곁에서 거짓말하고 배신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인륜을 저버릴 때, 그곳은 이미 지옥이지 않나. 선악이 뒤집힌 난장의 삶이 곧 우리 앞에 펼쳐진 지옥이다.

인과율은 성찰의 장치
우리에게는 소설가 한강의 수상으로 널리 알려진 맨부커상을 그보다 앞서 받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de of an Ending)』(다산책방, 2012)는 얼마 전 동명의 영화(2017, 리테쉬 바트라)로 제작되어 상영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은 2018년 현재 46쇄를 발행할 정도로 독자 호응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분노와 증오로 뱉은 한마디 말(한국적으로 표현하자면 원망 섞인 악담)이 현실화 되었을 때의 충격과 경이, 자책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물론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누군가를 다치게 한 힘이 절대적인 인과의 씨가 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재적 행동과 말이 타인의 삶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도로 나에게 쏟아져 응보가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게 된다(여기에 여러 인물의 경험과 기억이 얽히면서 서사는 다선적 복합구조를 띠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생애 감각과 자각이다.).

문화콘텐츠에 재현된 인과율에 대한 공감은 과학적 이성의 시대를 부정하거나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 현실을 성찰하는 문화적 힘을 시사한다. 지옥에 대한 아시아적 공감대야말로 알거나 모르게 말하고 행한, 순간(들)에 대한 자기 책임성을 환기한다.

19세기 미국을 살아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일기장에 적은 몇 개의 문장은 아시아적 공감대가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과율에 대한 보편적 사유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인생은 극히 사소한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에 의해 평가받는다.
인생은 이런 자잘한 일들의 최종적인 손익결산이다.*

그리하여, ‘인과응보’라는 아시아적 메시지는 여전한 현대성의 화두로, 오늘날의 우리 앞에 현현하며 반짝이고 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일기』, 윤규상 옮김, 갈라파고스, 2017, 173쪽.

▶글쓴이 / 최 기 숙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한국학 전공)

· 저서
〈Classic Korean Tales with Commentaries〉, Hollym, 2018
〈集體情感的譜系: 東亞的集體情感和文化政治〉(主編), 臺北:學生書局, 2018.
〈한국학과 감성교육〉(공저), 앨피, 2018
〈Bonjour Pansori!〉 (공저), Paris: Imago, 2017
〈물과 아시아 미〉 (공저), 미니멈, 2017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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