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송기숙-“두려워도 양심 속일 수 없다며 독재 맞선 시대의 의인”
특별기고 송기숙-“두려워도 양심 속일 수 없다며 독재 맞선 시대의 의인”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12.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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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기숙 교수 영전에-“다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소서”
1960년대 후반 전남대 시절 인연 …‘교육지표’ ‘5월항쟁’ 옥살이 당당
지식인 실천이란 바로 이런 것 …“형님과 술 마실 수 없다니 슬퍼”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송기숙 교수가 세상을 버리셨다. 옛날에도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면 ‘기세(棄世)’라는 단어를 썼다. 그야말로 송 교수께서 세상을 버리고 그냥 눈을 감아버리셨다. 소식을 듣고 곧장 빈소로 달려가 영정을 바라보면서 한참 울었다. 인자하게 웃음 짓는 모습을 보자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후반까지, 유신독재와 싸우고 전두환 일당들과 싸우던 모진 세월, 송 교수와 함께했던 그 수많은 사연이 생각나면서 나의 전체를 잃어버린 듯한 생각에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로는 대선배일 뿐만 아니라 큰형님보다 더 위인 나이에도 우리는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하게 밤낮으로 어울려 지내면서 혹독한 독재시대를 견딜 수 있었다.

1973년 전남대 ‘함성지 사건’으로 10여 개월 감옥에서 지내다 나왔더니, 그 무렵 송 교수는 목포교육대 교수에서 모교인 전남대 교수로 옮겨왔다. 우리가 1960년대 후반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 시위 등으로 학교를 시끄럽게 할 때, 송 교수는 전남대 학보사 전임기자로 일하며 대학원에 다녔다. 그때 우리는 선후배로 만나 술도 마시고 떠들며 지냈다. 대학생이 아니어서 시위에 직접 가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신 우리에게 술을 자주 사주었다. 훗날에도 교수라는 이유로 함께하지 못하는 게 죄라도 되는 듯, 우리를 만나면 붙들고 술을 사주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대학가가 쑥대밭이 되던 무렵, 독재에 격노하던 송 교수는 부릅뜬 눈을 감추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저지를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국문과 교수로서도 충실했지만, 그 무렵 참으로 재미있고 알맹이가 가득한 소설 <자랏골의 비가>(1977), <도깨비 잔치>(1978)> 등도 발표하였다. <자랏골의 비가>에 나오는 그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국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언어의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는 순진성, 조국이 처한 그 큰 불행을 못 견디고, 송 교수는 마침내 한판 벌이고 말았다. 전남대 동료 교수 10명과 함께 1978년 6월 27일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였다. 당시 독재정치 의식화작업의 상징인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정면 비판으로 독재자의 심장을 찌르는 명문의 선언문이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억지 논리로 송 교수는 그렇게 원하던(?) 감옥행을 이루고야 말았다. 참으로 무섭고 겁나던 시절의 용감한 행동이었다. ‘양심을 속이지 못하는 지식인의 실천’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1년 남짓 감옥생활을 하고 난 송 교수는 이제 무료변론을 해준 홍남순 변호사와 후배인 나와 함께 민주화투쟁 최전선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는 투사가 되었다. 바로 이어서 5·18광주항쟁 때,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고 억울해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던가. ‘홍·송·박’ 세 사람은 당연히 광주항쟁 소용돌이에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송 교수의 그 당당하던 감옥생활 모습은 참으로 대인의 모습이었다. 그 추위와 고달픔에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고 호호탕탕 옥살이하던 모습은 후배들이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의 공포와 협박, 잔인함에도 양심의 부끄러움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냈음을 또 잊어선 안 된다. 대학 교수나 이름 높은 소설가로서 얻은 기득권을 모두 포기할 줄 알았던 그 양심에의 충실함, 바로 그 때문에 고인은 존경을 받아야 할 걸출한 이 시대의 의인이었다.

5월 항쟁 이후 홍 변호사와 고인이 이끌던 민주화운동에 나는 심부름꾼 노릇을 하면서, 구속자협의회를 만들고 위령탑 건립 전국민위원회 등을 만들면서 광주의 운동을 힘차게 진행시켰다. 사건 때마다 공포와 위협을 느끼면서도, 일을 마치면 우리는 곧장 술집으로 달려가 마시고 또 마시며 술에 취해야 했다. 얼마나 맛있게 마시던 술이었던가. 이제 다시 형님과 술을 마실 수 없다니 너무나 슬프고 외롭다. “송 교수님,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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