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고문학-산문2-정명국사 천인의 ’천관산기‘(4) - 중국 영덕 지제산서 어떻게 천관보살사상이 시작됐을까
장흥고문학-산문2-정명국사 천인의 ’천관산기‘(4) - 중국 영덕 지제산서 어떻게 천관보살사상이 시작됐을까
  • 김선욱
  • 승인 2022.02.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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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원표에 의해 천관보살 신앙 적극적으로 유포
’지제에 이르지 못하면 승려가 아니다’ 말까지 유포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중국 지제산 전경
중국 화엄조동으로 불리는 지제산 화엄사

 

 

 

 

 

 

화엄사 천관각에 안치된 천관보살상

 

 

 

 

 

 

<지난호에 이어>

‘지제산’의 의미와 중국 현지의 지제산

우선 그 ‘지제산(支提山)’부터 그 의미를 살펴보자.

‘지제(支提)’는 사탑(寺塔)의 다른 이름으로 ‘악(惡)을 멸하고 선(善)을 심는 일’이라는 의미다. 불서에서도 성자가 죽거나 화장한 곳에 만든 불사리가 없는 사탑, 불전을 의미한다. 보통 예배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불서에도 “지제(支堤)를 조성한 일은 그 기원이 오래되었고 대체로 과보(果報)에 응하고자 선인(善因)을 심는 것 支提之製其流蓋遠。夫且封且樹” (《광홍명집》)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제산은 곧 사탑이나 불전 같은 의미의 ‘성스로운 산’이라는 의미다.

불서에 의하면, 이 성스러운 산은 당초에 중국보다 인도에 있는 산이었다. 세존 입멸 후 2세기가 지났을 때 대중들의 신앙 형태에 따라 여러 부류가 난립되었는데 그 중에 ‘지제산부(支提山部)’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部執異論》 一卷)

또 불서 《마하승기율(摩訶僧祗律)》에 의하면, 부처의 십대제자였던 ‘우바리(優波離) 존자도 지제산(支提山)에 살고 있었다.(《摩訶僧祇律》)

또 《잡아함경》에도 “어느 때 부처가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머물렀을 때, 많은 비구들이 지제산(支提山) 곁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들은 다 아련야(阿練若)의 비구였다”(《잡아함경》는 기록이 보인다.

이 지제산은 중국 남방(당대 복건성福建省), 스리랑카(미가사산), 남인도(우선니국) 등 3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 세 곳의 지제산 중, 중국 남방의 지제산은 푸젠성(福建省) 닝거시(寧德市)에 있는 산이다.

이 닝거시에는 곽동산(霍童山)과 지제산이 있었다. (지제산은 당대 지세산에 천관보살이 거처한다는 《80 화엄》 이후에 불려졌을 것으로 유추된다.)

곽동산은 서주(西周) 때 곽동(霍童)이라는 진인(眞人)이 여기서 수련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唐) 천보(天寶) 6년(747년) '곽동동천(霍童洞天)'으로 칙봉됐으며 북송 때는 '곽동제일동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霍童山原名霍山,因西周時霍桐真人到此修煉故名。唐天寶六年(747年), 敕封為“霍童洞天”。北宋時有“霍童第一洞天”之稱)

또 곽동산은 도교의 동천복지(洞天福地)로 도교 성지의 하나였다. 당 나라 때 도사로 《도덕경(道德經)》의 정본(定本)을 만들었다는 사마승정(司馬承禎,639〜735)이 곽동산에서 수련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전국 도교 4대 명궁 중 하나인 학림궁(鹤林宫)이 있다.(全国道教四大名宫之一的鹤林宫)

곽동산에는 서쪽에는 지제산, 나라연암과 신선굴이 있다.(山之西有支提山、那罗延岩、神僧居) 그러므로 곽동산은 산 전체를 말하고 지제산은 곽동산 서쪽으로 99봉을 안고 있는, 곽동산의 품안에 있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제산은 어디에 있는 산인가.

지제산은 푸젠성(福建省) 닝더시(寧德市), 예전에는 닝더센(寧德懸) 자오청 구(蕉城區) 곽동진(霍童鎮)에 위치한다. 닝더 시가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남쪽으로 푸저우시(福州市)에서 127km 떨어진 ‘천관보살도장(天冠菩薩道場)’으로 이름난 푸젠 성급 경승지이다.

지제산은 해발 800m(혹자는 해발 1299.9m로 표기하기도 한다)에, 산 길이가 25km이고, 정상부에 99개봉이 솟아있고 700여개의 명소가 있는 명산이다.

지제산은 당(唐) 천보(天寶) 6년(747년), 천하명산(天下名山)을 봉할 때 지제산이 있는 곽동산이 36동 중 하나로 지정됐으며, 2007년엔 국가급 삼림공원인 ‘복건지제산국가삼림공원(福建支提山国家森林公园’으로 지정됐다. 지제산은 1983년 중국 국무원의 승인으로 전국 불교중점사원(全國佛教重點寺院)으로 지정된 천년 고찰인 지제산 화엄사를 품고 있다.

원표와 지제산 화엄사

푸젠성 지제산이 ‘천관보살도장(天冠菩薩道場)’으로 널리 알려진 데는 원표(元表)와 관련이 깊다.

중국에서, 당대(唐代) 중후반 신화엄 80권을 등에 지고 곽동산(지제산)을 찾아 온 한 승려가 회창법란(會昌廢佛, 당나라 무종 대에 이루어진 불교 등 외래 종교 탄압 사건)의 시기에 산 위의 석굴에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처음 기록으로 나타난 것은 승려 호덕(好德)이 868년(唐鹹通 9년)에 지은 《지제산기(支提山記)》에서였다.

“옛날 천조(天朝)에 승호(僧號) 원표(元表)가 있었는데, 언제 사람인지 모른다. 꽃으로 목함(木函) 두 개에 신화엄경(新華嚴經) 80 권을 담아 고난을 자처하며 산을 찾아왔다. 그 석굴의 높이는 매우 높고 깊이는 높이가 100丈, 넓이가 120 丈 정도 되었고 아래는 편평하여 거울과 같으며 위로는 뚫은 것 같았다. 때때로 보복사 승려 혜평이 있었다. 이 굴에서 얻은 것은 멍석에서 노는 것이었다. 산 아래 도위(都尉寺)도 맞아들였다. … 원표 스님의 화엄경 독송소리를 듣고 어느 날 나무꾼이 도착하였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그 땅에 절이 세워졌다고 한다. 원표 스님은 화엄경을 독실한 불자들에게 주고 이후 ‘하늘을 올라가 떠났다”. 《支提山記》

이 기록은, 원표와 지제산 기록으로는 최초의 기록으로 원표가 어디 사람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당대(당통함 연간인 860~873)에는 '지제(支提)'라는 산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책의 표제가 지제산支提山이었다). 즉 곽동산을 지제산과 동일시한 것이다.(已將霍童山等同於支提))

이 《지제산기》 이후 송 나라 승려 찬녕(贊寧,919∼1001)이 988년 《지제산기(支提山記)》를 토대로 여기에 더 추가해서 다시 원표와 지제산 이야기를 기록하니, 그 유명한 《송고승전(宋高僧傳)》의 ‘당고려국승원표전(唐高麗國僧元表傳)’이었다.

승려 원표는 본래 삼한인이다. 천보 연간(742∼755)에 화토(중국)를 유람하였다. 이어 서역(西域)에 가서 성적(聖迹)을 첨예(瞻禮)하였다. 심왕보살(心王菩薩)을 만나 지제산(支提山)의 영부(靈府)를 지시받았다. 그리하여 80권 화엄경(華嚴經)을 지고 곽동산(霍童山)을 심방(尋訪)하여 천관보살(天冠菩薩)에 예(禮)하고 지제산의 석실(나라암 석굴)에 이르러 집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이 산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였는데, 거주하게 되면 반드시 정진(霆震)·맹수·독충 등이 많거나, 그렇지 않으면 귀매가 사람을 호리거나 어지럽힌다. 일찍이 도를 얻지 못한 승려가 있어 하룻밤을 묵으며 산신령이 쫓아내어 단박에 산 아래 수 리에 몸이 떨어져 있었다. 원표는 경을 가지고 머물며 계곡에서 물을 마시고 나무열매를 먹었다. 이 후에는 그의 출처의 자취를 알 수 없다.

당시 회창폐불(會昌廢佛)(841∼845) 때였다. 원표는 이 경을 화려목(華櫚木)으로 만든 함(函)에 넣어 석실 깊숙한 곳에 보관하였다. 당(唐) 대중(大中) 원년, 보복사保福寺) 혜평선사(惠評禪師)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신사를 거느리고 감로도위원에서 영접하였는데, 그 종이와 먹이 새로 옮겨 쓴 듯하여, 지금의 복주승사(浙福州僧寺)에 보관하고 있다.(《宋高僧傳》

이 두 책자가 발간 된 후 《지제산기》와 《송고승전》의 원표 이야기는 거의 기본 텍스트가 되면서 이후에 간행된 여러 사적들 즉 《보림사사적기(寶林寺事跡(記)》, 《지제사기(支提寺誌)》, 《영덕현지(寧德縣誌)》 , 《나라암비기(那羅岩碑記)》 등에도 그 관련 기록들이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원표가 당대 실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국 현지, 즉 푸젠성(福建省) 닝더시(寧德市) 지제산의 중심 사찰인 ‘지제산 화엄사’(속칭, 곽동화엄사, 화엄사, 지제사)와 나라암(那羅岩,那羅延窟)에 위치한 ‘나라사(那羅寺)’의 역사에서 원표와의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이다.

지제산 화엄사는 원표 스님을 화엄조동 개산조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나라사에는 원표 조사(祖師)詞)상이 봉안돼 있다. 나라사는 석굴 안에 이층 건물의 암자가 있으며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사이에 개산조인 원표의 석상도 봉안돼 있다고 한다.

“화엄사(華藏寺)는 한족(漢族) 지역 불교의 전국중점사원의 하나로 송개보(宋開寶) 4년(기원후 971년)에 창건되었는데, 당나라 고려 승려 석원표(釋元表)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송한 데서 연유한다 華嚴寺,也稱華藏寺,爲漢族地區佛教全國重點寺院之一,創建於宋開寶四年(公元971年),緣於唐代高麗僧人釋元表在此講頌《華嚴經》,缘于唐代高丽僧人释元表在此讲颂《《華嚴經》”

이 글은 중국의 인터넷 ‘백도백과(百度百科, baidu 백과)’에서 지제산 화엄사를 소개하는 첫 문장에 나오는 글이다.

“화엄사는…석원표(釋元表)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송한 데서 연유한다. 缘于唐代高丽僧人释元表在此讲颂 華嚴經”이라는 이 문구는, baidu 백과 외에도 중국의 관영 방송인 CCTV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제산 화엄사 소개 글을 비롯해 수많은 인테넷 검색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표는 영덕의 나라암에서 《80 화엄경》을 설하고 유포시켰다. 《80 화엄》 보살주처품에서 설한, 즉, “진단국(震旦國)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나라연굴(那羅延窟)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다. 震旦國有一住處,名:那羅延窟,從昔已來,諸菩薩衆於中止住”의 내용이 가르킨 바로 나라연굴 이었다.

그의 중심 불교 사상은 천관보살 신앙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는 ‘지제산은 천관보살이 거처하는 설법하는 산’ ‘보살이 상주하는 나라연굴’등으로 알려지며 지제산은 복건성의 명산으로 유명해졌으며, 하다못해 “지제에 이르지 못하면 승려가 아니다 不到支提枉爲僧”말이 명언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영덕 지제산에서 이러한 원표(742〜756) 이후, 2세기가 지난 971년(宋開寶 4년)에 설립된 ‘지제산 화엄사’ 역시 말 그대로 중국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다.

지제산 화엄사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식 문건에서도 서두에서 원표를 등장시키면서 지제산 화엄사의 기원을 《80 화엄경》을 강송했던 원표에서 찾고 있다. 또 이 화엄사가 천관보살을 신앙했다는 연유 하나로 사찰 창간 때 조상됐던 1,000개 천관보살상 조상도 소개하고 있다.

“충의왕이 불교에 마음을 두고 즉위 초에 兩浙 諸郡의 名山과 聖跡이 있는 곳에 金帛을 희사하여 절을 창건케 하였다. 福州 支提山은 천관보살도량으로 왕이 七實를 보시하여 천관상 1천개를 만들고 이에 절을 세웠다”(《釋氏稽古略》권3

충의왕(忠懿王 재위 948∼9)이 복주(福州,복건성)의 지제산을 천관보살도량으로 인식하였고 칠보를 포시해 천관상(天冠像) 천 개를 만들고 사찰을 창건케 한 것이다.

또 이와 관련, 976(開寶 9년) 충의왕이 사소(寺疏)를 남겼는데, ‘신미년(971)에 금백 (金帛) 희사하여 정사(精舍)를 창건케 했으며, ‘천관보살상을 주조’하여 안치하고 대화엄사(大華嚴寺)라고 하였다는 기록을 남겨 지제산 화엄사의 창건 이유도 밝히고 있다.

결국 지제산 화엄사는 천관보살로 인해 천관보살과 함께 창건된 사찰이었던 것이다.

지금 사찰 경내 본당 서쪽의 천관각(天冠閣)에는 철주천관보살상(속칭 千聖天冠菩薩)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는 명영락 연간(明永樂 年間)에 명성조의 인효황태후(仁孝皇太后)사 하사한 것이다. 원래는 총 1,000존으로 현재 947존이 남아 있다고 한다. 화엄사 창건 때 조성하여 안치됐던 그 천관보살상은 병화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현재 사찰 내에는 천관관에 안치된 천관보살상 외에도 천관보살과 관련된 천관선실(天冠禅室) 천관림(天冠林) 등이 존치한다.

원표가 개산조가 된 나라사

그런데 원표의 천관보살 신앙의 실질적인 뿌리는 나라사(那羅寺), 나라연굴(那羅延堀)이었다.

나라사, 나라암은 닝더(寧德) 초성구(蕉城區) 호패진(虎貝鎮) 동원촌(東源村)에 있다. 지제산 주봉인 화정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원표가 《80 화엄》을 가지고 들어가 수행하였던 그 문제의 나라연굴에 있는 사찰이다.

지난 2010년대 초반, 중국 푸젠성 닝더(복건성 영덕)의 나라사에서 ‘나라암비기那羅岩碑記’을 발견, 국내 학술지 《신라문화》에 나라암비기 내용을 발표했던 박현규 교수(순천향대)는 “나라암(那羅寺, 那羅延堀)에는 명 만력 32년(1604)에 진도종(陳道宗)이 나라사를 창건했다는 나라사의 내력 등을 적은 ’나라암비기‘가 세워져 있으며 원표가 나라암을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라고 명기되어 있다. 오늘날 영덕 불교계에서는 원표를 천관 사상을 퍼트린 지제산의 개산조로 꼽고 있다”고 밝히고 ’바라암비기‘의 탁본 내용과 그 비기의 전문과 해석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나라암비기’에서 원표와 관련된 내용으로 “(원표는) 81권 화엄경(80권 화엄경에 목록 본 1권 포함으로 해석)을 지키고 …화엄경을 독송하고… 선승 원표가 (여기에) 사찰을 처음으로 세웠고 원백(元白, 원표의 제자)과 함께 공덕을 일으켜 명산 도장을 열어 해국(海國)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 이곳은 실로 민동의 제일동천이다”라고 기록된 나라암비기의 내용도 소개했다. 또 현장 답사 내용에서 ‘나라사 동굴 안쪽에 중앙에 관음보살상을, 좌우에는 보현보살보살상과 문수보살상을, 문수보살상 옆에 달마대상과 지장보살상을 모셔 놓았고, 문수보살상 옆에 개산조인 원표선사를 기리는 가람보살상(伽藍菩薩像)을 모셔놓았다고 소개했다.

지금의 나라사, 나라연굴사는 원표에 의해 세워져 그가 나라사의 개산조로 숭배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나라사에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사이에 개산조 원표의 석상이 봉안돼 있다고 밝힌 것은 박현규 씨 뿐이 아니다. 나라사를 답사했던 조영록 씨도 복건성 답사기에서 그 사실을 증언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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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홍명집13권 구잠편九箴篇

2) 《摩訶僧祇律卷 第三十> 尊者優波離在支提山中住

3) 《잡아함경27> 공작경孔雀經

4) 위성 천관산 이야기: https://m.blog.naver.com/, 불광대사전

5) 도교 상청파 모산종 제12대 종사

6) 천관보살이 상주하는 지제산을 때로 곽동산(霍童山)’으로 부르기도 했다. “장계현(長溪縣) 곽동산(霍童山)에는 신선들의 동부(洞府)가 많다고 한다. 경 중에 말한 바에 천관보살(天冠菩薩)이 승려의 무리를 이끌어 이곳에 거처하면서 화엄성회법(華嚴性海法)을 설하신다고 한다”(宋高僧傳》〈唐福州保福寺本淨傳)

7) https://baike.baidu.com/ 참조하다

8) 지제산기(支提山記): 昔則天朝有僧號元表不知何時人以花櫚木函二隻新華嚴經八十卷躬自齎荷來尋茲山乃卜石窟而居其窟高可百尋深廣百二十丈下平若鏡上方若鑿時有保福寺僧惠平因遊茲窟而得之迎出山下都尉

9) 宋高僧傳30, 雜科聲德篇 l0-2 唐高麗國元表傳 : 釋元表本三韓人也天寶中來遊華土仍往西域瞻禮聖蹟遇心王菩薩指示支提山靈府,《宋高僧傳遂負華嚴經八十卷尋訪霍童禮天冠菩薩至支提石室而宅焉先是此山不容人居居之必多霆震猛獸毒蟲不然鬼魅惑亂於人,曾有未得道僧輒居一宿爲山神驅斥明旦止見身投山下數裏間表齎經棲泊澗飲木食後不知出處之蹤矣於時屬會昌搜毀表將經以華櫚木函盛深藏石室中殆宣宗大中元年丙寅保福慧評禪師素聞往事躬率信士迎出甘露都尉院其紙墨如新繕寫今貯在福州僧寺焉

10) 조영록, ‘중국 복건지역 한국관련 불적 답사기’, 신라문화15. p.230.

11) 百度百科https://baike.baidu.com item 華嚴寺-福建省宁德市華嚴寺

12) http://news.cntv.cn 新闻台 新闻中)

13) http://news.cntv.cn https://www.chinanews.com.cn https://fo.ifeng.com )

14) ‘不到支提枉爲僧은 오늘날 화엄종 도장으로서 지제산을 설명하는 문구에는 거의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https://www.enmsb.com article 支提山文化 https://zh.wikipedia.org wiki 支提山 http://www.ndwww.cn 闽东之光 闽东文物 2https

15) 지제산 화엄사 : http://www.zhitishan.org/ 支提文苑>第一章> 緒論

16) 《釋氏稽古略3. “(忠懿)王 留心釋敎 嗣位之初 凡兩浙諸郡名山聖跡之處 皆賜金帛創建伽藍 福州支提山乃天冠菩薩道場 王施七寅 鑄天冠像一千身 仍創寺宇.”

17) 淳照 三山志((欽定四庫全書484,支提政和萬壽寺pp.558559, “是歲錢氏起廢爲寺號大華嚴(有開寶九年十月 天下大 元帥吳越國王錢俶 慶寺疏刻石 今存 疏內云 國家自辛未年中 爰捨金帛 命所司建精舍 仍鑄天冠菩薩梵)

18) 박현규, 福建 那羅岩碑記와 신라승 元表 행적, 신라문화, 통권 39pp. 159-182

19) 이 논문은 2013보림사 원표대사 국제학술대회에서도 푸젠 닝더 나라암 <나라암비기> 탁본이라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20) ‘원표대사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2013, 보림사, p41-42

21) 조영록, ‘중국 복건지역 한국관련 불적 답사기’, 신라문화15.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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