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낙토(樂土)였던 장흥 …복지(福地) 덧입혀져야
사설 - 낙토(樂土)였던 장흥 …복지(福地) 덧입혀져야
  • 김선욱
  • 승인 2022.02.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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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요청받는 생태문명, 덕지德地 성정에 복지福地 덧입혀야 한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던 때 장흥은 대한반도에서 삶의 경쟁력이 가장 우월한 땅이었다. 당대 자연의 대표적인 것은 산과 강과 바다였다.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장흥은 높은 산들이 많았고, 장흥 북단으론 탐진강이 관통하고 남단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다. 반도 최남단이어서 기온마저 온화했다.

특히 높은 산들인 500m 이상의 산들이 15개나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이러한 생태적인 환경으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강변에서, 산기슭에서 떼 지어 몰려 살았다. 고인돌 하나에 장정 수십 명, 수백 명이 필요했으니, 장흥에 그만큼 많은 고인돌 유적이 남아있었다는 것도 다양한 부족들이 장흥에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구석기‧청동기 시대, 원시시대엔 장흥 땅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떼 지어 살았을 만큼 ‘원시적 삶’의 경쟁력이 가장 우월했던 땅이었다.

이 같은 사실(史實)로, 지난 2004년 조선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장동면 북교리 일대에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귀중한 사료인 후기 구석기 유물 3만여 점이 대거 발굴됐다는 점에서, 또 지난 1988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장흥 에 분포된 고인돌 2250여 점(214개 군 2,253여기 확인)이 확인된 점(장흥의 고인돌 분포 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분포수였다)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던 때 최고의 가치는 덕(德, 仁)이요 지(智)였다. 산은 덕(德, 仁)이었고, 강‧바다는 지(智)였다. 하여 동양의 최고 지성이었던 공자도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智者樂水 仁者樂山”고 갈파했던 것이다.

장흥 땅은 이처럼 높은 산들이 많고 큰 강과 남해가 있어, 선비들이야 당연히 인산지수(仁山智水)의 가치관을 선호했을 테지만, 백성(토호민들) 역시 인산지수(仁山智水)의 가치관에 녹아 살았을 것이다.

신라 말엽, 천관산을 중심으로 천관보살신앙 등 불교의 세가 왕성, 천관산 일대가 불국토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가지산 자락에 선종(禪宗)의 종찰로서 보림사가 웅기하여 오늘날 조계종의 기원이 뿌리내리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고려조에 지방에서는 위계정, 원감국사 충지, 공예태후, 임유, 임원후 등 가장 많은 인물 군을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조선조에 호남 실학의 큰 별인 위백규 선생을 비롯하여 정경달 장군, 유호인 시인 등과 기행가사의 효시인 백광홍 등 대거 가사 문인들을 배출하며 ‘장흥가단(長興歌壇)’이 흥기할 수 있었던 것도, 장흥 땅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유한 성정(性情)인 즉 인산지수(仁山智水)의 땅으로서 덕지(德地)‧지지(智地)의 기운이 강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여 고려조의 최고 지성이었던 목은 이색(李穡)은 “장흥은 낙토(樂土)로 불리운다”고 정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을이 큰 바다 언덕에 위치하여 겨울에도 푸른 초목이 많다. 옛날에는 낙토樂土라 일컬었다. …백성들은 순박하고 다스리는 일은 간소하여 이름난 어진 이(名賢)와 재주 있는 대부들로 조용히 다스릴 뿐 다른 공리심이 없는 자가 많이 이곳의 수령이 되었다. …府岸大海。草木多冬靑。古稱樂土 …民淳事簡。名賢才大夫。靜理無外慕者。多爲之 <中寧山皇甫城記>)

백성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이 장흥 땅이었다. 장흥이 낙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산수가 우수하였기 때문이고, 그 산수의 가르침에 순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해를 연하고 탐진강이 흐르고 높은 산들이 많았고, 특히 그중 높은 산들은 장흥사람들에게 인덕행(仁德行)행의 교훈이 되고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37권 장흥도호부 불우조)에서, 승려 정명(靜明, 정명국사 천인을 의미한 듯) 천관산 기문(記文)이 그 좋은 예이다.

승려 정명(靜明)은 (천관산) 기문에서, “… 아, 옛사람이 몹시 산수를 사랑하여 나막신으로 올라간 이도 있고, …눈으로는 산의 울툭불툭한 것을 보고 귀로는 잔잔한 물소리를 들어 그 정서를 유쾌하게 하기에 힘쓸 뿐만이 아니라, 이 사이에 뜻을 붙여 인지(仁智)의 즐거움을 따라서 장차 그 본성을 회복하고 그 도(道)에 알맞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噫!古人酷愛山水,有蠟屐而上,倒驢而還,或信宿忘歸,長往而不返者,非唯目嵯峨,耳潺湲,務快其情而已。蓋寓意於山水之間,從仁智之樂,將復其性而適其道也。云云。”고 기록했다.

장흥인들이 산(천관산)을 사랑하여 산에 오르는 일은 “(천태만상의 그 산을 보고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신선한 그 정서를 유쾌하게 하기에 힘쓸 뿐만이 아니라, 이 사이에 뜻을 붙여 인지(仁智)의 즐거움을 따라서 장차 그 본성〔仁智〕을 회복하고 그 도(道)에 알맞게 하려는 것이다.”

장흥인들의 산행이 인지(仁智)의 즐거움뿐만이 아니라 인지(仁智)의 본성을 회복하고 그 인지가 추구하는 도(道)에 알맞게 하려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즉 장흥인들은 자연의 최고 덕목인 인지(仁智)의 가치관을 수행하고 순응하며 영위해왔다는 것이다.

하여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던 그 옛날, 장흥 땅은 덕지(德地)였고 낙토(樂土)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옛날의 영화는 흘러간 과거일 뿐이다. 또 현 시대가 요구하는 것도 덕지(德地)로서, 낙토로서 장흥은 아니다. 현대 장흥인 삶의 질이 보다 고양되고 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 곧 복지(福地)로서 장흥을 요청하고 또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덕지가 아니라 복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덕지요 낙토였던 그 장흥 땅의 본질, 그 성정을 완전히 외면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근현대 문명으로 야기된 자연(환경)의 파괴는 기후 온난화 등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있어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의 세기를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는 생태문명의 도래를 요청받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문명권은 예전 자연과의 공존을 되살린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 시대 자연환경의 우월성으로 장흥은 덕지요, 낙토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철저히 무시하려고 했던 그 자연, 그 생태환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향후 전개될 생태문명권 시대에서 장흥은 경쟁력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장흥이 생태문명을 선도해간다면, 장흥은 능히 ‘길이 흥할 땅’으로서 비전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덕지요, 낙토였던 장흥 땅의 성정에 복지(福地)의 덕목을 덧입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길이 흥하는 장흥’의 밝은 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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