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논단 - 기차와 수탈의 역사
장흥논단 - 기차와 수탈의 역사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2.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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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인/시인, 조선대명예교수
백수인/시인, 조선대명예교수

최근 확정된 목포-보성 남해안철도 전철화 사업이 2022년 완공되면 목포에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또한 해남, 강진, 장흥 등 기차역이 없던 곳에 새로운 역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호남과 영남의 교류가 훨씬 활성화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남해안에 새로운 철도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오래전 중국 광저우에서 쿤밍까지 26시간을 기차로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 도중 차창으로 보니 기차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철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 쪽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이 보였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어서 곁에 있던 중국인 승객에게 물었다. “언제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철로를 놓았답니까? 참 신기하네요.” 그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 선로의 나사 하나하나가 우리 중국 인민들의 목숨입니다. 청나라 말에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와 품질이 아주 우수한 쿤밍의 차(茶)를 대량으로 수탈하여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중국인들을 동원하여 만들었답니다.” 평범한 촌부로 보이는 그는 서구열강들에 의한 수탈의 역사를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어떠한가? 일본의 우익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에는 일본이 한국에 철도를 건설해 주어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이 그런 시각에서 억지를 부리는 것은 어느 점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온갖 착취와 수탈을 당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라이트 계열 친일 학자들이 그들이다. 일본이 고맙게도 한반도에 철도를 놓아주어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앞에 예시한 평범한 중국인의 의식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대한제국은 철도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896년 3월 미국 상사 대표인 모스(James R. Morse)에게 경인선 철도의 부설권을 주었다. 이에 모스는 부설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철도회를 조직하고 선로 측량에 착수했다. 그리고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현에서 한국인 인부 350여 명을 동원하여 경인철도 기공식을 거행하게 된다.

그런데 모스가 자금 조달에 실패하자 마침 대륙 진출의 야망을 가지고 있던 일본이 재빨리 모스와의 교섭을 추진했다. 모스와의 수차례에 걸친 협의 결과 일본은 경인철도인수조합을 설립하고, 1898년 12월에 철도부설권을 매수했다. 이후 일본은 경인철도합자회사를 설립하고 1899년 4월 23일 인천에서 성대한 기공식을 가졌다. 그 후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 간(33.2km)에 기차가 운행된 것이 최초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은 통감부 안에 철도관리국을 설치하고 경인선, 경부선, 마산선 등을 직접 장악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강점이 이루어진 1910년 이후에는 철도관리국이 조선총독부 내 철도국으로 이관됐다. 이와 함께 일본은 식민지 경제적 착취를 위한 철도망 확장에 나섰다. 이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등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철도 역사가 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철도는 일제강점기에 토지와 노동력 등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으로 대륙침략의 유용한 수단이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사실 기차(汽車)라는 단어조차도 일본어의 ‘きしゃ(汽車)’에서 가져왔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汽車(qiche)’라고 부르고, 기차는 ‘火車(huoche)’라고 한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는 1899년 경인선의 개통 소식을 전한 독립신문 기사의 구절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우리는 처음 기차를 ‘화륜거(火輪車)’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말인 ‘화륜거’를 순우리말로 번역하면 ‘불수레’에 해당한다. 이용악의 시 「전라도 가시내」에는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라는 시구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불술기’의 술기는 수레의 함경도 방언이다. 구소련의 고려인들에게 아직 ‘불수레’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음을 볼 때 ‘기차’라는 단어는 일제 식민통치가 깊어진 후에 생겨났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남해안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중국과 시베리아를 관통하여 유럽 대륙까지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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