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장흥읽기(1) - ‘월평‧월평마을 120주년 기념 사진집’에 부치는 헌사
김희태의 장흥읽기(1) - ‘월평‧월평마을 120주년 기념 사진집’에 부치는 헌사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2.23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사진 작가 마동욱, 눈으로 보는 사진향토지 30년의 기록
1,660장의 사진 국배판 322쪽에 담아, 전남 장흥 향양리 월평마을
역사, 인물, 민속, 세시, 의례, 건축, 경관, 생활, 기록의 집대성하다
김희태/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
김희태/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

<월평-120주년 기념 사진집>, 묵직한 책을 받았다. 2021년 1월 29일. 전남 장흥군 장흥읍 향양리 월평마을 사진향토지. 외우 마동욱 인형이 등기소포로 보내온 것. 닷새전 만나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했는데... 자료에 대한 약간의 내 의견도 있었지만 머뭇거린 사이.

그런 건 차치하고 우선 넘겨보았다. 사진으로 구성한 향토지. 전부터 구상했던 것이고, 일부는 실행도 해 보았다. 그런데 예상을 뛰어넘었다. 향토사 현장에서 여러 조사를 거쳐 글로 써서 정리했던 방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글로 쓰려 했던, 써 왔던 대부분의 것들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사진 한장 한장이 역사, 인물, 민속, 세시, 의례, 건축, 경관, 생활, 기록, 유산, 문화를 담고 있었다.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읽을 수도 있었다.

이내 한쪽씩 넘기면 다시 보았다. 사진도 헤아려 보았다. 모두 1,660장. 이 가운데 229장은 마을회관이나 주민들이 소장한 사진. 대부분인 1,441장은 마을사진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마동욱 작가 사진.

<월평-120주년> 마동욱의 사진은 ‘1991년 봄 억불산 정상에서 본 월평 마을’ 사진이 시작점이다. 그로부터 30년을 오가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했고 이를 집대성한 것이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 애초에 '필름' 사진기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비를 이고 지고 매들고 억불산을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월평>을 찾았을 것.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진’도 변한다. ‘필름사진기’는 점점 설자리를 잃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다. 삼발이를 매들고 올랐던 억불산 대신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마을을 보게 된다. 찍게 된다. 그리하여 시대흐름이 녹아 든, ‘인터넷’과 ‘비쥬얼’에 맞는 사진향토지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돌아보니 변화상이지만, 주민들의 생활사 현장이다. 꾸밈하나 없는 삶의 모습이다. 마을 곳곳의 현장, 주민들의 살아온 나날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동욱은 사회사정에 정통했고 시대정신에 투철했기 때문에 그 현장을 사진 기록으로 정리했던 것이다.

제1장 ‘월평의 역사’ 편은 문학가 김선욱님이 인구 변화, 마을 역사, 옛 지명들, 교육·문화, 민담, 마을의 특성, 산업, 역대이장, 중요사업, 인물, 월평공동체 등을 정리하였다.

제2장 ‘월평을 담다’ 편은 사진이 1,278장으로 이 책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본 월평, 월평마을 합동 칠순잔치, 월평마을회관 건립 헌성비 제막식, 월평마을 120주년을 기념하며, 월평마을속으로, 월평마을 속의 주요 사업장 등이다, 특히 월평 마을 속으로는 918장의 사진으로 말 그대로 월평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았다.

제3장 ‘나의 살던 고향은’ 편은 마을 출신들의 글을 실었다. 내가 살아 온 월평마을(김경전), 까마구때의 추억,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동각쟁이 아저씨, 어린시절 '독싸움' 놀이, 핑갱소리(임형두), 짚풀공예로 솜씨상을 받은 이상호 씨, 마을 교양방송 자료(일석 임홍권),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김선학) 등이다.

제4장 ‘월평마을 사람들’ 편은 월평마을 어른 들의 이야기를 마을 기록 작가들이 면담을 하여 정리한 것이다. 못 배운 게 한이 되요(김선주할머니/마동욱), 에러서부터 지게가 등을 때가 있었어요(안영근 장흥군농민회 장흥읍 지회장), 놈의 집 작은방으로 시집 왔소, 방 한나 정지 한나(이정순 할머니), 하고자픈 거 다 하고 살면 어뜨게 산다요?(박복자 여성노인회장), 슬라브집을 지어 놓고 딱 돌아가셨어(안미요 전 노인회장), 이석호씨 집안에서 업고 다녀야 쓴다니까(장안숙 부녀회장), 보따리 하나 들고 왔재. 그 시상에 뭐가 있었당가?(윤복님 할머니), 일곱 분이 계를 했는데 이름이 '묵계'라고 합니다(정충수 할아버지), 세상은 맘대로 안되는구나, 그때 알았지(임영묵 노인회장), 옷은 단벌 술은 말술이셨던 할아버지는(이형신 씨/이상 서선미), 월평마을의 농업(박형대) 등이다.

제5장 ‘우리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편은 옛날 사진, 철도공사로 인해 사라지게 될 마을 원도로 사수투쟁, 월평마을, 우리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옛 사진을 보며(문충선), 옛날 자료[문서 자료], 여우와 늑대가 살았던 사자산 위로 보름달은 떠오르고, 윌락평(문충선) 등이다.

앞 부분에 신축년의 마을형국도와 연속 지적도가 실려 있다. 형국도의 ‘신축’년과 <월평> 책이 나온 ‘신축’년은 띠 동갑이다. 아마도 1961년일 듯하다.

사진집으로 제했지만 사진향토지라 하였다. 몇가지 의미를 정리해 본다. 먼저 마을의 변화상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전해준다는 점에서 사진 작품을 모은 ‘사진집’을 뛰어 넘어 사진 향토지임은 앞에서 살폈다.

다음으로 마을 주민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제작 기획에 마동욱과 함께 월평마을개발위원회, 경노회, 청년회가 참여 했다. 보통의 마을지는 외부자의 시각에서 정리한 경우가 많다. 마을안에서 마을을 보는 입장은 많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월평>은 마동욱 작가의 사진이 주를 이루지만, 30년간 드나들면서 이미 마을 사람이 되어 있다. 주민들은 ‘내식구’ 대하듯 문을 열어주고 회관을 비어 주고 동네 곳곳을 안내해 주고 행사가 있으면 연락을 해 주었다. 마을회관의 사진, 돌아가신 어른들의 사진과 자료도 내 주었고 장롱 깊숙한 곳의 사진도 들춰내었다. 사진에 보이는 마을 어른들은 모두가 만족한 웃는 얼굴이다. 그만 큼 ‘우리의 일’로 여기고 참여 한 것이다. 1940년대의 군대 사진, 1960년대의 결혼식, 1978년의 장례식 풍경, 1986년의 용수로 공사 현장, 제3회 경로잔치 등등

또 하나는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실었다는 점이다. 인구, 지명, 산업, 사업, 이장 등 마을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마을 출신들의 회고담이나 현장 이야기를 엮었고, 마을을 이끌었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마을 작가들이 정리하였다. ‘자응[장흥]’ 말 그대로 옮긴 것도 의미가 있다. 몇 분의 글을 보자.

94세 윤복임 할머니의 이야기는 미륵댕이에서 걸어 들어오는 70여년전의 월평마을 입지와 혼인 풍습, 먹거리 풍속을 알 수 있다.

“시집 올 때 얘기 해 주라고? 보따리 하나 들고 왔재, 그 시상에 뭐가 있었당가? 차가 없응께 20리를 걸어 나와야 써, 대덕 차부에서 차를 타면 미륵댕이에서 내려 줘, 그라면 또 걸어와, 그라고 시집 왔어. 뭐 갖고 왔냐고? 목화 심궈서 그것을 따 갖고 실을 뽑아서 베짜 갖고 그런 놈으로 저고리 해서 갖고 왔재, 다래, 그것이 솜이 되야. 그랑깨 그거 묵으면 문둥이 된다고 했는디 몰래 따 묵어. 달큰하니 맛있응께"(94세 윤복임 할머니, <월평> 268쪽)”

마을 원로 김경전님의 이야기는 월평마을의 운영원리를 알 수 있다. 마을 사무의 변화상도 알 수 있다.

“월평이장을 서로 하려고 하지만 하려는 사람은 시키지 않고, 전형위원을 정해서 선거 없이 갈등을 최소화 해 선임한다. 임기는 2년으로 했으며 연임 2년을 더 할 수 있다. 4년 후에는 자동으로 퇴임한다. 그리고 전에는 수기로 마을 대소사를 데, 마을이 커서 서기장을 두고 일을 보았다. 예전에는 이장이 주민들의 돈을 거두고 나누어주며 관리하였다. 정부 매상, 농약대, 비료대, 농자재대, 세금을 거출하여 관리를 했다. 요즘에 와서는 인터넷이나 팩스로 전달하며 핸드폰을 이용한다. 어르신들이 이장을 할 때는 행동이 불량하거나 나쁜 일을 하면 마을에서 추방시키는 단호한 규칙이 엄하게 있었다. 지금은 주민이 온순하고 가시가 없고 파가 없이 이장을 중심으로 긍정적으로 잘 협조하여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있다.”(김경전, 236쪽)

89세 김선초 할머니의 이야기는 70여년전의 마을 세간 살이 공간과 그 어려움을 알게 해 준다.

“내가 클 때 때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라. 우리 집이 5남매였고 증조할아버지까지 살고 있었응께 그 식구들이 얼마나 많았것소. 그때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산께 남의 집 접방도 구하기 심 들었제. 접빵 하나 구해 작은 방에서 온 식구들이 사는 집들도 많았지라. 하니, 옆에서 한 할머니가 자꾸만 할머니이야기에 말을 보태주었다. “그라제 접빵도 아무나 살 수 없었제, 접방이 귀했지라.”(89세 김선초 할머니, 260쪽)

월평 출신 언론인 임형두님의 회고는 1970년대의 마을 세시 풍속을 알 수 있다. ‘독싸움’에 대한 자세한 기억의 회고담이다.

“생양정(生陽亭) 마을과 월평(月坪) 마을은 5리 정도 떨어져 있다. 보통 '시앙쟁이'라고 불렀던 생양정 마을은 조그만 야산 언덕에 남향으로 들어졌고, 월평 마을은 들판의 경사를 따라 서향을 한 채 넓게 자리 잡았다. 두 마을 아이들과 청년들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오후나절이면 들녘에 몰려 나와 돌싸움 놀이를 하곤 했다. 말이 '놀이' 이지 실제로 주먹만 한 돌들이 날아다니는 투석전(投石戰)이었다. 우린 이를 '독싸움이라고 했다. 여기서 '독'은 '돌'의 전라도 지방말이다.“(임형두, 246쪽)

무엇보다도 <월평>의 사진들은 나열식 정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그 곳에 살았던 사람[인간]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은 장소와 시기를 표기하고 분야별로 나누었다는 점도 사진향토지의 한 표준이 될 만하다.

장흥군의 마을은 650개[반]이다. <월평>의 사례가 온 마을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심혈을 기울여 주신 마동욱 작가와 월평마을 어른들께 경의를 표하면서 감히 헌사로 제하여 글을 올린다.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