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수상 - 홀로 걷는 달 2월
장흥수상 - 홀로 걷는 달 2월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3.08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용수/ 시인, 수필가
유용수/ 시인, 수필가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대지를 깨우고 하늘을 열고 있다. 싯푸른 하늘에서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산을 흔든다. 웅크린 채 오금을 펴지 못한 2월 숲은 도저하게 밀려드는 쓸쓸함을 붙들었다. 따스함이 애처롭다. 꽃망울을 튼 동백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듯 몸을 숨기고 있는걸 보면 2월 된바람으로는 대지를 깨울 수 없을 것 같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혼자서 싹을 틔울 수 없다. 봄바람이 몸을 깨워야 하고,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흙이 풀려야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다. 그 여린 싹이 꽃이고 자연이고 작은 우주다.

햇살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빈 몸으로 서 있는 나뭇가지에 떨켜가 몸을 부풀리고 있다. 나무는 기다림을 내세우지 않는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나무는 절박하고 간절하다. 매몰차게 자신의 몸을 찢고 잎을 틔우지 못하면 천년 고목도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뒤틀리지 않고 올곧게 선 목련도 늙은 노송도 뿌리에 힘을 주고 비꽃을 기다리고 있다.

흐릿해진 2월 숲이 움직인다. 저기 저 누런 풀밭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나뭇잎이 들썩인다. 나뭇잎이 흐트러진 자리에 흙이 부서지고 있다. 조금씩 긴장을 풀고 있었나 보다. 이런 날은 너럭바위에 우두커니 앉아 숲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 자리는 응달지고 촉촉한 곳이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생명이 꿈틀거린다. 바람이 지나가고 빈약한 햇볕이 머물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도 들린다. 허리를 숙이고 돋아나는 야생화와 마주하고 싶다. 그들은 일상의 문명을 알지 못한다. 부드러운 운무의 느낌까지 소중해지는 곳이기에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를 잠시 부려놓아도 괜찮다. 그곳에 핀 야생화와 제일 먼저 눈 맞춤하고 싶다. 혹여, 조금 뒤늦게 핀 꽃이라도 오래전부터 너는 늦게 왔다고 말하며 안부를 묻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강을 지켜온 강모래가 사라졌고, 가을이면 허리를 휘청거리며 석양을 껴안던 억새가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매일 아침 눈 맞춤하던 늙은 수양버들도 사라졌다. 누구도 말이 없다. 왜, 사라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재해 예방과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산을 파헤쳐 도로를 뚫고, 강모래를 걷어내는 당당함에 우리는 주눅이 들었다.

시애틀 추장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묶여있다고 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대지에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추장은 말한다.‘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치듯이 당신들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한다.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의 소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페터 볼라벤은 ‘숲에게 영혼을 되돌려 주라’고 한다. 그리고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숲에게 맡겨라. 고 말하고 있다. 숲의 위기는 인간이 숲을 가꾸고 보호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호소한다.

나는 오래전 초록의 나뭇잎이 파란 하늘과 뒤섞인 맑은 하늘을 보았다. 붉은 노을이 강을 태우던 모습도 보았다. 강울음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자갈밭에 누워 뭉게구름을 보았고, 어둠이 내리면 나뭇잎이 서로를 보듬는 자귀나무도 어루만지곤 했다. 아직도 붕어 몇 마리를 강아지풀에 꿰어 집으로 오던 순한 강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먼 곳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우람한 덤프 차량이 오늘도 모래를 싣고 지나간다.

오늘은 마음이 시럽다.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며 산을 깨우더니 긴 세월 붙들고 있던 가지를 털어낸다. 마른 삭정이는 나무의 모든 것을 품고 떨어졌다. 그도 봄이면 새싹을 틔웠고, 여름날이면 천둥과 번개를 마주하고 몸을 떨었던 가지가 오늘 된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다. 부러진 삭정이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내려와 쉬었다 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삭정이 곁에 푸른 잎을 숨기고 봄을 기다리는 춘란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쯤이면 춘란은 자신의 몸을 침잠하게 드러내는 시기이다. 은은한 향기를 품고 봄을 기다리는 춘란이 대견하다.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 춘란의 잎이 산 짐승에게 뜯겨 나갔다.

그도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아함은 사라지고 춘란이라고 말하기에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춘란이다. 그도 사력을 다해 꽃을 피워 낼 것이다. 비록 절반의 잎이 남아 있을지라도 매혹적인 향기를 토할 것이다. 향기는 긴 강을 젖지도 않고 건너와 우리들의 코끝을 자극하며 봄이 왔음을 전해 줄 것이다. 이것이 홀로 걷는 달 2월에 내가 기다리는 봄이다. 봄은 누굴 선택하지 않는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가고 편견 없이 모든 생명을 깨운다.

2월은 은은한 향기로 기억되는 달이다.

흙이 조금씩 풀리고 산 밭둑 흑매화가 피는 달이다. 인디언은 2월을 강이 풀리는 달, 홀로 걷는 달이라고 했다. 어김없이 흑매화에 햇살이 달라붙었다. 매혹적인 매화의 가지에 봄이 와 있다. 어느 시인은 봄을 잉태하기 위해 2월은 몸 사래를 떨며 사르륵사르륵 허물을 벗는다고 했다. 봄 문틈으로 머리를 디 밀치고 꼼틀 꼼지락거리며 빙하의 얼음을 녹이는 달이라고 노래했다. 오늘 산길에서 얼음을 둘러쓰고 꼼지락꼼지락 겨울을 벗고 있는 2월과 마주했다. 비칠비칠 몸 사래를 떨며...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