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장흥읽기② 장흥대교(예양교)
김희태의 장흥읽기② 장흥대교(예양교)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3.08 1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마다 9월이면 말뚝과 대나무로 만든다, 장흥 예양강다리
김희태/前 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
김희태/前 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
1916년까지 있었던 장흥교(사진 양기수 소장)
1917년 3월에 목조토교로 세운 장흥교의 겨울경관(사진 이대희 소장)

 

 

 

 

 

 

 

 

 

 

 

해마다 9월이면 (부동)방 사람과 부내(방) 사람들이 말뚝과 대나무로 만든다.(歲九月 坊民與府內 楗竹成之)

언제적 어디 쯤의 기록일까? 무엇을 만든다는 것일까?

장흥 읍내를 가로 질러 흐르는 예양강의 다리를 말함이다. 기록은 1747년 <장흥읍지>. 이 읍지가 쓰여지던 해가 영조 정묘(英祖 丁卯)년이라 보통 ‘정묘지’로 칭한다. 위 기록은 부동방의 교량조에 있다. 그 앞부분은 ‘동교는 예양강에 있다(東橋 在汭陽江)는 내용이다. 장흥부의 부동방에 있는 교량 가운데 ‘동교’의 기록이다.

동쪽은 부동방(府東坊)이지만, 맞은편 서쪽은 장흥도호부 읍치(邑治)가 있어 부내방(府內坊). 예양강을 가로질러 부동방과 부내방을 잇는 다리로서 ‘동교’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1747년에 이미 다리가 있었다. 읍지류 기록에서 ‘동교’외에도 ‘장흥교(長興橋)’, ‘동정교(東亭橋)’, ‘예양강교(汭陽江橋)’로 이름이 나온다. ‘동교’ 또는 ‘동정교’는 강의 동쪽의 의미도 있지만, 읍성의 동문 쪽의 뜻도 담고 있을 것 같다.

다리(교량)는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나 운송과 관련해 중요한 교통시설이다. 장흥읍에 소재한 다리는 동정교(東亭橋, 장흥교), 행원교(杏園橋), 역천석교(驛川石橋), 계수정교(桂樹亭橋), 작천교(鵲川橋) 등이 문헌 기록이나 지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장흥교는 장흥읍의 동부(건산리 3구)와 서부(기양리)를 잇는 주 도로(옛 국도 2호선)상에 위치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장흥읍지>(정묘지)에 ‘부동방과 부내방 사람들이 해마다 9월이면 말뚝과 대나무로 만든다.’고 했다. 이는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변화가 오기 때문에 장마철이 끝나는 9월에 공동노동으로 수리한 것을 말함이리라.

언제부터 예양강 동교 다리가 있었을까? <정묘지>(1747년) 보다 앞선 기록으로 「예강석교권선문(汭江石橋勸善文)」이 확인된다. 이민기(李敏琦)(1646~1704)선생의 문집, <만수재집(晩守齋集)>에 실려 있다. 1704년까지 활동했으니 정묘지보다는 50여년 가까이 앞선 기록이다. 장소는 예강 즉 예양강, 다리의 구조 형식은 석교(石橋). 권선문은 권선(勸善)하는 글.

이 글의 첫머리에 수령천(遂寜川)은 가지산에서 발원하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의 탐진강은 예전에는 수령천 또는 예양강으로 불리었는데, 두 가지 땅이름이 기록에 나온 것이다. 수령(遂寧)은 장흥읍 일원에 있던 고려시대 고을의 이름이기도 한다.

이민기는 장흥 건산리(巾山里)에서 출생해 만수동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했다. 특히 경세에 밝아 지방사정과 백성들의 폐단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민막소(民瘼疏) 등 실학 저술을 남겼다. 당연히 장흥 민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다리를 놓자는 일에 권선의 글을 짓게 된 것.

「예강석교권선문」은 보성 박사형(朴士亨, 1635~1706)의 <청광집>에 실린「마천석교권선문(磨川石橋勸善文)」과 함께 귀중한 건축기록유산이다. 마천석교는 현재의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있었던 다리이다. 1674년(현종 15) 7월에 세운 마천석교비가 득량면사무소 뜰로 옮겨져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333호.

그러면 언제부터 예양강에는 다리가 있었을까? 이민기 권선문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를 통해서 보자. 칠언절구 한수.

예양동교에서 汭陽東橋

다리위에 노는 사람 머리에는 꽃이 만발 / 橋上遊人花滿頭

성 가에는 달이뜨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 / 城邊月出水悠悠

가벼운 바람 봄옷을 입게 하네 / 輕風解作春衣吟

즐거움을 아껴서 밤새도록 머무르네 / 爲惜淸歡盡夜留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 1537~1582)의 <옥봉집>에 있다. 코끝을 스치는 순한 바람이 봄옷을 입게 하는 예양강의 봄 경관이다. 읍성 가로 달이 떠 오르고 예양강은 유유히 흐른다. 그 예양강의 동교에 노는 사람들을 보며 밤새 머무른다.

구완 이춘원(九畹 李春元, 1571~1634)이 시에도 예양교가 나온다. 이구완은 예양교에서 백선명 진남에게 주는 시를 남긴다. 선비들이 교류하면서 지은 것이다. 백진남(1564~1618)은 바로 백광훈의 아들이다. 시의 제목은 '예양교 사증백선명(汭陽橋 辭贈白善鳴[振南])' 시의 내용에 또한 다리가 나온다. (橋頭遊客邀楚姬 望月臨江歌竹枝 東齋寥落一尊酒 我獨不如年少時)

이처럼 예양강에는 1500년대 중후반에도 다리가 있었다. 이때의 다리와 100여년 뒤 1600년대 후반쯤 이민기의 권선문에 따라 들어선 ‘석교’, <장흥읍지>(정묘지) 등에 보이는 ‘말뚝과 대나무로 만든’ 다리가 같은지, 다른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읍지나 지지류에 기록된 장흥 동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흥읍지 정묘지(1747)> ; 부내방 교량조 - 동정교는 동문 밖에 있다.(東亭橋 在東門之外) *<장흥읍지 정묘지(1747)> ; 부동방 교량조 - 동교는 예양강에 있다. 해마다 9월이면 부동방 사람과 부내방 사람들이 말뚝과 대나무로 만든다.(東橋 在汭陽江 歲九月 坊民與府內 楗竹成之)

*<여지도서(1759)> : 예양강교는 부의 동문 밖에 있다.(汭陽江橋 在府東門外)

*<대동지지(1861)> : 예양강교는 동쪽 2리에 있다.(汭陽江橋 東二里)

*<장흥지 경술지(1910)> : 부동방 - 동정교는 예양강 위에 있다. 부동방과 부내방민이 만들었다.(東亭 在汭江上 坊民與府內成之)

1872년 장흥부지도에서 그림으로도 볼 수 있다. 다리 곁에는 ‘동교(東橋)’리 표기했다. 장흥읍성 동문이 보이고 다리 윗쪽으로 기양(岐陽), 장시(場市), 아래쪽으로 장대(將臺), 예촌(汭村), 예양강(汭 陽江), 오른쪽으로 괘야(掛也), 건산(巾山) 지명이 보인다. 동교 다리는 간략한 그림이지만, 대나무를 가로로 엮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흥교는 사진 자료가 남아 있어 중요하다. 1916년까지 있었던 다리를 찍은 사진(양기수 소장)이다. 말뚝과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장흥읍지>의 기록을 뒷받침 해준다. 사진을 보면, 말뚝을 세우고 대나무를 가로로 엮어서 일정 너비의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대나무로 엮은 일종의 상판을 놓았다. 8개소의 교각이 보인다. 사진은 서쪽 기양리에서 동쪽을 보고 찍은 것인데 멀리 억불산의 사면이 보인다. 다리 가에는 토석담 위에 지은 초가집이 있고 다섯명의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대나무다리는 1917년에 목조 토교로 다시 건립한다. 전해지는 사진(이대희소장)을 보면 세 개의 목조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가로재와 X자형의 가새로 고정하였다. 기둥 위로는 멍에보를 올리고 다시 상판을 받칠 수 있는 '짧은 보'를 설치하였다. 보통 길게 쭉 연결되는 것인데, 이 다리에서는 간단한 구조를 위해서 짧게 설치되어 '짧은 보'라는 용어를 써 본다. 기둥과 멍에보, 짧은 보는 마치 목조구조에서 기둥 상부에 첨차를 올린 공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교각인데 사진상으로 보면 얼추 30여개소 이상으로 보인다. 그 위로 판재를 동서로 길게 연결하고 바닥에 흙을 쌓아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양 가장자리에는 난간을 만들었다.

앞의 대나무다리가 서쪽에서 찍은 것인데, 이 목조토교는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찍은 것이다. 멀리 장원봉과 왼쪽(향좌)에 남산, 오른쪽에 ‘삐비정’ 산이 보인다. 다리 바로 건너에 노거수가 보이며 다리 시작 부분에서는 강터로 내려가는 통행로가 보인다. 양쪽 산 밑으로는 민가(초가)가 보인다. 다리 시작부분에 있는 건물은 트러스트 구조로 보인다.

석교, 말뚝과 대나무다리, 목조토교에 이어 1927년에는 철근콘크리트교로 가설된다. 1927년 4월 14일 준공. 뒤이어 1958년에는 확장공사를 한다. 지금의 장흥교는 그 뒤에 다시 가설한 것. 이어 제2, 제3의 다리가 건설되었고, 이제는 철교도 공사가 한창이다.

*참고: <옥봉집>(백광훈), <구완집><만수재집>(이민기), <장흥읍지 정묘지>(1747), <여지도서>(1759) , <장흥부지도>(1872, 규장각), <장흥지 경술지>(1910), <장흥군지>(1993),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강수의), 역사사속의 장흥다리(양기수, <장흥문화> 37, 2015), 지역의 민중사를 증명하는 한 장의 사진 장흥교(長興橋)(양기수, <장흥문화관광해설협회 다움카페[http://cafe.daum.net/hyssda]>, 2016.1.17.)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