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연암 박지원의 ‘조선풍(朝鮮風)’
■특별기고 - 연암 박지원의 ‘조선풍(朝鮮風)’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6.22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재소/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퇴계학연구원 원장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한자로 문자 생활을 영위했다. 이렇게 중국의 문자인 한자로 저술을 하고 한자로 편지를 쓰는 등의 문자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국 문화에 젖게 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자가 사용자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의 문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압도적이어서 쉽사리 그 자장(磁場)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주련(柱聯)에 ‘대명산천(大明山川)’ ‘숭정일월(崇禎日月)’이라 써 붙이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야는 문학이다. 우리의 옛 선인들은 시문(詩文)을 지으면서 중국의 시문을 모범으로 삼았다. 중국의 시문 중에서도 시에서는 성당(盛唐)의 시를, 문(文)에서는 한(漢)나라의 문을 교과서 삼아 필사적으로 이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한당(漢唐)의 시문을 얼마나 닮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우열이 판가름 나곤 했다. 이런 풍토에서 중국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으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그중의 한 명이다. 그는 장편시 「증좌소산인(贈左蘇山人)」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

눈앞에 참다운 맛 들어있는데/卽事有眞趣

어찌하여 먼 옛일 끌어야 하나/何必遠古抯

한‧당이 지금 세상 아닌 바에는/漢唐非今世

풍요(風謠)는 중국과 다르고 말고/風謠異諸夏

반고(班固)나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난대도/班馬若再起

예전 반‧마(班馬) 결단코 아니 배우리/決不學班馬

(……)

이 시에서 ‘눈앞 일[卽事]’은 ‘먼 옛일[遠古]’과 대립되어 있으며 먼 옛일은 구체적으로 한‧당을 가리킨다. 한‧당은 시간적으로 먼 옛날일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먼 곳이다. ‘눈앞 일’은 시간적으로 먼 옛날이 아니고 공간적으로도 멀지 않은 지금, 여기의 일 즉 당대 우리나라의 일이다. 구태여 먼 옛날의 한‧당을 끌어올 필요 없이 지금, 여기의 우리나라 일에 충실하여 작품을 쓰면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연암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난 글이 「영처고서(嬰處稿序)」이다. 『영처고』는 이덕무(李德懋)의 문집인데 「영처고서」는, 그의 시가 옛사람의 시를 닮지 않아 전아(典雅)하지 못하고 시시콜콜한 시속의 일을 즐겨 다루었기 때문에 볼만한 것이 없다는 세인의 비난에 대한 답변 형식의 글이다. 연암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무관(懋官-이덕무의 자)은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기후가 중국과 다르고 언어와 풍속도 한당(漢唐)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만약 작법을 중국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당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작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그 내용이 비루해지고,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그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뿐이다.

세인들의 비난은 이덕무의 시가 한당을 본받지 않았다는 데 기인한 것인데, 연암은 오히려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우리나라가 비록 구석진 나라이긴 하지만 역시 천승(千乘)의 나라이고 신라와 고려가 비록 넉넉지 못하나마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그러니 그 방언(方言)을 문자로 옮기고 그 민요를 운율에 맞춘다면 저절로 글이 이루어져 진기(眞機)가 발현될 것이다. 옛것을 도습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의 눈앞에 많은 일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시가 그렇다.”라 하여 이덕무의 시를 극찬하고 “이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란 말로 끝맺음을 했다. 이덕무의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란 말은, 그의 시를 『시경』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자로 문자 생활을 하면서도 중국 문화에 매몰되지 않고 조선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연암의 실학사상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송 재 소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 원장 *저서 : 〈중국 인문 기행 2〉,〈중국 인문 기행 1〉창비, 2017/2015/〈시로 읽는 다산의 생애와 사상〉, 세창출판사, 2015.04

〈다산시 연구〉(개정 증보판), 창비, 2014/〈다산의 한 평생〉, 창비, 2014/외 다수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