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장흥읽기(14) - 어제는 직업, 이제는 학문 - 정년을 넘어 청년의 마음으로,
■김희태의 장흥읽기(14) - 어제는 직업, 이제는 학문 - 정년을 넘어 청년의 마음으로,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7.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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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전 전라남도문화재 전문위원

분에 넘치는 자리였다. 꽃자리인 것은 맞지만 나에게는 과분했다. 그 자리 끝에 한마디 보태란다.

“문화재 보존과 정책, 그 현장과 전망” 학술좌담회.

2018년 06월 29일 금요일. 전남도립도서관, 남도민속학회 제228차 특집 학술좌담회 - 김희태 퇴직기념.

전국에서 모인,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들. 28개의 주제를 3분야로 나누어 좌담 발표.

“문화재계 원로께서 보내 주신 덕담 문자에, 좀 전 쉬는 시간에 나눈 말들을 간추립니다.

어제는 직업, 이제는 학문, 정년을 넘어 청년의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점하나 떼었다가 다른 쪽에 붙인다. 어제에서 이제, 정년에서 청년….

“문화재 조사연구와 보존관리 정책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기조 발표를 했다. 글을 쓰면서 서언과 결언에 심사를 담았다. 먼저, 발표의 주요 내용은 법규, 지정, 용어, 민속, 주민, 복지 따위 여섯가지.

법규에 있어는 지방분권시대에 걸맞게 시군지정문화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자료는 다시 평가하여 시도문화재와 시군문화재로 재분류하고. 지정에 있어서는 문화재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시도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지정 추진이다. 예를 들어, 건조물 분묘 유구를 유형문화재(보물, 국보)로 지정하는 것.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사적이지만, 3호분의 옹관 석실은 유형문화재로서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하자는 것. 분명 문화재보호법에 규정되 어 있다. 지정절차도 동종(同種) 전수조사의 기반위에서 하는 것이 좋다. 공간이나 공동행위도 함께 지정해야 보존된다. 조선장(造船匠)을 무형문화재 지정할 때 도구나 기술, 어로 노동과 의례, 물길과 뱃길 등도 함께 검토되어야 하는데 현행 법은 배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만 보유자로 인정하고 만다.

용어는 혼동되지 않도록 유사한 용어는 고쳐야 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용어로 지정사례가 없는 용어는 제외하는 등 검토가 필요하다. 유사한 것은 전적(典籍)과 서적(書跡)이다. 한글만 사용하면 혼동된다. 서적은 필적이 더 표준 표제어에 가깝다. 절귀용구는 내용을 알 수 없고 한자표기도 모른다. 지정 사례도 없다. 궁중·귀족·서민·농어민·천인 용어도 고치거나 검토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무형의 민속문화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산제의 경우, 신체인 입석이나 나무는 기념물, 농악기 등 도구나 치부책 등 기록물은 민속문화재나 유형문화재, 제의절차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시골마을의 당산제는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례인데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오히려 “해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유형의 민속문화재만 지정하는 것에 따른 폐단이다.

문화재와 직접 생활을 같이하는 주민에 대해서도 다양한 일종의 “복지”를 검토해야 한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의료급여법」상 수급권자를 지방무형문화재(시도지정문화재) 보유자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문화재, “백가쟁명식 학술난장”

“문화재”를 대상으로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민족문화 계승”, “국민의 문화적 향상 도모”,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라는 문화재보호법의 선언적 목적 규정을 꼭 들추어 낼 필요도 없다. 우리 자신들이 문재의 향유자이기도 하지만, 문화재의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그 주체라는 것이다. 하여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싸 다녔다. 현장과 기록, 사람과 문화를 읽으려 했고 빠져 들곤 했다. ‘모타부러!’ 한 마디에 동학 선후배 들이 모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좀 주춤했다. 그래도 자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항상 있었다.

남도민속학회의 월례 발표회 모임으로 얘기가 나올 무렵 처음에는 저어했었다. ‘김희태’ 이름을 건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도 ‘뒤 켠’인척 따라 간 것은 “문화재”를 주제로 “백가쟁명식 학술난장”도 필요한 일이라 여겼고 반평생을 추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글을 쓸 때 몇 가지로 나누어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정책방향이나 전망에 대해서 제시해 보고자 시작했다. 추후 보완을 통해 정리하기로 하고 지난 시절에 현장에서 실천하지 못했거나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 몇몇 사례를 통해 예시하고자 한다.

주최와 후원에 힘을 모아 준 남도민속학회(회장 이윤선), 민족문화유산연구원(원장 한성욱), (사)한들문화(이사장 김상찬), 남도불교문화연구회(회장 박춘규),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과 전라남도 관계관, 아울러 지난 30년이 넘도록 이끌어 주고 지혜를 모아 준 “문화재학”, “향토학” 선후배 동학, “남의 일”에만 몰두함에도 무던하게 뒷바라지를 해준 가족에게도 감사드린다.

“무언가 있다” 하면 나섰던 마음으로

문화재 조사연구와 보존관리 정책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논의를 시작했다. 다양한 문화재를 오랫동안 접하면서 느낀 소회를 정리해 보고 문제점을 적시하면서 전망을 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은 여러 면에서 미흡하다. 문제의식을 갖고 계속 보완해 갈 것이다.

1988년 현재의 자리에 입문한 뒤로 주로 문화재 지정에 매달려 왔다. 물론 문화재 지정은 전문가의 조사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지정권자의 고시 절차를 거쳐 최종 지정된다. 그 과정에서 한 문화재에 대해서 몇 차례를 현지에 가는 경우도 있다. 지정 신청에서 지정 고시까지는 수년의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

수치로 나열한다는 것이 어쩔지 모르지만 전남 통계연보에 따르면 1988년의 지정문화재는 607건이다. 2017년 12월 고시 자료까지 1,138건이다. 그리고 1988년 이후로 승격 지정 등으로 해제된 문화재는 80건이다. 2002년 도입된 등록문화재 83건이다. 따라서 1988년 이후 지정, 등록 문화재는 700여건이 되는 셈이다.

“숫자” 하나로 십 수 년을 민원에 매인 적도 있다. 그래도 그 일이 필요한 일이었고, 여러 선후배 동학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심신”이 지쳐 있다가도 “무언가 있다” 하면 어느새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 심정 그대로 또 새로운 길을 나선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남도민속학회의 “228차” 월례학술발표회도 남다른 인연이다. “228”은 목포 유달산의 해발고도이다. 유난히 목포와 인연이 많은 필자가 새로운 길을 나서는 곳이 목포(무안)라는 점이다. 1976년 목포로 첫 발령(철도청)을 받아 사회로 나섰다. 광주를 거쳐 또 다른 길인 역사학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 1983년 목포대학교 사학과. 이해준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분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전남도청이 옮겨와 다시 목포와 인연을 맺은 것이 2015년. 도립도서관 또한 인연이 있다. 개관 당시 1층의 “남도문화마당” 전시디자인을 했다. 향토학자료도 기증(3,500권)을 했다.

문화재학인으로 살아 온 지난 세월. 문화재는 저만치 있는 나하고는 동떨어진 원형질.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오랜 세월 문화재와 함께 하다 보니, "나"도 "우리"도 그 문화재 향유와 생산의 "주체"이고 "주어"라 여겨진다. 원형이 있지만 그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오늘 모이신 분들이 해 오고 있는 조사, 연구, 지정, 보존, 활용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력으로 인해 전승이 가능하다. 전형(典型)인 셈이다. 그러니 "주체"이고 "주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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