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고문학-기록문학(6) 《고려사》 열전 –임극충‧임극정‧임보‧임유‧임익‧임황(傳)
■장흥고문학-기록문학(6) 《고려사》 열전 –임극충‧임극정‧임보‧임유‧임익‧임황(傳)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7.2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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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열전 – 임극충‧임극정‧임보‧임유‧임익‧임황전傳(상)
정안임씨들 중앙의 정치무대, 대대로 활약, 가문 빛 내
김선욱/본지 편집인. 시인

<순서>
1. 고려조 장흥임씨와 장흥부 탄생
2. 《고려사》 열전 - 장흥출신 인물들
3. 《고려사》 열전 - 공예태후임씨전(恭睿太后任氏傳)
4. 《고려사》 열전 – 임의전(任懿傳)
5. 《고려사》 열전 – 임원후전(任元厚傳)
6. 《고려사》 열전 – 임극충‧임극정‧임보‧임유‧임익‧임황전(傳)
7. 《동문선》 등재 임원준(任元濬)
8. 《동문선》 등재 임경숙
9.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 등재 - 마천목 장군

 

 

 

 

 

 

 

 

 

 

 

 

 

 

 

 

 

 

 

<지난 158호에 이어>

임극충(任克忠) 열전
-《고려사》권95>열전 권제8>제신(諸臣)>임의>임극충

임극충(任克忠)은 과거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풍채가 크고 훌륭하였으며 기량과 식견을 갖추었다.
克忠, 擢第, 累官至中書侍郞平章事. 風姿魁偉, 有器識.
<임극충의 연보>
* 1148년 (의종 2년) -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 1151년 (의종 5년)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 1152년(의종 6년) - 한림학사(翰林學士)
* 1155년(의종 9년) -추밀원사 한림학사 승지 태자빈객(樞密院使 翰林學士 承旨 太子賓客)
* 1152년 - 동지공거(同知貢擧), 김의(金儀) 등 27명에게 급제(及第)시킴
* 1157년 의종 11년) - 수사공(守司空).
* 1164년(의종 18년) - 태자태보(太子太保)
* 1170년(명종 즉위년 )-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임극정(任克正) 열전
-《고려사》권95>열전 권제8>제신(諸臣)>임의>임극정

임극정은 호부상서(戶部尙書)로서 언사(言辭)가 정서(鄭敍)〈의 사건〉에 연루되어 양주방어사(梁州防禦使)로 좌천되었고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옮겼다가 죽었다. 《고려사절요》卷11>毅宗莊孝大王>毅宗 十一年>2월 …아우 대령후(大寧侯) 왕경(王暻)을 천안부(天安府)로 유배 보내고 남경유수(貶南京留守) 최유청(崔惟淸)은 벼슬을 낮춰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삼았으며, 공부상서(工部尙書) 임극정(任克正)은 양주방어사(梁州防禦使)로 삼았다.
 《고려사절요》卷11>毅宗莊孝大王>毅宗 十二年>3월 …최유청(崔惟淸)을 옮겨[量移]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삼았고, 임극정(任克正)을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삼았으며 김이영(金貽永)을 남경유수(南京留守)로 삼았다.

克正, 以戶部尙書, 辭連鄭敍, 貶梁州防禦使, 移忠州牧使卒.

임보(任溥) 열전
-《고려사》권95>열전 권제8>제신(諸臣)>임의>임보

임보(任溥)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글을 잘 지었다. 임원후(任元厚)가 죽자 의종(毅宗)이 외척을 억누르고 태후(太后)를 심하게 박대했기 때문에 20세가 되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예빈주부(禮賓注簿)에 임명되었고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옮겼으나 면직할 것을 간청하고 과거에 응시하여 마침내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차례 승진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이 되었으며, 죽으니 이부상서 한림학사(吏部尙書 翰林學士)에 추증하였다. 모습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으며 더구나 산수(山水)에서 노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신선 중의 한 사람이라 하였다.
溥, 幼穎悟, 善屬文. 元厚卒, 毅宗抑外戚, 待太后甚薄故, 年二十猶未補官. 明宗立, 授禮賓注簿, 遷閤門祇候, 乞免職應擧, 遂擢乙科第. 累遷吏部侍郞, 卒贈吏部尙書·翰林學士. 姿儀醞藉, 尤愛山水之遊, 世目爲神仙中人.

임유(任濡) 열전
-《高麗史》列傳>列傳 卷第八>諸臣>임의>임유

임유(任濡)의 초명(初名)은 임극인(任克仁)이다. 명종(明宗) 때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참지정사(叅知政事)가 되었다. 신종(神宗) 초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임명되고, 수태부 문하시랑평장사(守太傅 門下侍郞平章事)로 승진되었다. 강종(康宗) 원년(1211)에 죽으니 64세였고 시호를 양숙(良淑)이라 하였다. 《동사강목》제10하>정유년 고종 24년 … 폐왕(廢王)이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훙하였다. 동 10월 정종(貞宗)을 석릉(碩陵-지금 강화부 남쪽 21리에 있다)에 장사하였다. 뒤에 묘호를 희종(熙宗)이라 고치고 성평왕후(成平王后) 임씨(任氏)를 부(祔)하였다. 평장사 문의공(文懿公) 최선(崔詵), 양숙공(良叔公) 임유(任濡)를 배향하였다.
 《동사강목》 제10상>정사> 고려 명종(明宗)>임신년 강종 원효왕(康宗元孝王)>원년 3월 : …평장사 임유(任濡)가 졸하였다. 유는 성품이 조용하고 맑고, 인자 온화하여 세력과 지위로써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으며 비록 천한 종일지라도 꾸짖는 일이 없었다. 다섯 조정을 섬겨 벼슬에 있을 때에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일을 처리함에 공명 정대하였으며, 제고(制誥)를 16년이나 맡았는데, 당시의 고문 전책(高文典冊)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네 번이나 과거를 맡아서 이름 있는 선비를 많이 얻었는데 조충(趙冲)ㆍ이규보(李奎報)ㆍ김창(金敞)ㆍ유승단(兪升旦)은 그중의 뛰어난 자들이었다. 만년에는 불법을 몹시 좋아하였다. 시호는 양숙(良淑)이다.

성품이 욕심 없고 깨끗하며 자애롭고 온화하여 가문과 권세로써 남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았고, 비록 노비나 천한 종일지라도 일찍이 욕을 하거나 꾸짖은 적이 없었다. 5왕을 내리 섬겼는데, 관직에 있으면서 부지런하고 조심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 것은 현명하고 미더웠다. 16년간 제고(制誥)를 맡아서 한 때의 이름 높은 문장과 중요한 저술들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4번 과거를 주관하여 선발한 사람들이 모두 당대의 이름난 선비였는데, 조충(趙冲)·이규보(李奎報)·김창(金敞)·유승단(兪承旦)은 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만년에 불교를 더욱 독실하게 믿어서 금으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의 거의 반을 쓰니 식자들이 비웃었다. 희종(熙宗) 묘정에 배향되었다.
아들은 임경숙(任景肅)·임경겸(任景謙)·임효순(任孝順)·임경순(任景恂)이다.
임경숙은 벼슬이 동중서문하평장사 수문전대학사 판이부사(同中書門下平章事 修文殿大學士 判吏部事)에 이르렀다.
임경겸은 동지추밀사 한림학사승지(同知樞密事 翰林學士承旨)였으며, 임효순은 추밀부사(樞密副使)였고, 임경순은 판사재사(判司宰事)였다. 임경겸의 아들은 임익(任翊)이다.
濡, 初名克仁. 明宗時登第, 官累叅知政事. 神宗初, 拜中書侍郞平章事, 進守太傅·門下侍郞平章事. 康宗元年卒, 年六十四, 謚良淑.
性恬淡慈和, 不以家世勢位驕人, 雖臧獲賤隷, 未嘗詬罵. 歷事五朝, 居官勤恪, 處決明允. 掌制誥十六年, 一時高文大冊, 皆出其手. 四闢文闈, 所擧皆當世名士, 若趙冲·李奎報·金敞·兪承旦, 其尤者也. 晩年, 奉佛彌篤, 金書大藏經幾半, 識者譏之. 配享熙宗廟庭. 子景肅·景謙·孝順·景恂.
景肅, 官至同中書門下平章事·修文殿大學士·判吏部事, 景謙, 同知樞密事·翰林學士承旨, 孝順, 樞密副使, 景恂, 判司宰事. 景謙子翊.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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