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물축제에 공예태후 등장 … “장흥 역사·전통문화 더 확충돼야”
장흥 물축제에 공예태후 등장 … “장흥 역사·전통문화 더 확충돼야”
  • 김선욱
  • 승인 2022.08.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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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린·이소사 등 장흥동학 정신, 문림의향 정신의 고유제도 더해져야 한다

3년 만에 개최된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는 가운데 다시한 번 대한민국 여름 대표 축제의 명성을 확인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로 15회째. 올해 물축제의 특징은 부문적이나마 처음으로 축제 프로그램에 장흥 역사성을 가미했다는 것이다. 즉 개막 첫날 진행된 ‘살수대첩 거리 퍼레이드’에서 이전과 달리 공예태후 호위 행렬을 재현한 장면을 가미한 점이 그것이다. 즉 고려 공예태후를 배출, ‘장흥’이란 지명과 장흥지부사 승격의 동인이 된 장흥의 역사적 배경을 모티브로 물싸움 거리행진을 진행한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정남진 물축제에서 늘 아쉽게 생각한 것은,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에서 장흥의 역사성, 전통문화를 배제한 채 현대 문화 프로그램만으로 이루어진 축제였다는 점이었다.

지역의 축제가 보다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화의 힘은 과거(어제)와 현재(오늘)를 잇는 것일 때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축제문화도 예외일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역의 축제에서도 그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전통없이 현대적 콘텐츠만으로 치러질 때 그 지역 축제의 고유성은 낙후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전국에서 치러지는 수많은 지역 축제들이 현대적인 콘텐츠 위주로 축제를 개최되는 것은 그만큼 그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전통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즉 축제에서 내세울만한 역사 문화적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흥군의 경우는 다르다.

장흥 인근의 여타 지자체와 달리 8세기 동안을 전라도 서남부에서 유일한 부사고을로서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왔던 역사와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흥군은 전라도 서남부 유일의 부사고을로서 자리하며 조선조 유교세가 그 어느 곳보다 강세해서 유림(儒林)‧사림(士林)‧문림(文林) 고을로서 명성을 유지해 나올 수 있었다. 조선조에 장흥지역이 가사(歌辭) 문학을 일으켜 ‘장흥가단(長興歌壇)’으로 불리는 문학적인 정통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장흥이 유림‧사림의 고을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난에 수차에 걸쳐 정남진 물축제 개막식 때, 고유제(告由祭)라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장흥의 이러한 역사적 전통 때문이었다.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보다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장흥 고유의 문화 콘텐츠 확보가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림·사림의 전통, 문림의향(文林義鄕)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온 장흥에서 가장 큰 세계적인 축제인 ‘정남진 물 축제’가 보다 확실한 성공적인 축제로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축제로 계속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장흥 고유의 전통의 맥을 잇는 콘텐츠 확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것의 하나가 개막식에 치르는 고유제(告由祭)라는 것을 필자는 확신한다.

이처럼 축제에서 지역의 전통이 중요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물 축제에서 장흥 역사와 전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공예태후를 개막 때의 살수대첩에서 끌어들인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부연하고 싶은 것이 살수대첩 때의 장흥동학 즉 장흥동학군과 일본군과의 전쟁을 상징화시킨 프로그램의 가미이다.

장흥 역사에서 가장 큰 2대 사건이라면 고려 인종 때의 장흥부사 승격(공예태후)과 장흥 동학혁명이었다. 특히 장흥동학은 동학의 최후격전으로서 역사적인 가치도 있지만, 장흥동학 최후의 전투 때 등장한 석대들의 영웅으로서 이방언 대접주를 비롯 13세 소년 장군 최동린, 15세 소년 영웅 윤성도, 동학 유일의 여전사 이소사의 출현이었다는 점 그리고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가세한 일본군이 장흥동학 때는 본격적으로 참여해 장흥동학은 한국 농민이 본격적으로 일본과의 육전(陸戰)을 치른 한일전쟁이었다는 점의 특이성도 있었던 것이다.

이방언과 이소사의 소개는 관두고, 최동린과 윤성도만 간단히 살펴보자.

《갑오동학농민혈사》에 “최동린은 장흥군 대흥면(현 대덕면) 연지리에서 태어난 13세의 어린 소년이다. 대중을 지휘하여 본군(장흥부) 남문 밖 석대전에서 수많은 농민군을 총지휘하다가 전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군(진압군) 기록인 《동학난기록》 하권에도 “1894년 12월에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나주 일본군 진영으로 압송되어 12월 28일 처형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13세의 소년으로 동학군 토벌대 총사령부가 있던 나주 일본군 진영으로 압송해 갔다는 것은 최동린이 어린 소년이었지만 장흥동학군의 소년 장수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석대들의 최후 전투에서 살아남은 500여 명의 동학 농민군들은 천관산 끝자락에서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에 갯벌이 드러나는 틈을 타 갯벌 건너편 작은 섬인 회진면 ‘덕도’로 도피한다. 이때 뒤를 추적한 관군과 일본군은 육지와 바다에서 덕도를 완전히 포위하고 당장 공격할 태세였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야밤을 이용해 농민군 모두를 가까운 생일도, 금일도, 약산도로 실어나른 뱃사공이 바로 15세의 소년 뱃사공 윤성도였다. 500여 명의 동학군 생명을 구한 15살 윤성도야 말로 진정한 장흥동학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흥 물 축제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한일전쟁이었던 장흥동학을 재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이방언 최동린 윤성도 이소사 등 장흥동학 영웅들을 거느린 채 한일간의 석대들 전쟁 내용을 살수대첩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살수대첩 길놀이에서 이들 장흥동학의 영웅들인 이방언 최동린 윤성도 이소사를 등장시키거나 석대들 최후 전투의 재현도 가능할 것이다.

최근 세계에서 한류문화의 입지가 커지고 있는 영향에 의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드라마 촬영지나 공연, 한국 전통문화체험을 1순위로 꼽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축제장에 장흥동학 또는 장흥역사 부스를 고정시켜, 공예태후 의상 입기, 소년장군 최동린·여전사 이소사 되기 체험 등 장흥의 역사와 장흥동학을 널리 홍보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장흥군의 최장점은 단단하고 찬란한 8세기 장흥부사도을로서 역사요 전통이다.

장흥군이 자랑하는 ‘문림의향’이란 상징성도 이 역사‧전통 위에서 정립된 장흥 고유의 브랜드 같은 것이다. 이 장흥 물축제가 얼마든지 세계적인 축제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장흥 물축제에 장흥 고유의 역사성과 문화적 전통이 덧칠하여야 한다. 이것이 고유제 실시, 그리고 살수대첩 등에 공예태후뿐만 아니라 한일 전쟁으로서 장흥동학과 최동린‧이소사의 재현 등이다. 제16회 정남진 장흥물축제에서는 이처럼 장흥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더욱 확충된 의미로 포함되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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