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고문학-기록문학(8), 《동문선》의 임경숙 - 《동문선》 관련 시문 4편 등재된 임경숙
■장흥고문학-기록문학(8), 《동문선》의 임경숙 - 《동문선》 관련 시문 4편 등재된 임경숙
  • 김선욱
  • 승인 2022.08.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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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본지 편집인. 시인

<순서>

1. 고려조 장흥임씨와 장흥부 탄생

2. 《고려사》 열전 - 장흥출신 인물들

3. 《고려사》 열전 - 공예태후임씨전(恭睿太后任氏傳)

4. 《고려사》 열전 – 임의전(任懿傳)

5. 《고려사》 열전 – 임원후전(任元厚傳)

6. 《고려사》 열전 – 임극충‧임극정‧임보‧임유‧임익‧임황전(傳)

7. 《동문선》 등재 임원준(任元濬)

8. 《동문선》 등재 임경숙

9.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 등재 - 마천목 장군

<지난 제161에 이어>

임경숙은 《고려사 열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으나 동문선에 그에 관한 교서 등이 4건이나 등재 돼 있어, 당대 고려조정에서 유명했던 재신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문건(1)은 추밀원에 임명하는 임경숙에게 왕이 당부하는 일종의 조서(詔書)이며 마제(麻制)요, 사령문인 제고(制誥)이다. 왕이 임경숙을 각별히 생각하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다.

문건 (2)도 교서로, 임금이 임경숙 등 신하들에게 충성을 다해 줄 것을 당부 드리고 있다.

문건 (3)의 문건 즉 마제에서도 왕은 임경숙의 됨됨이를 극찬하면서 역시 충성을 다해주기를 당부드리고 있다.

문건 (4)는 비답으로, 즉 임경숙의 상소에 대한 왕의 답서인데, 여기서 왕이 임경숙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해주면서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동문선에 등재된 임경숙의 교서 등을 살펴보자.

(1) 제 재신 임경숙 추밀원사

除宰臣任景肅樞密院使 麻制- 하천단(河千旦)

-《동문선》 제26권>제고(制誥-왕의 사령辭令)

재상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공으로만 하여 사를 잊는 것이요, 임금은 덕을 높이고 공을 갚아야 하므로 예로써 신하를 대우하는 것이다. 짐은 스스로 못난 줄을 아는데, 어진 이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지키겠는가. 마땅히 그 오래 벼슬한 사람을 임용하여, 새 도읍에서 천명을 길게 하려 한다. 이에 감히 위대한 인재를 추천하여 밝은 조정에 고하노라.

구관(具官) 임경숙(任景肅)은 벽수(壁宿)의 동쪽 정기요, 은황(銀潢)의 왼쪽 물결이다. 너의 할아버지는 왕의 원구(元舅)가 되어 삼한(三韓)의 울타리가 되었으며, 너의 아버지도 또 세상의 종신(宗臣)으로 백관의 모범이 되었다. 일찍이 집안의 적선한 경사를 이어 받아서, 고관의 반열에서 드날리었다. 두 고을에서 백성을 다스릴 때에는 다 소두(召杜)의 부모라 했고, 한 지방에서 관리들을 규찰할 때에는 능히 옳고 그름을 가려냈다. 서액(西掖 중서성)에서 태(苔)를 음(吟)하고, 북문(北門 한림(翰林))에서 시초(示草)하기에 이르렀다. 평생 비답과 조칙을 맡은 손은 얼마나 윤음을 지었으며, 매 편마다 정직한 말이 나타났으니, 실로 임금을 잘 보좌한 것이었다. 한 번 초빈(初賓)의 길을 열고 나니 향곡(鄕曲)에서 선비들이 뽑혀 올라왔고, 두 번이나 고시(考試)의 문을 열었더니 구원(丘園)에서 선비들이 달려나왔다. 일을 당하면 터럭 한 올까지 세밀히 분석하였고, 사람을 대하면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대신(大臣)의 절도를 알고 있었으니, 어느 자리에 간들 맞지 않겠으며, 자기 몸을 낮추어 군자(君子)의 겸손한 덕을 길렀으니, 항상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할까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렵고 위태로운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바루어 주고 구제해 준 힘이 가장 많았다. 아직 비가 오는 철이 되기 전에 일찍이 주공단(周公旦)의 집을 수리함을 힘입었으며, 큰 시내를 건너려 할 때에는 모름지기 부열(傅說)에게 명하여 돛대가 되게 하듯이 하였다. 드디어 벼슬이 추밀원(樞密院)으로 영전하였다가, 또 정당(政堂)의 높은 자리로 전임하였다. 덕망은 만백성이 목을 늘이고서 바라는 바였고, 재명(才名)은 많은 선비들의 마음을 기울이게 하였다. 돌아다보건대, 조정에서 도를 논하고 나라 일을 경륜하는 이는 모두가 훌륭한 인재이지만, 그 중에 인척으로서 나라와 더불어 혈맥을 같이한 이는 몇 사람이나 있는가. 어찌 임금을 잘 만나서 그런 것이겠는가. 진실로 나라에 대한 걱정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정(大政)에 참여하게 해서 특수한 은혜를 곡진히 보이며 수국사(修國史)의 소임을 겸하게 하기도 하고, 수문전(修文殿) 태학사(大學士)의 직도 띠게 하며, 사부(祠部 예부)에서 예문도 짓고, 동궁(東宮)에서 사도(師道)를 엄히 하게도 한다. 이에 특별히 참지정사 수문전 태학사 수국사 판례부사 태자태보(叅知政事修文殿大學士修國史判禮部事太子太保)에 제수하고, 나머지 벼슬은 그전대로 가지게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68

*새 도읍 : 강화(江華)에 새로 도읍을 옮겼을 때이다.

* 벽수(壁宿)의 동쪽 정기 : 벽(壁)은 하늘 위에 있는 별 이름이다. 《진서(晋書)》 천문지(天文志)에 의하면, “이 별은 동쪽에 있으므로 동벽(東壁)이라고 하고 문서(文書)를 맡은 별이다.” 여기서는 한림원을 뜻한다.

* 은황(銀潢)의 왼쪽 물결 : 은황은 은하수인데, 왕족을 형용하기도 한다. 왼쪽이 길사(吉事)의 뜻이므로, 은황의 왼쪽 물결이라 하면 왕실의 지친(至親)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 소두(召杜)의 부모 : 한(漢)나라 소신신(召信臣)과 두시(杜詩) 두 사람이 다 남양태수(南陽太守)를 지내서 정사를 잘 하였으므로, 남양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앞에는 소씨 아버지가 왔고[前有召父], 뒤에는 두씨 어머니가 왔다[後有杜母].” 하였다. 후세에 선정(善政)의 고사는 “소두(召杜)의 부모”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 초빈(初賓)의 길 : 빈(賓)이란, 주(周)나라 제도에 의하여 훌륭한 인재를 채용할 적에, 학교에서 생도 중의 수재를 뽑아서 향음주례(鄕飮酒禮)로써 빈례(賓禮)로 대우하여 천거하는 법이다. 초빈지로(初賓之路)라 하면 처음 이 빈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말이다.

* 큰 시내를 …… 하였다 : 《서경》을 보면,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으면서, “만약 큰 시내를 건너려면 너를 시켜서 배와 돛대의 일을 하게 한다[若濟巨川 用汝作舟楫].”라는 말이 있다. 즉, 제왕을 보좌하는 신하를 비유한 것이다.

除宰臣任景肅 樞密院使麻制。[河千旦]

宰相代天理物。公耳忘私。君王崇德報功。待之以禮。顧朕自知不類。非賢誰與守邦。宜圖任其舊人。以永命于新邑。敢推偉器。誕告明廷。

具官任景肅。璧宿東精。銀潢左派。爾祖爲王之元舅。藩屛三韓。乃父亦世之宗臣。儀刑百辟。早襲門庭之餘慶。歷揚簪紱之淸班。牧民二州。皆云召杜之父母。察吏一境。能別涇渭之濁淸。自西掖吟苔。至北門示草。平生把批勑之手。幾許演綸。每篇形正直之言。實惟補衮。一闢初賓之路則鄕曲皆貢。再開考試之門則丘園欻來。臨機析至秋毫。對物溫如春日。生而知大臣之節。何適不宜。俾以牧君子之謙。每懷靡及。若有艱危之急。居多匡救之能。迨天未陰。曾賴旦之綢戶。巨川若濟。須命說以作舟。遂遷密院之榮。俄轉政堂之位。德望萬民之引領。才名多士之傾心。顧在朝論道經邦。莫非碩輔。其與國分形同氣。知有幾人。豈遭遇使然乎哉。誠憂患共之者也。是用俾參大政。曲示殊恩。或以修國史而兼資。或以修文殿以帶職。制禮文於祠部。嚴師道於儲宮。可特授參知政事修文殿大學士修國史判禮部事太子太保。餘如故。

ⓒ 한국고전번역원

(2) 제 재신 박문성 이자성 송순 임경숙 교서

除宰臣朴文成李子晟宋恂任景肅 敎書 - 이장용(李藏用)

-《동문선》제26권>제고(制誥)

임금이 재상을 대우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임금을 도와서 왕업을 융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어진 이를 선택하여 쓰는 것이니, 어진 이가 아니면 선택에 들지 못한다. 소위 어진이라 하는 것은, 그 기국이 크고 덕이 높아 범상한 사람이 아난 것을 이르는 것이다. 예로부터 정치를 잘 하려고 하는 임금들은 일찍이 어진 재상을 구하는 것을 가장 급한 일로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 다만 임금에게만 잘 보여서 합당하지 않은 자로서 그 직에 앉게 된 것은 그 신하의 요행인 것이요, 만약 기국과 덕행이 완전히 구비한 이를 들여서 정승으로 삼았다면 이것은 참으로 나라의 다행인 것이다.

지금 짐이 경에 대하여 하는 일은 어진 이를 가리려는 것이다. 경은 어짊을 완전히 구비한 사람이다. 경을 등용하는 은총을 내리는 것은 국가를 다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경은 짐을 보좌하는 도리를 잊지 말고 더욱 힘써 일하라.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68

除宰臣朴文成,李子晟,宋恂,任景肅敎書。[李藏用]

人主之待宰相。盖欲資其毗贊而恢弘王業也。是故選必以賢。非賢不在選。所謂賢也者。豈非器宏德茂奇偉不常之人也耶。歷觀前代願治之君。何甞不以求賢爲急。然特以遭遇任非其人。是則人臣之幸也。若擧器德全備而相之。是乃國家之幸也。今朕之於卿選賢也。卿之爲賢全備也。登庸之恩。所以幸國家耳。毗贊之道無忘。其益勉勵焉。

ⓒ 한국고전번역원

(3) 제 재신 임경숙 마제

除宰臣任景肅 麻制

-《동문선》 제26권> 제고(制誥)>마제(麻制) -이장용(李藏用)

금구(金甌)는 범상한 사람의 이름 위에 덮을 수 없고, 옥현(玉鉉)은 모름지기 위대한 인망(人望)이 있는 자에게 구할 것이다. 준재(俊才)가 있으면 능히 준과(俊科)에 나간 뒤에야 진실로 관면(冠冕)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너의 마음을 열어 짐의 마음을 축여주면 가히 풍운(風雲)의 경사를 이룩할 것이다. 크게 아름다운 명령을 펴서 밝은 조정에 널리 고하노라. …

구관(具官) 임경숙(任景肅)은 간결하고 맑으며, 따스하고 공손하다. 척리의 가문에 나서 문득 예의(禮義)의 방법을 알고 있으며, 정승의 집에서 자랐으나 능히 고량(膏粱)의 습성에서 벗어났다. 문아(文雅)함을 가졌으나 세정에 우활하지 않았으며, 헌장(憲章)에 밝아서 고금의 제도에 통달하였다. 결발하면서부터 조정에 올라한 마음으로 임금을 받들었다. 푸른 감당나무 밑에서 연이어서 선화(宣化)의 수레를 탔고, 자미화(紫微花) 섬돌 앞에서 두 번이나 기언(記言)하는 붓을 잡았다. 판화(判花)의 요긴한 자리에 올랐고, 유월(惟月)의 맑은 반열에 옮겼다. 인국(麟局)에서 미목(眉目)의 편(編)을 닦고, 학무(鶴舞)에서 심간(心肝)의 비단을 토하였다. 근일에 좌규(左揆)로부터 중추부로 올랐다. 주문(主文)의 자리를 맡아서는 준재들을 빠뜨리지 않았고, 사대(事大)의 글을 지으면서는 국경에 경보가 없게 하였다. 사람들이 다 왕을 보좌할 재목이라고 하였고, 짐도 역시 나라의 꽃임을 아름답게 여겼다. 선대로부터 적선(積善)을 하여서 경사가 후손에게 내려온 것이다. 사대 동안 정승의 지위에서 맑은 바람을 멀리 풍겨 주었고, 한 때의 연악(聯萼)의 친속들은 다 요직에 서 있다. 정도(正道)를 밟아서 각박한 세속에 따라가지 아니했으며, 속가(俗家)에 있으면서 은미한 말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조는 더욱 높았으나 나이는 아직 많지 않다. 모름지기 경 같은 어진 보필을 얻어서야 가히 오늘날의 태평을 기약할 수 있다. 이에 영광스러운 채고(彩誥)를 써서 금장(金章)의 은전을 주노니, 정당(政堂)에 들어와서 정사를 의논하면 학문의 정밀한 데 의지할 것이며, 이부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데 또 공평하게 전형의 묘함에 기대하리라. 춘금(春禁)을 붙들고 도우며, 동관(冬官)의 일을 잘 처리하라. 이에 특별히 금자광록대부 정당문학 이부상서 판공부사 태자소부(金紫光祿大夫政堂文學吏部尙書判工部事太子少傅)에 제수하고 다른 벼슬은 전과 같이 겸하게 한다. 아, 임금을 만나기가 진실로 어렵고 정승을 세우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경의 진언을 기다리는 것은 짐의 할 일이고 바른 도리가 아니거든 나에게 말하지 아니하는 것이 경에게 바라는 바이다. 함께 태평을 이룩하여 뒷 세상에 길이길이 할 말이 있게 하라.

除宰臣任景肅 麻制

金甌不覆於凡名。玉鉉須求於偉望。有俊克卽俊。苟登冠冕之奇。啓心沃朕心。可致風雲之慶。誕揚茂命。敷告明庭 …

具官任景肅。簡要精通。溫良恭儉。生于戚里。便知禮義之方。長自相門。能脫膏梁之習。遂持文雅而不爲迂闊。明鍊憲章而妙達古今。結髮登朝。端誠奉主。綠棠影下。連乘宣化之車。紫殿階前。再秉記言之筆。升判花之緊地。轉惟月之淸班。麟局修眉目之編。鶴廡吐心肝之錦。頃從左揆。乃陟中樞。開主文之席則才俊無遺。述事大之書則封陲不聳。人皆謂之王佐。朕亦嘉其國華。其或善積自先。慶鍾于後。四世調梅之任。遠播淸風。一時聯萼之親。皆當要路。履道不隨於薄俗。在家得悟於玄言。操守彌高。春秋尙富。須得如卿之良弼。可期今日之大平。是用彩誥頒榮。金章進寵。政堂議事。竚憑學問之精。選部甄人。亦倚銓平之妙。翊扶春禁。剖判冬官。可特授金紫光祿大夫政堂文學吏部尙書判工部事太子少傅。餘如故。

於戲。得君誠難。立相不易。虛襟而待。是則在於朕焉。非道不陳。所以望於卿者。同歸于理。永世有辭。

ⓒ 한국고전번역원

(4) 임경숙이 시중서사 지제고에 임명되고 전직은 종전대로 가짐을

사양함에 윤허하지 않는다는 비답, 즉 임경숙의 상소에 대한 답은

任景肅讓試中書舍人知制誥餘如故不允批答 - 정의(鄭義)

《동문선》제30권>비답(批答)

나라는 어진 이로써 흥하나니 반드시 신중히 선택할 것이요, 관직(官職)을 위해 사람을 택함에는 마땅히 적임자라야 할 것이다.

그대는 원래 외척의 좋은 가문에 태어났으면서, 몸은 유문(儒門)의 검소함을 익히었다. 부귀의 버릇을 다 떨어버려서 집안을 잘 보전하였고, 금수(錦繡)와 같은 문장을 엮어서 나라에 빛을 내었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낭관(郞官)의 반열에 올랐다. 재차 중서성에 들어가서는 순(舜) 임금의 곤룡포(袞龍袍)를 빛내었고, 두 번이나 수령(守令)의 인(印)을 차고는 넷이 아는 왕저(王褚)의 금(金)을 두려워했다. 치적을 아뢰고 조정에 돌아와서는 벼슬이 올라 내탕(內帑)을 주관하게 되었다. 그대가 비록 기국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어찌 전곡(錢穀)의 관직에야 적합하겠는가. 이에 짐이 그 재주가 탁월함을 생각하여 지제고의 자리로 바꾸었도다. 일시 겸양함은 가상하나 이미 내린 명은 철회하기 어렵다. 굳이 망설이지 말고 특별한 은총을 받으라.

* 순(舜) 임금의 …… 빛내었고 : 곤룡포(袞龍袍)는 순 임금이 처음 제정한 것이다. 《시경》에 “곤직(袞職)에 빠짐이 있으면 중산보(仲山甫)가 보좌하였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문장을 보좌하였다는 뜻이다.

* 넷이 …… 두려워했다 : 한(漢)나라 때에 양진(楊震)이 친구 왕밀(王密)을 추천했더니, 그가 수령이 되어 가면서 양친에게 들러서 황금 열 근을 내놓으면서, “밤이라 아는 이가 없으니 받아 두게.” 하였다. 양진은,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다 하는가.” 하였다. 여기에 저(褚)는 보따리란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재호 (역) | 1968

任景肅讓試中書舍人知制誥。餘如故。不允批答。

國以賢興。必須愼揀。人爲官擇。宜各允當。爾係連戚里之芳。躬服儒門之素。落盡紈綺之習。能幹其家。摛廻錦繡之文。載華於國。手擢春闈之第。身躋星官之聯。鷄樹再捿。煥五色舜衣之線。魚符兩佩。畏四知王褚之金。逮奏課以還朝。俄陟資而主帑。爾雖器備。豈稱於錢穀之司。朕謂才優。故易以絲綸之地。然撝謙之可尙。顧成命之難收。毋固逡廵。式諧眷注。

ⓒ 한국고전번역원

(1)은 추밀원에 임명하는 임경숙에게 왕이 당부하는 일종의 조서(詔書)이며 마제(麻制)요, 사령문인 제고(制誥)이다. 왕이 임경숙을 각병히 생각하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다.

(2)의 교서 역시 임경숙 등 신하들에게 충성을 다해 줄 것을 당부 드리고 있다.

(3)의 마제에서도 왕은 임경숙의 됨됨이를 극찬하면서 역시 충성을 다해주기를 당부드리고 있다.

(4)의 비답, 즉 임경숙의 상소에 대한 답에서, 임경숙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해주면서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4건의 조서며 마제며, 비답 등은 임경숙에 대한 왕의 각별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만큼 당대에 임경숙이 뛰어난 인재요 문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하고 있다.

또 기문들은 《동문선》에 등재되었던 것도 그만큼 가치 있는 시문으로 읽혀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유의 네 아들 중 장남으로 문하중서 평장사에 올랐던 임경숙은 생년미상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이래 신종·고종 조에 명신으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부전자전으로 그 또한 문장에 능하여 당시 문사로는 최자(崔滋, 1188∼1260)와 쌍벽을 이뤘다. 최자는 국자감학유(國子監學諭) 때 문재를 인정받아 문한(文翰)을 맡았고, 급전도감녹사(給田都監錄事) 때는 민첩 근면하여 권신 최우(崔瑀)의 인정을 받았던 명신이었다.

임경숙 역시 일찌기 문장을 인정받아 문한(文翰) 직에 종사했으며, 고종 14년(1227년)에 수찬관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오랫동안 지제고(知制誥)를 역임했으며, 그 이후 형부상서·추밀원부사·참지정사·판예부사·태자수보·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 등 문한·재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다음호에 계속>

 

구관(具官) 임경숙(任景肅)은 간결하고 맑으며, 따스하고 공손하다.

정승의 집에서 자랐으나 능히 고량(膏粱)의 습성에서 벗어났다.

문아(文雅)함을 가졌으나 세정에 우활하지 않았다.

결발하면서부터 조정에 올라한 마음으로 임금을 받들었다.

…주문(主文)의 자리를 맡아서는 준재들을 빠뜨리지 않았고,

사대(事大)의 글을 지으면서는 국경에 경보가 없게 하였다.

…선대로부터 적선(積善)을 하여서 경사가 후손에게 내려온 것이다.

사대 동안 정승의 지위에서 맑은 바람을 멀리 풍겨 주었고,

한 때의 연악(聯萼)의 친속들은 다 요직에 서 있다.

정도(正道)를 밟아서 각박한 세속에 따라가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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