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論壇 - 괜찮아,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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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8.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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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 시인, 수필가

강쇠바람이 지나갔는지 은행나무가 몸살을 앓는다. 몰라보게 잎사귀가 야위어 가고 드문드문 속살을 끄집어내 놓았다. 산 벚나무도 나뭇잎이 떨어졌다. 오래전 어느 산사 가는 길에서 보았던 팥배나무도 이때쯤이면 꽃 진 자리에 붉은 열매를 붙들고 있을 것이다. 하얀 꽃이 떨어질 때 보았으니 지금쯤 햇살을 쫓고 있을 것이다. 팥배나무 곁에 있던 살찐 단풍나무도 물들고 있을까. 궁금하다. 가서 안부라도 물어야 할 것 같다.

이제 나무는 발가벗은 몸으로 허허로운 하늘을 쳐다보며 겨울을 견디어야 한다. 넘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추위가 닥쳐도 숨을 고르고 뿌리를 더 깊게 박고 하늘을 향해 몸을 곧추세운다.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봄날 쏟아낼 맑은 향기를 담아둔다.

나의 가을은 오늘처럼 뜨거워도 뒤란의 대숲에서 댓잎 떨구는 소리를 들었고, 새벽이면 달빛 가득한 황홀하도록 아름다움도 보았고, 이슬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들었다.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1007~1072)는 가을밤 글을 읽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섬찟하여 말했다

“참 이상 하도다,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 지고 쓸쓸히 바람 부는 소리이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어 쏟아질 것 같고,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으며, 그것이 물건에 부딪히면 쟁글쟁글 쇠붙이가 일제히 우는 것만 같아, 마치 적진을 향해 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내달리며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듯 하구나.”이에 시동을 시켜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들어보게 하니, 아이가 말하기를 “별과 달이 밝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또렷한데 사방에 사람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숲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 소리일 것인데 어찌 이다지도 급작스럽게 오는 것이냐? 대저 가을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다. 라며 탄식하였다.” 이 시는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들으며 자산이 미처 따라가지 못함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럴진대 어째서 가을 소리를 한탄만 하는가? 동자는 나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 떨구고 잠을 자고 있다. 다만, 사방 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 찌륵 들려와, 나의 탄식을 부추기는 듯하다.”라고 끝을 맺는다.

왕고들빼기 꽃잎이 떨어졌다. 가을 햇살이 오늘처럼 카랑카랑한 날에는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가슴을 건드리는 사람이다. 문득문득 헤집고 돋아나는 사람이다. 엉거주춤 머뭇거리는 사람이다. 내가 아직 그 사람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풋풋한 갈대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면 찾아가던 풋풋한 갈대밭. 바람에 쓸리는 갈대밭에서 긴 기다림을 털어놓던 날, 나는 풋풋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갈대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갈대를 ‘은 갈대’, 점심 무렵에 빛나는 갈대를 ‘재 갈대’, 저녁노을이 물든 갈대를 ‘금 갈대’라고 부른다. 그중에서 노을이 물든 ‘금 갈대’ 밭에서 들리는 철새들의 울음소리는 생명의 소리다. 어미를 보채는 새끼울음 소리에 어미는 새끼들의 안녕을 확인한 다음, 하루가 무사했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래서 갈대밭에서는 침묵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가을에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렉 브레이든은 “기도는 신과 천사의 언어라고 했다. 또한 지혜와 아름다움, 은총으로 삶의 고통을 치유하도록 부여받은 언어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기도는 겸손한 마음이다. 겸손한 사람은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교만하지 않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가엽고 측은하게 여기며 ‘당신이 잘되어야 한다.’라는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을이 되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곤 한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혹여 근근이 살아가는 비루한 삶은 아닌지 묻고 되돌아보는 계절이 가을이다.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 갈대밭을 걸었다. 초강초강한 갈대가 보내는 달달한 냄새를 맡으며 들숨과 날숨소리를 듣는다. 걸으며 내놓은 속살에서 가느다란 내상들이 헝클어져 있다. 아물듯하다가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다. 눈에 보이는 갈대도 비바람에 상처투성이다. 내 안에 상처만큼 남의 상처와 흉터가 눈에 들어올 때 나를 관찰하며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위로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눈에 보이는 흉터의 끔찍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역꾸역 보듬고 지나온 세월, 얼마나 힘들었을까. 단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한 삶. 이제야 “꼭” 끌어안는다.

“힘들지?”

“괜찮아, 잘 될 거야.”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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