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공정(公正)을 생각한다
특별기고 - 공정(公正)을 생각한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8.3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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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논어』「계씨」에서 공자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季孫]를 억제하며 제자 염유(冉有)에게 말했다. “나라와 집을 소유한 자는 백성의 수가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해야 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말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고르게 하면 가난함이 없고 조화를 이루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 無貧, 和無寡, 安無傾.]” 정치[政]에서 균평(均平)과 균분(均分)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약용은 사환기에 정치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정치의 근원을 따져 묻는 「원정(原政)」은 이런 반성의 결과다. “정치[政]란 바르게 한다[正]는 말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을 두루 겸해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을 받지 못해 가난하게 사는가? (...)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강대한 세력을 제멋대로 휘둘러 비대해지고 누구는 취약한 상황에서 더 빼앗겨 사라지고 마는가?” 다산은 ‘똑같은 우리 백성’[均吾民也]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평생 불선을 행해도 멀쩡하게 잘 살고 어떤 이는 평생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도 제대로 복을 받지 못하니 상선벌악(賞善罰惡)이 불공정함을 되짚기도 한다. 「원정」은 치우친 붕당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넓혀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우대하는 정치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정약용이 말한 공도는 정치의 공정한 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제시한 국가운영의 청사진은 『경세유표』라는 유명한 책에 잘 나타난다. 다산은 토지제도를 말할 때 균전(均田), 균산(均産)의 의미를 비판했다[『經世遺表』卷六, 地官修制, 田制五]. 농사짓는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토지를 운영하게 해야지 국가가 일일이 민의 살림을 똑같이 챙길 수 없다는 말이다. “먼저 백성의 살림을 엿보고 부유한 자의 것을 덜어내서 가난한 자에게 보태고자 하니 이것은 이롭지 않은 헛된 일이다.”[先窺下民之產業, 欲損富而益貧者, 是無益之虛務也.] 물론 다산은 민의 살림살이를 중시했고 능력에 따라 아홉 종류의 직업[九職]을 갖도록 잘 안배해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자신의 직업을 갖고 능력에 따라 자립하게 해야지 처음부터 국가가 일률적으로 균전・균산을 추구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불균(不均)’을 근심한 공자의 발언에서 주희는 ‘균(均)’을 ‘각각 그 분수에 맞게 얻는 것’[『論語集註』「季氏」, ‘均謂各得其分.’]이라고 풀이했다. 이것은 과거의 신분제 사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분수에 맞는 것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아마도 각자의 분수, 각자의 능력에 맞게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유학자들이 생각한 공정의 의미였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중국 자전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서는 공(公)을 ‘평분(平分)’이라고 풀었다. 허신은 『한비자』「오두」에 나온 공사(公私) 개념으로 공의 의미를 해석한다. 한비자는 자신만 에워싼 것을 사(私)라 하고 사를 등지는 것을 공(公)이라고 했다[自環者謂之私, 背私謂之公, 公私之相背也]. 허신은 사를 간사(姦邪)한 것으로, 사와 반대되는 공을 평분(平分)의 올바른 것으로 가치평가했다. 오늘날 『한어대사전』 목록은 ‘공’ 개념이 전통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는 『설문해자』의 풀이와 비슷하게 공평(公平), 공정(公正)의 의미로 공을 풀었다. 『서경』「주관(周官)」과 『여씨춘추』「귀공(貴公)」은 군주가 공평하고 공정한 정치를 시행해야 백성이 믿음을 갖고 군주에게 귀의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공의 의미는 공공(公共), 공동(共同)의 의미다. 이것은 천하사람이 함께 대도(大道)를 추구하는 것으로 중국 한나라 학자 정현(鄭玄)이 『예기』「예운」을 주석할 때 나온 말이다. 세상사람[天下人]이 자신과 자기 가족만 생각하지 않고 남의 가족, 이웃과 함께 살려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 의미의 공은 국가나 조정(朝廷), 큰 관청, 나랏일[公事] 등을 가리킨다. 일본에서 조정이나 정부 등 공가(公家), 대가(大家)를 가리킬 때 썼던 말 ‘오오야케(おおやけ)’를 공으로 본 것이 대표적인 용례다. 상위 조직을 공으로 간주하는 이런 태도는 공가(公家)의 사리 추구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중국과 특히 조선에서 공사(公私) 논의는 군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지식인들이 취한 효과적 언설이었다. 주자학은 천리와 인욕을 공과 사로 나누고 공적인 천리를 보존하고 사적인 인욕을 막는 군주의 심학을 중시했다. 오히려 군주보다 유학자들이 천리의 공[天理公]을 잘 체화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17세기 중반, 명청 교체기에 군주와 관료 등 특권계층만이 아니라 다수 인민의 사적 욕망을 긍정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된다. 황종희(黃宗羲:1610-1695)는 『명이대방록』「원군(原君)」에서 “군주만 없다면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사사롭게 할 수 있고 각자 스스로 자신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며 널리 알려진 민(民)의 ‘자사자리(自私自利)’를 옹호한다. 그는 전제군주가 자신만의 대사(大私)를 대공(大公)으로 앞세운 행태를 비판했다. 사실 황종희는 민 일반이 아닌 중소지주, 도시 상공인층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대변했지만 인간의 원욕, 사욕을 긍정하던 시대 분위기를 담았다. 고염무(顧炎武:1613-1682)도 자기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상정이므로 사람의 사적 욕망에 기반해서 공을 이루는 것이 좋은 정치라고 생각했다.[『日知錄』卷四, “合天下之私, 以成天下之公, 此所以爲王政也.”] 공과 사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평범한 욕망을 인정하고 그런 욕망 위에서 사회적 공을 이룬다는 신념이 널리 퍼졌다.

두 번의 전란을 겪은 조선 지식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전개한다. 이익(李瀷:1681-1763)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적인 욕망으로부터 함께 (공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말한다.[『星湖全書』卷七, 『四七新編』四, “方是自吾身欲惡之私, 而推向共去也.”] 그는 세상사람이 똑같이 추구하는 사사로움[天下同其私]을 인정하고 그 사사로움 가운데 공정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私中之正, 私中之公]. 또한 자신만 이롭고 남에게 불리한 이익[利己而不利人]을 추구하면 이것이야말로 사사로움[私慝]이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것[利己而利人]을 찾아야 비로소 공정한 이익, 공리(公利)라고 말한다.[『星湖全書』卷四, 『論語疾書』「理仁」] 세기가 바뀌면 세상의 불공정함에 더욱 비관하던 조선 민중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학의 상벌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이런 세태를 우려와 경계의 눈으로 지켜보던 유학자 심대윤(沈大允:1806-1872), 그는 『복리전서』를 지어서 ‘여인동리(與人同利)’, 다른 사람과 함께 이익을 나누는 ‘지극히 공정한 방법[至公之道]’를 유교적으로 제시한다. 홀로 독취(獨取)하는 것은 필망의 길이고 한 배를 타고 함께 삶을 구제해가는 ‘동주공제(同舟共濟)’의 태도야말로 모두가 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白雲文抄』卷二, 「驗實篇」]

중국의 공사론을 오랫동안 연구한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20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겪고서도 중국의 민권의식은 여전히 천하인민의 공, 일체무사(一切無私)의 공을 지향한다고 분석한다. 자유・평등・인권 등 개체성에 근거한 서구적 논리의 범람에도 여전히 중국에서는 개인의 사권이 아닌 인민 전체의 공권의식이 강하다는 말이다. 자사(自私)를 추구했지만 개인의 욕망을 조율하는 선험적 원리[天理]를 더 강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적 천하주의도 공 관념 아래 건재한다. 오늘날 중국 공권력의 위험을 가까이 지켜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 20세기 초 국권을 빼앗기고 해방 후에는 강대국의 냉전갈등, 분단체제에서 삶과 사유의 위기, 가치의 급변을 경험했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는 삶의 균질적 흐름이 끊어진 현장들을 목격한다. 좋든 싫든 이것은 우리가 가진 고유한 경험의 자산이다. 지금 일률적인 평등, 정량적인 균평[평분] 논리에 수긍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의미의 평등은 오히려 공정성과 정의를 해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감각을 더 잘 대변한다. 개인의 자유와 다름을 부정하는 공은 이미 우리 삶과 사유의 결에 맞지 않는다. 균질적 평등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 엘리트적 위계, 능력주의 횡포를 거부하는 감정도 공존한다. 내 삶의 충족이 타인의 삶의 충족과 함께 가야 한다는 신념도 사라지지 않았다. 타인과 함께 하는 공공(公共)의 삶, 세상의 주인공으로 내가 가진 공정(公正)의 감각,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다수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나에게도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공정의 상식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이로운 길인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공유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타인이 많은 이곳, 우리사회는 내 공정의 감각을 시험할 좋은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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