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산책 우리가 살아서 보내는 신호들
실학산책 우리가 살아서 보내는 신호들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10.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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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숙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nbsp살아 있는 신호들

&nbsp때로 사람들의 말과 표정, 행동이 어긋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소통을 이어가야 할까,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조선 시대 소설을 텍스트로 감성 분석을 한 경험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고소설에는 감정 표현의 왜곡이 심하지 않고, 감정을 위장할 경우,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정도로 정서 세계가 진솔하기 때문이다.

&nbsp놀랍게도 옛 선인들은 말보다 표정, 글보다 행동을 그 사람의 진짜 정체성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말로는 그/녀가 정말 싫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만 나오면 미소 짓고 있다면, 사실은 (서로) 호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특별한 발견의 요소가 아니라 고소설의 인물들 사이에서, 그리고 독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감각이다.

&nbsp말하자면,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장 일상적으로는 말로, 보다 정교하게는 글로, 그리고 보다 편안하게는 표정과 행동으로.

&nbsp신호의 수집과 공유각

&nbsp그렇다면 수집된 신호들은 어떻게 정리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들 사이에서, 그리고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사람들은 신호의 경중을 재서 적당히 배분하고 관리의 우선순위를 매기며, 특별 배려와 무시, 배제도 계산해 낸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동화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밥 먹을 때 어느 반찬에 먼저 손이 가는지, 구태여 분석하지 않는 것과 같다.

&nbsp감성 신호는 이미 사회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언어 못지않게 감성도 사회적으로 학습된다. 물론 여기에는 감성 기호의 경중, 처리의 우선순위 등에 대한 정보도 포함된다. 예컨대, 갑자기 누군가에게 아첨하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곁에서 보는 사람은 어떻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할까, 라고 민망해하지만, 아첨의 가치는 바로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표현된 충성심의 밀도’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은 다만 그 감성 법칙에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낯설게 보고’, ‘의아한 마음’을 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성을 접할 때, 비로소 그에 대한 비판과 성찰적 관점이 생성된다.

&nbsp망가진 감정-장치, 미소 속에 흐르는 눈물: 영화〈겟 아웃〉
&nbsp영화〈겟 아웃〉(Get Out, 조던 필레 감독, 2017)에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가정부, 조지나가 등장한다. 미소와 눈물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의 조우는 관객에게 공포감을 전한다. 무언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때 조지나의 감정의 실체를 미소와 눈물의 양자 간 선택 요소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조지나는 감정 표현의 정상성의 범주를 넘어선 수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nbsp영화를 보고 나면, 이질적 감정의 병존은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결합된 희생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몸의 주인으로서, 빼앗긴 육체, 박탈된 감정의 수행자로 남은 조지나의 미소와 눈물은 감정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 표현의 장치가 망가진 형태이며, 그 자체로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억눌린 자의 호소다.

&nbsp신호 수집가 : 말하는 입과 듣는 귀의 만남
&nbsp감정을 교환한다는 것은 말로 대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사소통의 관계망에 소속되어 있음을 뜻한다. 감정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도 전달한다. 관점을 달리하면,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표정과 제스처로 감정을 표현해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성의 범주 바깥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의 불편부당함에 대해 SOS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대화란 관계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며, 감정 교환의 관계망 속에서도 이 법칙은 예외가 아니다.

&nbsp2015년의 노벨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20년 동안 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들과 만나 증언을 채록했다.

&nbsp“적어 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 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nbsp사람은 죽은 뒤에라도,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한 어떤 사태에 대해서조차 끝내 알고 또 알려지기를 원하는 존재다. 한순간에 몸을 스쳐간 표정, 마음, 느낌, 행동은 모두 세상을 향한,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신호다. 누군가 외면한 단 한순간의 표정조차 그것을 본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자신의 생애 시간에 어떤 약속을 걸어놓을지 모른다. 마음이란 그런 것. 단한 순간의 표정조차 한 사람의 온 생애 신호가 응축된 그 사람의 모든 것일 수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약속을 하게 되는 것처럼. &nbsp말하는 입과 듣는 귀의 만남만큼이나, 보고 느끼는 감정 또한 약동하는 그 사람의 생명-장치이기 때문에.

&nbsp*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자의 독백 인터뷰」, 『체르노빌의 목소리』, 김은혜 옮김, 새잎, 2011, 13쪽.

▶최 기 숙 프로필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한국학 전공)

· 저서
〈Classic Korean Tales with Commentaries〉, Hollym, 2018
〈集體情感的譜系: 東亞的集體情感和文化政治〉(主編), 臺北:學生書局, 2018.
〈한국학과 감성교육〉(공저), 앨피, 2018
〈Bonjour Pansori!〉 (공저), Paris: Imago, 2017
〈물과 아시아 미〉 (공저), 미니멈, 2017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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