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중국이 중앙일 리 없다, 동서남북이란 무엇인가
특별기고 - 중국이 중앙일 리 없다, 동서남북이란 무엇인가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0.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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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정약용은 1801년 신유옥사로 탄핵을 받아 장기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1804년 가을, 자신의 처지와 현실의 모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연작 시를 지은 후 또 다시 걱정을 쫓아보내고자 「걱정을 쫓아보내다[遣憂]」라는 제목으로 12장(章)을 지었다. 그 첫 번째 시는 이렇다.

“부리 임지가 꼭 외진 곳 아니고 鳧吏未必偏 / 진조가 꼭 중앙인 것도 아니니, 震朝未必中 / 둥글둥글한 흙 덩어리라 團團一丸土 / 본시 서도 동도 없는 것을. 本自無西東 /[조(朝)는 피휘하기 위하여 그렇게 쓴 것이다.]”

부리 임지는 동남방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중국의 동남방에 있는 조선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잘 알다시피 부리는 ‘쌍부(雙鳧)’ 고사이다. 후한 명제 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 수령으로 있으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수레도 없이 조회에 참예했디. 그가 올 때마다 오리 두 마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오기에 누가 그물을 쳐서 잡아 보니 바로 왕교의 신발이었다고 한다. 『후한서』 「방술열전」에 나온다. 진조는 원래 ‘진단(震旦)’이라 써야 하지만, 태조 이성계의 휘(諱)인 단(旦)을 피하기 위해 조(朝)로 바꿔 썼다. 여기서의 진단은 인도 사람들이 고대 중국을 이르던 말이다. 『불설관정경(佛說灌頂經)』이나 『당서(唐書)』 등등에 그 용례가 나온다. 중국이 스스로를 중앙으로 여기지만 인도의 관점에서보면 동쪽의 나라이라고 은근히 말한 것이다. 마지막 구절의 ‘서도 동도 없다’는 것은 둥근 지구에서는 서쪽과 동쪽이란 방위가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유배되어 울적한 심경을 스스로 다독이기 위해 읊은 시이지만, 이 시에는 정약용의 지구관과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중국 중심의 당시 고정 관념을 탈각한 주체적 사유 양식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앞서 정약용은 「동서남북에 대해 묻는다[問東西南北]」라는 책문을 작성한 일이 있다, 곡산부사 시절(1797~1799)의 시사(試士)보다 앞선 시기에 낸 책문이니, 아마도 한성시나 승과시에서 제출했던 것인지 모른다. 정약용은 응시생들에게 물었다. 둥글둥글한 지구 위에서 어떻게 중국을 중심이라 굳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이 만든 것은 모두 둥글고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 모가 나 있다. 그리고 모난 물건은 저절로 사방이 있게 마련이니, 동ㆍ서ㆍ남ㆍ북의 명칭이 여기에서 생겼다. 몸에는 몸의 사방이 있어서 왼쪽과 오른쪽을 정하게 되고, 방에는 방의 사방이 있어서 밝은 남쪽과 어두운 북쪽을 분별하게 된다. 각국에는 각기 본국의 사방이 있어서 사방의 문을 통하게 되고, 중국에는 중국의 사방이 있어서 사방 국경을 통하게 된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조선을 동국이라 말하거나, 조금 자존감을 세워 대동이라고 말하던 시기에, 중국에는 중국의 사방이 있고 각국에는 각기 본국의 사방이 있다는 정약용의 이 말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지리관에서도 정약용은, 중국의 많은 서적과 달리 백두산이 곤륜산 지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청 황제들이 주장과 달리 백두산 지맥이 중국 내 태산으로 된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백두산은 조선의 조종산(祖宗山)이라고 한 것이다.

동서남북에 대해 묻는 저 책문의 서두에서 정약용은, ‘동·서·남·북’을 뜻하는 한자들이 체계도 없이 산만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동(東) 자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떴고 서(西) 자는 새가 깃드는 것을 본떴으며 남(南) 자는 오(午)자를 따라 만들었고 북(北) 자는 배(背)자를 본떴다. 그런데 글자의 모양을 상형(象形)으로도 하고 회의(會意)로도 한 예가 어찌 이처럼 산만하고 질서가 없을까?”

이를테면 동(東)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 끝에 있다는 부상(扶桑)에 해가 걸려 있는 모습을 뜻한다. 천원지방설을 고수하여 중국을 신주(神州)·제주(齊州)·중주(中州)라고 여길 때나 현혹될 수 있을 말이다.

정약용은 명제와 반증(反證)을 알았다. 고정 관념을 존신하지도 않았고, 일반 통념을 심정적으로 반박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이 책문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자연학과 문자학이라는 기초학문의 근거를 토대로 논증을 하고 사유를 확장해나갔다. 그의 책문에 대해 응시생들이 작성했을 대책은 아직 하나도 발견된 것이 없다. 문제를 받아든 응시생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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