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무력 앞에서 문명을 돌아보며
특별기고 - 무력 앞에서 문명을 돌아보며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1.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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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정약용은 외국 정세를 살피면서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우려할 것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론」에서 개진된 다산의 판단은 과거 임진전쟁을 숙고한 것이지만 결국 어긋난 예측이 되고 말았다. 19세기 말 일본식의 문명화는 무력에 기반한 대외팽창 정책으로 드러났다. 정약용은 왜 일본이 더는 군사적 침략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을까? “지금 일본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다. 내가 고학선생(古學先生) 이또 진사이[伊藤維楨]가 지은 글과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다쟈이 슌다이[太宰純]가 말한 경전의 의리를 읽어보니 모두 문채[文]가 찬란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음을 알았다. (...) 오랑캐를 방어하기가 어려운 것은 문(文)이 없기 때문이다. (...) 문(文)이 우세하면 무사(武事)에 힘쓰지 않기에 함부로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 일본에도 예의를 숭상하고 원대한 장래를 도모하는 사람이 있기에 지금 일본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日本論」] 다산이 일본의 침략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무력보다는 문(文)을 숭상하는 나라, 즉 문명화된 세상에 동참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文)이란 무엇인가? 『주역』 비괘(賁卦) 「단전(彖傳)」에는 하늘의 형상인 천문(天文)과 사람 삶의 모습인 인문[人文]이 등장한다. “천문을 관찰해서 사시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을 관찰해서 세상을 변화시켜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이때 문(文)이란 우주와 인간 삶의 이상적 모습을 가리킨다. 바람직한 세상의 모습을 성취하는 자는 고대세계의 성인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은 성인을 의미하는 현룡(見龍)이 등장해서 세상이 문명화되었다[見龍在田, 天下文明]고 말한다. 성인이 세상의 이상적 질서를 마련해서 문이 밝아졌다면[文明] 그가 만든 문명의 모습은 어땠을까? 정도전이 지은 서문 하나에 문(文)이 완성된 세계가 보인다. “일월성신은 하늘의 모습이고 산천초목은 땅의 모습이고 시서예악(詩書禮樂)은 사람의 모습이다. (...) 사람은 도(道)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문(文)이란 도(道)를 싣는 그릇이므로 곧 인문(人文)이라고 말한다. 도를 얻으면 시서예악의 교훈이 세상에 밝게 드러나고 일월성신의 운행도 순조롭고 만물도 조화롭게 질서를 이루니 여기에 도달해야 문(文)의 완성이라고 할 만하다.”[『三峯集』「陶隱文集序」] 정도전이 생각한 인간 삶의 온전한 모습[文]은 우주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까지 말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세상을 경영하는 제왕의 임무를 묘사한 대목이다. “덕을 닦고 무(武)를 억제하는 것이 문(文)의 법식을 함께 이루는 것이다. 예악을 제정하고 인문을 변화시켜 이루어 세상을 경영한다.(「陶隱文集序」. 修德偃武, 文軌畢同. 其制禮作樂, 化成人文, 以經緯天地.)” 정도전은 문의 성취는 우선 무력을 억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점은 문이 우세하면 무사에 힘쓰지 않는다고 한 정약용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다산의 「일본론」을 따라가면 우리를 더 당혹스럽게 하는 발언이 등장한다. 그는 문치(文治)가 우세해서 의리와 예의를 알면, 즉 문명화되면 무력으로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에 일본이 함부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같은 맥락에서 고려가 여진을 굴복시키고 유구국(流球國, 오키나와)을 위력으로 제압한 것은 아직 문(文)이 우세하지 않고 예의염치를 몰랐던 때문이라고 자성한다. 문물(文物)이 성대하고 예의를 숭상하면 외적이 침입해도 두 손을 맞잡고 공물을 바치며[「日本論」. 自文物寢盛, 禮義相尙, 而有外寇至, 唯知拱手而奉獻.] 상대와 화친[화해]한다고도 했다. 20세기 이후 국민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과 침략전쟁을 떠올리면 유학자 다산의 발언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린다.

정약용은 조선의 강역을 면밀히 탐구했고 서북방의 국경 방어에 큰 관심을 가졌다. 『아방강역고』나 『대동수경』에서 보이는 인문지리적 관심과 경계도 그래서 가능했다. 『민보의(民堡議)』를 작성해서 외침에 대비하는 군사적 계책도 마련하려고 했다. 다만 그가 무비(武備)에 힘쓴 것이 부국강병이나 영토확장을 추구하기 위함은 아니다. 심각한 전란의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것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조선이 지향할 문명[文]이 결코 무력이나 폭력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패배와 고통이 무력을 함부로 휘두른 상대국 일본의 정당성, 그들의 도덕성과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군사강국[大國]은 문명국[上國]이 아니라는 발상은 당시 유학자들이 공유한 기본적인 세계인식이다. 박지원은 예의와 의리로 맺어진 관계와 폭력으로 맺어진 타율적 관계를 구분한다.[『열하일기』「行在雜錄序」] 명[上國]과 청[大國]에 대한 조선인의 상이한 태도가 단순히 한족인가 북방 오랑캐인가의 차이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청국이 조선을 후하게 대접해도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굴욕적인 시혜일 뿐이다. 조선이 폭력[丙子胡亂] 앞에 굴복했기에 대국 청에서 얻는 것은 비굴한 이익이라고 보았다. 연암 혹은 다산이 생각한 나라와 민족의 경계에는 무력과 폭력이라는 반-문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에게 문명한 곳이란 무력 없이도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들이 염두에 둔 문[文]의 세상, 문명이 꽃핀 세상을 떠올리면 다산이 일본을 평가한 옛글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이민족에 대한 그의 관심이 드러난 「동호론(東胡論)」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비족, 거란, 여진이 모두 중원 땅에 들어가 한때 문명을 떨쳤다고 말한다. 선비족의 척발위(拓跋魏)는 예악을 숭상하고 문학을 장려했다[崇禮樂獎文學]. 거란의 요(遼) 임금 아보기(阿保機)는 천륜에 돈독했고 순임금 이후 보기 드문 인물[阿保機(遼太祖)敦於天倫(...)此虞舜以來所未有也.]이라고 극찬한다. 다산은 여진족의 문명개화 공로에도 주목한다. 물론 그 가운데 정동(正東)에 위치한 조선이 가장 군자국(君子國)이라고 할 만한데 그 이유는 조선 풍속이 예의를 좋아하고 무력을 천시하며 차라리 유약하더라도 난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東胡論」. 朝鮮處正東之地, 故其俗好禮而賤武, 寧弱而不暴, 君子之邦也.] 조선을 가장 문명(文明)하다고 본 것은 유약해도 결코 폭력을 쓰는 난폭한 행위를 일삼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북방 이민족을 동이(東夷) 혹은 구이(九夷:동북방 아홉 민족)로 지칭하며, 다산은 역사가들이 동이(東夷)가 어질고 선하다고 일컬은 것에는 진실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史稱東夷爲仁善, 眞有以哉.] 정약용의 「동호론(東胡論)」은 동북아시아 여러 이민족을 아우르는 「동이론(東夷論)」, 오늘날 포괄적인 동아시아 담론에 비견될 만한 너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유교적인 동아시아 담론은 20세기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문명담론, 즉 동양평화론과 세계평화론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역사적으로 재소환된 평화론에 선배들의 슬기와 지혜가 온축되어 있다.

20세기 문명 전환기에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군사적 폭력과 핍박을 경험했다. 임진전쟁 이후 두 번째의 큰 시련이었다. 당시 한국인의 염원은 한 나라의 독립이 아닌 동양평화, 세계평화였다. 조선의 독립을 국제공조와 세계평화를 위한 주춧돌로 삼았다. 민족의 특수한 염원과 세계의 보편적 이념은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다. 한 세기 전 한국인에게 보편과 특수, 글로벌과 로컬은 서로 견인하는 두 가지 삶의 동력이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조선이 문치(文治)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했고 근대화에 뒤처졌다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근대의 부국강병과 전쟁, 영토확장이 우리가 추구할 이상이 아니라면 이제는 문치와 인문의 미래를 다시 생각할 시점이다. 문명[文]의 핵심은 싸우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고도 서로 다른 존재가 공존하게 하는 묘법에 있다. 그 핵심은 반폭력, 반전(反戰) 그리고 평화와 공존이다. 평화가 없다면 어떤 정의(正義)의 구호도, 윤리의 당위(當爲)도 의미가 없다. 영속적 사랑은 평화와 공존을 지향한다. 우리가 추구할 문명의 이상, 인문(人文)의 가치도 이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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