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의 문학, 문학의 정치-녹두장군’(1)
‘개벽의 문학, 문학의 정치-녹두장군’(1)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2.0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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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순천대 교수

송기숙과 그의 시대

송기숙이 살았던 우리 한국현대사는 배리(背理)의 정치가 판치는 사회였다.

헌법에 국민의 개인의 자유와 생명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민이나 인민을 기만하기 위한 정치공학적인 문학적 수사에 불과했다. 당대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권력이 이를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기본권, 생명권과 자유권을 압살하고 통제하는 사회체제가 해방 이후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며 부조리한 정치 사회체제의 근간에는 일제의 식민 잔재 청산의 실패라는 가장 핵심적인 의제가 부각되었던 시대였다.

이처럼 배리(背理)의 정치가 판쳤고 이러한 부조리한 정치 사회체제의 근간에는 일제의 식민 잔재 청산의 실패라는 가장 핵심적인 의제가 살아있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서 문학을 하게 되었던 송기숙은 정치성의 문학 즉,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기존의 순수미학의 관습과 전통에 저항하고 균열을 내었던 ‘문학의 정치’를 철저하게 지향했으며, 미학적 정치성을 실현했던 작가였다.

그러므로 송기숙이 추구한 문학은 이승만부터 박정희 체제로 이어지는 부조리한 독재권력 체제를 부인하고 그러한 사회 정치 체제를 근본으로부터 뒤바꾸고자 하는 개벽의 문학이었다.

이처럼 부조리한 정치 사회체제의 모순을 송기숙은 그의 작품에서 묘서하고 있다.

“우리와 똑같이 연합군의 승리로 국권을 회복한 불란서는 드골장군의 지휘 아래 나치 협력자 99만 명을 투옥하여 6,763명을 사형에 처하고, 87,877명을 종신 강제노동형과 부역죄로 처단했다. 특히 국권 회복 직후에 가장 가혹하게 처단한 것은 언론인과 문인과 학자들이었다. <중략> 나중에 드골에게 그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처단한 까닭을 묻자, 언론인들은 도덕과 윤리의 상징이고 문인과 학자들은 나라의 근본을 세워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듣기만 해도 뼈가 아픈 소리다.”-송기숙, 「붉은악마와 국가주의 시비」,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화남, 2005, 58쪽.

교육자이기도 했던 송기숙은 이런 시대에서 일제 식민 잔재 청산의 실패와 정통성을 상실한 독재 권력집단의 국가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교육의 문제에 주목했다. 일제의 황국신민서사를 그대로 모방답습한 ‘국민교육헌장’이 공교육에서 가장 주요한 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는 교육현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본 것이다.

이리하여 송기숙은, 1978년 전남대 교수 10명과 함께 <교육지표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송기숙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교수직에서도 해직 파면된다.

송기숙은 <교육지표선언>에서 “권력과 돈으로 층층이 층이 져 있는 이 사회는 저 상층을 향해 박이 터지는 경쟁이 있을 뿐”이고, “학교는 입시준비를 위한 학원으로 타락해버리고 교사는 지식 주입의 기능만을 발휘하는 기능인이 되어버린” 교육현실 속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없었던 교육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대학에서는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문제며,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당한 비판이 따라야 한다. 이 비판은 학문의 기본적인 방법이자 학문의 생명이며, 동시에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생명이다. 대학교육은 근본적으로 일정한 대상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비판능력을 개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비판이 수반되지 않는 지식이란 죽은 지식이며, 그런 지식은 학문이 아니라 죽은 지식의 축적에 불과하다. 오로지 올바른 비판을 통해서만 진리가 제 살아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다.”-「우리의 교육지표」

교육지표사건으로 인해 송기숙에게는 삶과 소설 세계의 전회와 신생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렇지만 그의 소설쓰기의 진정한 기원이 되었던 미증유의 사건, 즉 5‧18이 발생하면서 그의 삶은 또다시 역사의 격랑으로 빠져든다.

<녹두장군>의 영도(零度)로서의 5‧18과

소설 「우투리」

5‧18은 소설가이자 지식인이었던 송기숙의 삶과 문학에 있어서 인식과 실천의 틀과 깊이를 더욱 확장하고 심화시켜 나가게 된 근원적인 동인이 되었던 운명적 사건이었다.

교육지표 사건으로 1년여 간의 수감생활 후 교수직에서 해직된 채 집필에 전념하고 있던 그에게 5‧18은 미증유의 폭력 그 자체였다. 80년 5월 도피 중이던 그는 시민수습위원에 자원하여 학생수습위원회를 조직하고 항쟁 수습에 참여하였지만 도청이 함락되고 1달 후 검거, 엄청난 고문을 받은 후 5년형을 확정 받고 광주교도소에 1년 가까이 복역하게 된다. 특히 검거되고 난 후 그가 받았던 고문의 과정은 스스로 인간이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승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 작가 송기숙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러한 미증유의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소설화하는 창작의 길이었다.

5월의 문제를 창작이라는 실존의 시간에 끄집어들여 미완의 항쟁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겠다는 불뚝성이 같은 삶을 내재한, 역사를 향한 힘겨운 도정을 걷게 된 것이다.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곧바로 시작하였던 <녹두장군>의 창작, 그가 참담하게 겪어냈던 5‧18의 실체와 진실이 <녹두장군> 창작의 기원이 되었고, 송기숙이 지향한 ‘문학의 정치’의 시원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송기숙이 직접 경험한 5‧18보다 먼저 80여 년 전의 동학혁명을 서사화하려고 하였던 것은 5‧18과 동학혁명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의제, 반제‧반봉건의 공분모 때문이었다.

5월을 다루기에는 이를 서사적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적‧인식적 거리를 제대로 설정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송기숙 자신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5‧18이라는 서사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무게와 엄숙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5‧18을 창작의 대상으로 삼아 서사화했다. 즉 <녹두장군>을 집중적으로 집필하던 중간, 1988년 <창작과 비평> 여름 호에 발표한 「우투리」를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은 5‧18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송기숙이 거리에서 발생한 폭력적 양상을 현장성의 차원에서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그는 ‘아기장수전설’을 차용하여 그가 줄곧 추구해온 ‘불패자의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은 5‧18문학의 전체지형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투리」의 시공간은 5·18 광주항쟁이 발생한 1980년 5월 18일과 19일, 광주의 금남로와 전남대 후문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공장에 다니던 ‘현도’가 평소 자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시위 현장과 공수부대원들의 시민들을 향한 가혹한 폭행장면을 목격한다. 폭력적 현실상황에 방관적이었던 중도적 인물이 사태의 본질을 실감하면서 성격과 행동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 5·18 광주항쟁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국가 폭력의 무자비함이 그동안 아무런 상관관계를 느끼지 못하던 대다수 민중들을 비극적인 사태에 뛰어들게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송기숙의 소설은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실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리얼리즘의 미학적 성취를 일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송기숙의 소설과 그의 대표작 <녹두장군> 등이 다른 5월 문학들과 같이 미학성의 부재에 대한 편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단편과 여러 편의 장편들을 창작해왔음에도 여전히 한국현대소설사에서 주요한 서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 때문일 것이다.

그의 <녹두장군>의 최근 연구 성과도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5‧18문학에 대한 순수문학 중심의 한국문학계의 편견이 바로 송기숙 문학에 대한 편견으로 환원되는 현실인 것이다.

전성욱은 방민호의 말을 빌려와 5월 문학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간소하고 빈약한 이유를 광주라는 주제가 환기시키는 노골적인 정치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정치성으로, 광주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들이 학술활동이라기 보다는 진보운동의 차원에 기울어진 정치적 성향 때문임을 비판한 것이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가까운 것으로 5월 문학을 상정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오히려 어떤 정치적 선택과 단선적인 미학적 태도를 정향하고 5월 문학 연구사를 들여다 본 것은 아닌가라는고 의심된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5월 문학에 대한 편향의 시선이 한국문학사 전체를 총체적으로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기의 문단권력과 순수문학에 근간한 미학의 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당위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학체제와 인식틀에 있어서 개벽과 같은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5‧18문학과 송기숙 문학에 대한 편견이 극복될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녹두장군>을 비롯한 송기숙 소설의 온당한 문학사적 평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 계속> /김선욱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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