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흥문화원, 2022년 문화가족 임직원 연수를 다녀와서
특별기고-장흥문화원, 2022년 문화가족 임직원 연수를 다녀와서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2.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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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의 훌륭한 향토문화유산에 관심을 갖자
문병길(장흥문화원 향토사분과 이사)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2년 문화가족 임직원 연수를 지난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 동안 실시했다.

이번에 참여한 장흥문화원 임직원 40여명은 3일간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전라북도 고창, 충청도 보령과 서산, 경기도 강화도의 국난극복 유적지를 답사했다.

첫날은 고창읍성, 신재호 판소리기념관, 보령 성주사지, 보령 석탄박물관을 둘러보고, 둘째 날은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강화도 전등사, 강화 전쟁 박물관, 강화도 갑곶돈대, 강화도 광성보, 강화도 초지진을 탐방했으며, 마지막 날에는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 서산A지구 방조제, 서산 간월암, 보령 해저터널 등을 탐방했다.

필자는 유적지 답사를 동행했는데, 회진면 김만배(81세) 문화원 이사는 “자네와 같은 젊은 사람이 문화원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별기고”를 부탁했다.

그동안 필자는 2018년부터 우리군 향토문화유산 가운데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홍보된 내용을 향토신문에 72회 연재 기고한 바 있다.

장흥 신청(神廳: 현재 국악연구소)를 복원해야 한다.

첫날 둘러본 ‘신재효 고택 및 판소리 박물관’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다. 신재효 초가집에서 광대소리를 여섯 마당 판소리(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치기 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이론을 정리한 곳이다.

우리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동학농민혁명 이전 700여년 동안 전남 서남권을 관장했던 부사(府使)고을로서 국가기관이었던 장흥신청(神廳: 현재 국악연구소)이 1938년까지 존재하면서 판소리, 춤, 가야금, 양금 등을 익히고 국악 강연을 실시해 지금의 「서편재」소리를 탄생시켰던 판소리 본향으로 국악저변 확대에 획기적으로 크게 기여했다.

장흥신청 후인들은 한국 근대 음악사에서 민간음악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고, 현재 장흥출신 국악인 유영애, 김규문, 강행복, 이영애, 이현미, 문효심, 김효정 등이 경향각지에서 장흥국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라도 장흥신청이 있었던 남산공원 주변에 가칭 ‘정남진 장흥 전통예술 전수관’을 복원하여 장흥국악발전을 위한 토대를 만들고 장흥문화의 줄기를 더욱 튼튼히 할 수 있는 소중한 장흥의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장흥신청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 앞에 장흥의 소중한 또 하나의 문화유산을 없애버리는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될 것이다.

보림사는 오늘날 조계종 근원사찰이다.

둘째 날에는 보령 성주사지 역사관을 답사했다. 사찰 성주사의 옛 터는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이다.

현재는 무염선사 비석이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고 석탑4기가 있어 국가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었다.

보림사는 오늘날 한국불교 법맥의 조계종 근원사찰로서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시대까지 번성했던 구산선문(禪門:선종사찰)의 종가집이다.

그래서 보림사 조사전에 한국불교 선종의 종조(宗祖:1대 조사)도의선사, 2대 조사 염거선사, 3대조사 보조선사, 고려시대 조계종의 중흥조 태고 보우국사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보림사 어느 곳에도 그 내용을 홍보하는 안내판이나 보림사를 홍보하는 홍보자료에 보림사가 구산선문 종가집으로서 우리나라 조계종 근원사찰이라는 내용의 글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문화관광해설을 하는 필자는 너무나도 아쉽고 민망하다.

또한, 보림사 성보박물관을 수년전에 건축되었는데 지금도 운영하지 않고 폐쇄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에 질문 받을 때에는 안타깝기만 하다.

왜? 박물관을 개방하지 않고 폐쇄해 났어요?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를 문화재로 만들어야 한다.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기지시 줄다리기’는 1982년에 국가무형 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고, 2015년에 세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조선시대 기지시 마을에서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줄을 당겼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민속종합예술이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는 정월 대보름날 장흥읍 예양강(탐진강)변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남외리, 충열리, 교촌리 3개마을과 동쪽에 위치한 행원리, 건산리에서 600여명 놀이꾼들이 각각 고를 맨 채 행진했다.

흥겨운 농악과 고싸움 노래(설 소리)를 하면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당시 장흥도호부사(府使:종3품직) 동헌(오늘날 군청)과 벽사역 찰방(察訪:정6품직)이 근무하는 동헌(현재 국가정보 통신기관)으로 가서 각각 그 지역의 원님에게 인사드린 이유는 예양강(탐진강)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 지역이 구분되어 ‘서로 이기라’라고 서부지역과 동부지역 출전자들에게 사기진작하는 중요한 민속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먼저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보존회’를 구성 운영하고, 문화재로 만들어야 한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는 공중에서 줄을 연결시키고 있어 줄당기기 본래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되고 있다. 국가문화재가 되기 위해 1차적으로 우리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만들고, 국가문화재로 승격시켜야 한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전시관 및 박물관을 건축해야 한다.

1970년 제11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했던 ‘장흥고싸움 줄당기기“는 1969년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광산고싸움이 대통령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당시 전남으로 연속해서 대통령 표창을 준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심사위원들의 논의 때문에, 1970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행군 순서는 제일 앞에 햇불이 가고 수백년 전해오는 덕석기, 농기, 영기기 뒤따르고 그 다음에 농악대가 줄을 잇고, 청사초롱이 달린 고를 맨 놀이꾼들이 따라간다.

청사초롱을 고에 매달고 행진하는 지역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고싸움을 낮에 하는데 햇불을 밝히는 이유는 잡귀나 역신을 쫒아 ‘고싸움 줄당기기“하는 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어 풍년이 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청사초롱을 고위에 층층으로 매달아 불 밝히고 기녀들이 노래하면서 예양강변으로 간 이유는 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어서 행사에 오시는 신이 감흥하여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장흥고싸움 줄당기기“가 남도 풍류와 멋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가장 복합적인 놀이이면서 예술적이며, 또한 애향심을 북돋는 통합기능이 있음을 인지하게 하여 자발적으로 후손에게 계승되고 전승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장흥고싸움 줄당기기’의 앞 놀이를 변형하여 광산고싸움을 형성하게 하였고, 일본 오키나와 고싸움과 흡사하기 때문에 그 가치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전시관 및 박물관」을 조성함으로써 일본 오키나와 관광객들이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다른 곳에 있는 조형물을 회령진성에 설치해야 한다.

강화도 갑곶 돈대, 광성보, 초지진를 탐방했다. 그곳은 고려시대 몽골전쟁 때 군사 수군기지였다.

장흥 회진면에 있는 ‘회령진성’은 1425년부터 회령진(鎭)이 군사 수군기지로 설치되었고, 1490년에 국가에서 현재의 회령진성을 쌓았으며,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취임식을 1597년 8월 19일(양력 9월 29일)거행하고 선조임금이 내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교지에 100여명 장수(군인)들이 돌아가면서 숙배(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공수한 손을 무릎 아래까지 내려 공손히 하는 절)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의를 맹세했던 곳이다.

장흥 회령진은 삼도수군통제사에 대한 위엄과 권한을 부여하며, 지휘에 복종하며 나라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의식을 했으며 명랑해전을 준비했던 장소여서 전라남도 문화자료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구전에 의하면 장흥 회진면 덕산마을 땅머리 끝(현재 덕산리 산 1-1번지)에서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명령으로 부서진 판옥선 8척 전선을 장흥도호부 조선병창(造船兵倉) 김세호(金世浩:장흥출신)감독 하에 장흥백성 300여명이 모여들어 고쳤다고 한다.

그 당시 장흥도호부 해안(현재 회진면과 인근 읍면)이름 없는 민초들은 짧은 기간(1597년 8월 19일 ~ 8월 20일 이후)에 파손된 판옥선 전함(전선)을 고치면서 갖은 고난을 겪었을 텐데 관련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아쉽다. 장흥앞 바다에서 평생 생계를 꾸려왔던 민초들은 소중한 목숨을 뒤로 한 체 명랑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을 따랐다. 그러나 이름마저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이름 없는 백성들은 진도의 벽파진 부근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고 한다.

한편, 보성군은 정유재란 당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있는 것처럼 거짓 주장하여 이순신 장군 관련 관광지를 조성해서 전국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우리 장흥군은 훌륭한 향토문화자원을 방치해 빼았기고 있다.

장흥 회령진성에 있어야할 조형물들이 1986년에 해남군에서는 우수영 국민관광단지를 조성하면서 회령포의 결의, 폐선을 명량의 전함으로, 장흥출신 마하수 5부자 탑 조형물이 본래 의미를 잊은 채 다른 곳에 설치되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회령포의 결의’ 조형물에 새겨져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명랑해전이 눈앞에 닥쳤을 때 장흥 회령포에 당도한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김억추 등 관내 장수들과 더불어 최후의 결전을 맹세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어찌 한 번의 죽음을 두려워하랴. 이제 모두 충의에 죽어서 나라 지킨 영광을 얻자.”하여 비장한 결의를 다진 수군 장수들은 격전이 기다리는 우수영 바다를 향해 진군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매년 실시해 오던 장흥문화원 문화가족 유적지 답사를 3년 만에 실시했는데 이번 문화유적지 답사에 함께 참여했던 김 모 문화원 이사는 “장흥문화원 발전을 위해 내년 2월에 실시될 문화원장 후보는 장흥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장흥에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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