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팔월 보름달

김선욱 시인

2021-09-14     김선욱

 

 

 

 

 

 

 

 

 

 

 

팔월 보름달

 

이 날은 천지에 달이 넘쳐났다

 

어무니가 우물에서 퍼 올린 달은

불그레한 낯빛으로 허허 웃고

사랑채 할아부지 술잔에선 키득거렸고

공동우물에서 아낙들이 길어 올린 달은

사람들 가슴에 들어앉아

사람들은 죄다 붕붕 떠 다녔다

동그랗게 가지를 피어올린 사장나무 밑에서

매구치는 징이며 북이며 꽹과리며 소구에도

어른들의 신명난 춤사위에도 들어앉아

미친바람을 불어 넣었고

동 회관 앞마당에서 강강수울래 하며

흐드러지게 춤추는 처녀들 저고리 밑으로 숨어들어

처녀들 몸을 뜨겁게 불살랐다

이날 마을로 내려온 달은

마을 곳곳을 휘휘 내저으며 걸어 다녔고

사람들은 그 달을 먹고 마시고

달의 혼령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밤새 헐떡거렸다

지금은 누가 찾지도 않고

마을로 내려와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홀로 외로이 떠 있을 뿐.

-2012.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