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가을을 걷다
■특별기고-가을을 걷다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10.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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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태희(다산연구소 소장)

그는 유배지 강진을 떠나 한강변 고향집을 향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기약 없던 유배가 풀린 것은, 귀양살이 열여덟 해째인 1818년이었다. 고향길에 오른 것은 그해 음력 9월이었다. 올해 양력으로 치면 10월 중순이다.

그 길은 월출산 누릿재를 넘어, 영산강을 건너고, 장성 갈재를 넘는다. 다산은 정읍과 논산을 지나 공주의 금강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가 18년 전 겨울 유배지를 향해 남으로 내려가다 금강에 이르렀을 때는, 20여 년 전 아내와 함께 금강을 건너던 10대의 젊은 시절을 추억했다. 18년이 훌쩍 지난 가을, 다시 금강을 지날 때는 또 무엇을 추억했을까. 공간과 시간은 이처럼 서로 결합하여 고유성을 부여하며 또한 이어지게 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200년이 지난 후, 그 길을 우리는 걸었다. 길이 꼭 같을 리 없다. 그래도 둘러싼 산의 능선들과 하늘의 모습, 그리고 햇빛과 바람의 방향은 흡사했으리라. 강진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대체로 직선에 가까웠다. 들판은 황금빛 물결이 출렁거렸다.

그때 다산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는 40대의 전부와 50대의 상당 부분을 유배지에서 흘려보냈다. 그에게 인생의 황금기 또는 빛나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입신양명의 꿈을 키우며 운길산 수종사를 오르내리던 때였을까. 정조 대왕을 만나 인정을 받고 관료로 활약하던 때였을까. 아니, 먼 남쪽 바닷가에 팽개쳐져서도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던 때였을까. 다산초당에서 엄청난 학문적 축적을 이룬 때였을까. 고향에 돌아와 노년을 유유자적하던 때였을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200년 전 다산 선생과 비교하게 되는 내 나이 탓일 게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세속적인 성취 정도로 정해질 수 없다. 사람들의 선망이나 인정에 따라 정해질 수도 없다. 그것은 덧없는 것이다. 왕자웨이의 영화〈화양연화〉(花樣年華, 2000)가 시사하듯이, 흔들리고 심지어 불행했던 때가 아름다운 시절로 추억될 수 있다. 부족하고 미진한 바로 지금이 훗날 ‘화양연화’로 추억될지 누가 알겠나.

여전히 길은 서울로 통하기에 서울로 가는 길과 교통수단은 다양하다. 도보길에 고속도로와 고속철로가 평행으로 달리고 있었다. 10여 일의 해배길 걷기를 진행하면서, 나는 중간에 도보단 대열을 빠져나와 서울을 왕래해야 했다. 교통수단은 고속철이었다. 교통수단에 따라 속도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풍광을 감각하는 것도 이동 중에 생각하는 것도 사뭇 달라진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공간이동에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떤 수단으로도 시간의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서, 브래드 피트가 분한 주인공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아이의 모습으로 죽는다.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기괴한 삶이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렇게 시간을 거꾸로 살지만, 결코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는 못한다.

영화 〈빠삐용〉(1973)에서 스티브 맥퀸이 분한 주인공은 감옥을 탈출하려다 실패해 독방에 갇힌다. 꿈속에서 만난 법정에서 재판관이 그에게 준엄하게 유죄를 선고한다. “너는 인생을 낭비했다!” 그는 더 이상 결백과 무죄를 항변하지 못한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런 논죄가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은 흐르고, 가을은 짧다

다산은 고향에 돌아간 후 몇 해 지나 회갑을 맞이하자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죽은 후에 누군가가 잘 써줄 텐데, 왜 스스로 묘지명을 썼을까. 임오년에 태어나 임오년을 맞이한 그는 감회가 자못 컸다. 지난 60년의 생을 돌아보며 매듭짓고, 다시 시작하여 여생을 잘 마치고자 했다.

호남·호서의 서쪽 들판은 제법 넓고 그래서 하늘도 넓다. 저녁 해가 넓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 새들은 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나그네의 마음은 바빠진다. 길 떠나는 새벽의 바쁨과는 다르다. 열린 시간과 길을 향해 서두르는 것과 시간이 닫힘에 따라 길을 서둘러 멈추는 것이 같을 수 없다. 시간이 계속될 것만 같은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회한과 아쉬움이 스밀 수밖에 없다.

인생의 봄날은 금세 지나가 버리고, 여름은 시간을 돌아보기 어렵다. 지난여름이 어떠했든 지금은 가을이다. 가을은 짧다. 한창 무르익다가 불꽃을 이룬가 싶더니 순식간에 낙엽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다. 2018년 그 가을을 나는 걸었다.

* 지난 10월 중순, 강진군과 다산연구소에서 해배길 걷기를 비롯한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강진에서 한강까지 다산과 함께 길을 걷다”)를 했다. 여러 일이 있었고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 한 조각을 기록하여 둔다.

▶글쓴이 / 김 태 희

· 다산연구소 소장
· 저서
〈정약용, 슈퍼 히어로가 되다〉 (2016)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 (2012)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 (공저, 2011)
〈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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