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고 새로 쓰는 장흥(4) - 장흥 역사 최초의 위인은 원표(元表)대사였다(3)
■다시읽고 새로 쓰는 장흥(4) - 장흥 역사 최초의 위인은 원표(元表)대사였다(3)
  • 김선욱
  • 승인 2023.02.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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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표대사, 보림사 이전 가지산사 개창, ‘보림사 개산조’였다.

중국 영덕 지제산서, 화엄사상・천관보살사상 유포한 신라 승려

영덕 지제산화엄사・나라사 – 원표를 화엄 조사・개산조로 존숭

 

 

▲나라사 입구에 세워진 개산조 원표 기념비
▲나라암에 위치한 나라암 비기

 

 

 

 

 

 

 

 

 

 

 

▲나라사 전경1
▲나라사 전경2

 

 

 

 

 

 

원표가 개산조가 된 나라사

▲나라사 입구에 세워진 개산조 원표 기념비(좌)과 나라사 전경(우측)

그런데 원표의 천관보살 신앙의 실질적인 뿌리는 나라사(那羅寺), 나라연굴(那羅延堀)이었다.

나라사, 나라암은 닝더(寧德) 초성구(蕉城區) 호패진(虎貝鎮) 동원촌(東源村)에 있다. 지제산 주봉인 화정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원표가 《80 화엄》을 가지고 들어가 수행하였던 그 문제의 나라연굴에 있는 사찰이다.

지난 2010년대 초반, 중국 푸젠성 닝더(복건성 영덕)의 나라사에서 ‘나라암비기那羅岩碑記’를 발견, 국내 학술지 《신라문화》에 나라암비기 내용을 발표했던 박현규 교수(순천향대)는 “나라암(那羅寺, 那羅延堀)에는 명 만력 32년(1604)에 진도종(陳道宗)이 나라사를 창건했다는 나라사의 내력 등을 적은 ’나라암비기‘가 세워져 있으며 원표가 나라암을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라고 명기되어 있다. 오늘날 영덕 불교계에서는 원표를 천관 사상을 퍼뜨린 지제산의 개산조로 꼽고 있다”고 밝히고 ’바라암비기‘의 탁본 내용과 그 비기의 전문과 해석도 소개한 바 있다”.

(나라암비기 내용은 전전호에서 소개됐으므로 여기서 제외한다)

나라사에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사이에 개산조 원표의 석상이 봉안돼 있다고 밝힌 것은 박현규 씨뿐이 아니다. 나라사를 답사했던 조영록 씨도 복건성 답사기에서 그 사실을 증언했다.

혹자는 원표가 지제산에서 처음으로 천관사상을 전파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기실 ‘지제산과 천관보살’ 신앙은 《80 화엄》에 나오지만, 이미 《60 화엄》에서도 ‘지견고(枝堅固)와 천관보살’이 등장되므로, 천관사상은 《80 화엄》이 유포되기 이전부터 어느 만큼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60 화엄》 출간 연대가 동진(東晋, 418∼422)시대인 데다, 원표가 지제산을 찾아 ‘천관보살도량’에 예를 올렸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이미 천관보살 신앙은 지제산을 중심으로 존재해 있었고, 《80 화엄) 이후에 원표에 의해 본격적으로 지제산을 거점으로 화엄신앙, 즉 천관신앙이 크게 유포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당대(唐代)의 천관보살신앙은 이처럼 서역에서 〈화엄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와 지제산 나라암에서 한동안 두타행(頭陀行)을 행하였던 원표에 의해 더욱 확산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원표의 중심 불교 사상은 천관보살 신앙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는 ‘지제산은 천관보살이 거처하는 설법하는 산’ ‘보살이 상주하는 나라연굴’등으로 알려지며 지제산은 복건성의 명산으로 유명해졌으며, 하다못해 “지제에 이르지 못하면 승려가 아니다 不到支提枉爲僧”라는 명언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영덕 지제산에서 이러한 원표(742〜756) 이후, 2세기가 지난 971년(宋開寶 4년)에 설립된 ‘지제산 화엄사’ 역시 말 그대로 중국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다.

지제산 화엄사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식 문건에서도 서두에서 원표를 등장시키면서 지제산 화엄사의 기원을 《80 화엄경》을 강송했던 원표에서 찾고 있다. 또 이 화엄사가 천관보살을 신앙했다는 연유 하나로 사찰 창간 때 조상됐던 1,000개 천관보살상 조상도 소개하고 있다.

“충의왕이 불교에 마음을 두고 즉위 초에 兩浙 諸郡의 名山과 聖跡이 있는 곳에 金帛을 희사하여 절을 창건케 하였다. 福州 支提山은 천관보살도량으로 왕이 七實를 보시하여 천관상 1천개를 만들고 이에 절을 세웠다”(《釋氏稽古略》권3

충의왕(忠懿王 재위 948∼9)이 복주(福州,복건성)의 지제산을 천관보살도량으로 인식하였고 칠보를 보시해 천관상(天冠像) 천 개를 만들고 사찰을 창건케 한 것이다.

또 이와 관련, 976(開寶 9년) 충의왕이 사소(寺疏)를 남겼는데, ‘신미년(971)에 금백 (金帛) 희사하여 정사(精舍)를 창건케 했으며, ‘천관보살상을 주조’하여 안치하고 대화엄사(大華嚴寺)라고 하였다는 기록을 남겨 지제산 화엄사의 창건 이유도 밝히고 있다.

결국 지제산 화엄사는 천관보살로 인해 천관보살과 함께 창건된 사찰이었던 것이다.

지금 사찰 경내 본당 서쪽의 천관각(天冠閣)에는 철주천관보살상(속칭 千聖天冠菩薩)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는 명영락 연간(明永樂 年間)에 명성조의 인효황태후(仁孝皇太后)사 하사한 것이다. 원래는 총 1,000존으로 현재 947존이 남아 있다고 한다. 화엄사 창건 때 조성하여 안치됐던 그 천관보살상은 병화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현재 사찰 내에는 천관관에 안치된 천관보살상 외에도 천관보살과 관련된 천관선실(天冠禅室) 천관림(天冠林) 등이 존치한다.

장흥 천관산, 중국 지제산 천관보살 수용

아무튼, 당대 중국의 지제산의 천관보살이 그대로 수용된 곳이 장흥의 천관산이었다.

하여 ‘천관산기’에서 “…오아현(烏兒縣) 지경에, 천관산(天冠山)이 있는데 … 이 산을 지제산(支提山)이라고도 한다”고 명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80 화엄》을 근거로, 조선 시대 우의정을 지낸 허목(許穆, 1595년~1682)이 편찬한 《미수기언(眉叟記言)》에도 《화엄경》 보살주처 내용의 일부가 나오는데, 그 보살의 주처지가 바로 우리나라 강원도 금강산과 장흥의 지제산, 즉 장흥의 천관산이었다.

이는 《화엄경》 보살주처 신앙이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수용됐음을 증거해 주는 내용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보살 상주처로는 강원도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금강산은 법기보살이, 남해 보리암‧낙산사 홍련암‧강화도 보문사는 관음보살이, 고창 선운산 선운사는 지장보살이, 대구 팔공산(갓바위 부처)은 약사여래불로 유명한데, 왜 허목은 보살이 상주하는 명산으로 금강산과 함께 천관산을 기록했을까.

이미 금강산도 암자 등이 108개나 있는 불국토요 불교성지였다. 역시 지제산(천관산)에도 89암자가 있어 불국토요 불교 성지나 다름없었다. 하여 허목(許穆)도 대표적인 보살주처 신앙지로 금강산 외에 천관산을 거명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금강산의 ‘금강(金剛)’이라는 말은 《화엄경》에 ‘금강산에 법기보살이 상주한다’고 명시한 데서 연유되었다. 풍악(楓嶽) 등 여러 별칭이 있으나, 승려들이 《화엄경》에 근거해 ‘금강산’으로 부르면서 이 이름이 고정되었다. 또 《화엄경》에 근거, 법기(法起) 보살이 1만2천 명의 제자를 데려와 한 명씩 앉혔다는 1만2천 봉우리, 그리고 8만9천 암자가 있었다고 설해졌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서울. 권47 회양도호부)에도 금강산에는 총 108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기록에 나오는 암자들의 이름을 종합해 보면 무려 180여 개나 되었다고 전해졌다.

“내 일찍이 지지(地誌)를 읽어 보니, 기달산(怾怛山)은 동해 가에 있는 명산으로, 산봉우리가 뾰족뾰족하고 우뚝하게 솟은 것이 1만 2천 개다.… 가람(伽藍)과 난야(蘭若, 암자)가 108개소인데, 그중에 유명한 사찰로는 마하연(摩訶衍)이 가장 깊숙한 곳에 있고 보덕굴(普德窟)이 그 다음이며, 표훈사(表訓寺)가 또 그 다음이다. 장안사(長安寺)가 가장 아래쪽에 있는데, 1만 5,053개의 부처에게 성대하게 공양을 드린다. …기달산은 풍악이라고도 하고 개골산(皆骨山)이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은 금강산(金剛山)이라고 부른다. 불서(佛書)에 ‘담무갈(曇無竭-법기보살)이 거주한 곳’이라고 하는데, 오차(烏次, 長興의 옛 이름)의 지제산(支題山)과 더불어 모두 설법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상으로 독지지 229자를 짓는다.” 이라고 했다.

실제로, 《80 화엄경》(《大正蔵》권10, p.241中)에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으며, 지금은 법기(法起)보살이 그의 권속 일천 이백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법을 설한다. 동남방에 지제산(支提山)은 옛부터 여러 보살들이 상주하였던 곳이다. 현재는 천관보살이 권속 여러 菩薩衆 1천인과 함께 상주하여 법을 설한다.” 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미수기언》에서 금강산과 지제산에 법기보살(法起菩薩,曇無竭)이 머문다는 내용, 즉 《화엄경》 보살주처품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보살 주처와 여러 보살들의 이름(동방 선인산仙人山의 금강승金剛勝보살, 남방 승봉산勝峰山의 법혜法慧보살, 서방 금강염산金剛焰山의 정진무외행精進無畏行보살, 북방 향적산香積山의 향상香象보살, 동북방 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 바다 가운데 금강산의 법기法起보살, 동남방 지제산支提山의 천관天冠보살 …)들을 근거로 했을 것이기에, 오기로 추측된다.

여하튼 《화엄경》에 의하면, 금강산이 법기보살이 상주처로 불국토가 되었듯이, 천관산도 천관보살이 머물고 있는 산, 곧 불국토(佛國土)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천관산기’는 서두에서부터 지제산의 내력(‘보살이 주처하는 산’)을 비롯 8만4천개의 불탑을 세웠던 아육왕의 탑의 하나인 아육왕탑 소개, 탑산사‧천관사 개창, 사나암(舍那岩)·문수암(文殊岩)‧보현암(普賢岩) 등 보살 이름의 바위(산봉우리), 의상암(義湘庵)‧구정암(九精庵)‧미타암(彌陀庵) 등 주요 암자 소개 등 주요 불교 관련 성적(聖蹟) 등을 소개, 천관산이 당대 호남 유일의 불교 성지요 불국토였음을 증언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천관보살 신앙의 유포 과정

《송고승전》에 의하면, 원표는 천보 연간(742~756)에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복건성 지제산 에서 천관사상(화엄사상)을 지제산 일대에 보급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신화적 인물이다.

그러던 원표가 756년에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 3년 뒤인 759년 장흥의 가지산에 보림사(정명은 가지산사)를 창건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경덕왕(재위742~765)이 원표의 가지산사에 면세 면역의 상징인 ‘장생표주’를 내려줄 정도로 원표는 신라왕실에 친화적인 인물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원표가 가지산사를 세운(759년) 후, 40여년이 지난 800년 경 애장왕(재위 800~809) 때 통령(通靈)이 탑산사와 천관사(첫 사찰이름은 화엄사)가 등장한다.

중국에서 귀국한 원표, 원표가 가지산사를 창건한 지 40여년 뒤 천관산에서 두 개 사찰의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 89암자도 차츰차츰 세워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천관사, 탑산사를 중심으로 화엄사상이 전파되며 특히 《80 화엄》 보살주처품의 천관보살 신앙이 수용되며, 천관산은 천관보살의 상주처가 되었을 것이다.

당대 천관산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무슨 근거에 의해 당대 중앙무대(경주, 경상도 등)도 아닌 반도 서남부로 백제의 고토였던 변방의 장흥의 천관산이 ‘천관보살 신앙의 천관보살 상주처’로 대두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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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현규, 福建 那羅岩碑記와 신라승 元表 행적, 신라문화, 통권 39pp. 159-182

2) 이 논문은 2013보림사 원표대사 국제학술대회에서도 푸젠 닝더 나라암 <나라암비기> 탁본이라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3) 조영록, ‘중국 복건지역 한국관련 불적 답사기’, 신라문화15. p.230.

4) ‘不到支提枉爲僧은 오늘날 화엄종 도장으로서 지제산을 설명하는 문구에는 거의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https://www.enmsb.com article 支提山文化 https://zh.wikipedia.org wiki 支提山 http://www.ndwww.cn 闽东之光 闽东文物 2https

5) 지제산 화엄사 : http://www.zhitishan.org/ 支提文苑>第一章> 緒論

6) 《釋氏稽古略3. “(忠懿)王 留心釋敎 嗣位之初 凡兩浙諸郡名山聖跡之處 皆賜金帛創建伽藍 福州支提山乃天冠菩薩道場 王施七寅 鑄天冠像一千身 仍創寺宇.”

7) 淳照 三山志((欽定四庫全書484,支提政和萬壽寺pp.558559, “是歲錢氏起廢爲寺號大華嚴(有開寶九年十月 天下大 元帥吳越國王錢俶 慶寺疏刻石 今存 疏內云 國家自辛未年中 爰捨金帛 命所司建精舍 仍鑄天冠菩薩梵)

8) 미수기언眉叟記言(기언 제28권 원집 하편,산수,풍악. 嘗讀地誌怾怛東海上名山巖岫矹硉硊磈萬有二千 伽藍蘭若百八所其名刹摩訶衍最深普德窟次之表訓又次之長安最在下大祀萬五千五十三佛長安表訓初作於新羅法興時麗氏崇奉五百年至元之末世奇后祝釐歲出內帑幣千數以增飾云正陽在山之中地界最高瞰列岫層巒杳冥無窮楡岾在毗盧東九井南我惠莊十二年因古寺增作之最大刹前川出南石事佛之世置京庫二所收東界田租以供浮屠一在烈山一在百川橋外怾怛或曰楓嶽或曰皆骨山浮屠人謂之金剛山佛書云曇無竭所住與烏次支題皆其大言者云作讀地誌二百二十九言)

9) 海中有處 名金剛山 從昔已來 諸菩薩衆 於中止住 現有菩薩 名曰法起 與其眷屬 諸菩薩衆 千二百人俱 常在其中 而演說法 東南方有處名支提山 從昔已來 諸菩薩衆 於中止住 現有菩薩 名曰天冠 與其眷屬 諸菩薩衆 一千人俱 常在其中 而演說法

10) 금강산에 이어 지제산이 나오므로 혼선이었거나 자구(字句 : 二百二十九言)에 매여 법기보살과 천관보살을 법기보살로 통칭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11) ‘보림사청성탑비’ : 新羅國 武州 迦智山 寶林寺 諡 普照禪師 靈塔碑銘 幷序〉 《新羅國 武州 迦智山 寶林寺 諡 普照禪師 靈塔碑銘 幷序》 …겨울 10월에 왕이 다시 명을 내려 스님과 속인 사신인 영암군 승정 연훈법사와 교지[]를 받든 풍선(馮瑄) 등을 보내어 왕의 뜻을 전해 가지산사(迦智山寺)로 옮겨 거처할 것을 청했다. 드디어 마지못해 석장을 날려 가지산문(迦智山門)으로 옮겨 들어가니, 그 산은 곧 원표대덕이 옛날에 거처하던 곳이었다. 원표대덕은 법력으로써 정사에 도움을 주었으므로, 건원 2년 왕이 특별히 명하여 장생표 기둥을 세우도록 하였는데 그 표주(標柱)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冬十月, 敎又遣道俗使, 靈巖郡僧正連訓法師, 奉宸馮瑄等, 宣諭)綸旨, 請移居迦智山寺, 遂飛金錫, 遷入山門. 其山則元表大德之舊居也. 表德以法力, 施于有政, 是以, 乾元二年, 特敎植長生標柱, 至今存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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