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사람들 - 자전적 시집 출간한 장흥 신흥리 출신 강연순 시인
장흥사람들 - 자전적 시집 출간한 장흥 신흥리 출신 강연순 시인
  • 김용란
  • 승인 2023.03.15 0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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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그림도 직접 그린 생활시집

강연순 시인은 장흥읍 신흥리 출신으로 장흥초, 장흥여중, 청암대 사회복지학과,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서양화(유화) 등 여러 장르의 미술활동을 하며 개인전 3회(안산, 천안, 아산)와 200여회 단체전(대한민국 미술협회전, 대한민국 남부 현대미술제전 등)에 참여하며 공무원으로 퇴직한 남편과 약사, 교사 및 교수, 프로골퍼로 성장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다 칠십이 가까워 직접 삽화를 그린 시집을 하움출판사에서 출간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신을 소개한다면?

- 남도의 전형적인 농촌에서 칠 남매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자연과 함께 뛰놀고 먹이를 찾아 들로 산을 헤매는 망아지처럼 친구들과 산딸기를 찾아다니고 초봄이면 얼은 손을 호호 불며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탐진강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개구리헤엄을 치며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순응하며 순수하게 살았다. 막내라서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유복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진 못했다. 천연두를 앓았던 언니로 인해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일에 묻혀 살았고 아버지는 집안일보다는 마을 일이 우선이었고 술독에 빠져 사셨다. 그땐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많은 결핍 속에 살면서 삶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다.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 현실을 도피하듯 결혼을 했더니 그것 또한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은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다.

시집을 소개해주신다면?

- 나이 서른아홉에 아이 셋을 데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서른넷에 따 놓은 미용사 자격증 하나 달랑 들고 38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 무연고지인 순천으로 옮겨와 똬리를 틀었다. 낮이면 일을 하고 밤이면 아이들 마중을 가고 새벽이면 도시락 다섯개를 싸면서 사십 대를 보냈다. 50대는 일을 하며 그림을 배우고 공부를 하고, 60대는 천안으로 옮겨 와 5년 동안 꽃을 피우듯 오롯이 내 삶을 살았다. 우연한 계기로 평택으로 옮겨 3년을 살다 아들이 살고 있는 동탄으로 2년 전 왔다. 이런 내 삶이 파도치는 바다를 떠돌다 바닷가 모래밭에 밀려 와 박혀 있던 낡은 신발 한 짝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시를 쓰게 되었다. 모든 삶이 바닷가에 밀려 온 신발 한 짝처럼 광활한 바다 위에서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잔잔한 바다 위를 노닐기도 하다가 결국엔 힘이 없어 파도에 밀려 모래톱에 정착해 최후를 맞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파도에 밀려온 신발 한 짝”은 제 삶이 중심에 서 있다. 시에서 말하는 이는 화자라고 표현하지만 제 글은 저의 유년기의 삶을 원망과 열등의식으로 끌어안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승화시켜 보고자 했다. 6,25전쟁 직후 태어난 우리가 전쟁이 핥고 간 상흔들과 척박함 속에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 지를 몇 해 전 베트남 여행을 가서야 상기할 수 있었다. 베트남 사파에서 겨울인데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있는 여자아이를 만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내 어릴 적 모습들, 농촌의 초가집, 단칸방에 옹기종기 온 식구 모여 살던 도시의 풍경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고 살았던 자책감에 어머니의 삶을, 고향의 모습들을 다시금 책을 통해 끌어내 보았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들에게 잠시나마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해 보게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모 세대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시를 통하여 알리고 싶었다. 힘은 들었지만 지금은 체험할 수 없는 아름다웠던 기억을 제 글로 인하여 꺼내 보고 책을 읽는 동안이나마 그 시절로 되돌아가 고향의 품에 안겨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 내가 마흔아홉엔 오십이라는 숫자가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였는데.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했는데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몰라도 돼’라는 말은 듣지 말자는 생각에 무턱대고 뛰어들었다. 낮에는 미용실을 하고 야간에 개인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림을 그리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다른 화우들에 비해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너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결핍을 채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첫 시집을 출판한 소감이 남다를 텐데?

- 첫 전시회를 앞둔 설렘, 첫 손녀를 만나러 갈 때의 설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기다릴 때의 설렘도 잊히지 않는 설렘이지만 첫 개인전 디피를 마치던 저녁 설렘과 부끄러움이 믹싱된 기분, 그런 거 같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늘 나를 다독이며 출판 과정을 마쳤는데 인쇄 승인을 하고나니 순간 엄습해 오는 두려움, 저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기차는 떠났고 종점에 도착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그저 설렘을 한 아름 안고 웃을 일만 있을 거라는 작은 소망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 시 창작 공부를 더 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시도 틈나는 대로 쓰고 그림도 그리며 노후를 즐겁게 엮어 볼 생각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또 기회가 온다면 “신발 한 짝 2” 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내게 주어질 시간이 많지는 않겠지만 감사하며 열심히 보람차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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