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아, 예양강(8)/옥봉과 예양강(4) 백호도 ‘부춘정의 용호(龍湖)’를 시(詩)로 증언
기획 - 아, 예양강(8)/옥봉과 예양강(4) 백호도 ‘부춘정의 용호(龍湖)’를 시(詩)로 증언
  • 김선욱
  • 승인 2023.06.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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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 백광훈의 절친 백호 임제도 부춘정, 용호(龍湖) 관련 시편 남겼다

김선욱/시인. 본지 편집인
▲부춘정 앞 예양강. 옥봉은 이 강을 용호(龍湖)라 불렀다.

 

 

 

 

 

 

 

 

 

 

 

 

 

▲부춘정 앞 예양강

 

<지난호>에 이어서

백호 임제도 부춘리 용호 시(詩) 써

이처럼 부춘리에 청영정이 있었고, 그 청영정 앞을 흐르는 강은 용호였음을 표현한 시인은, 계은 외에 백호 임제도 있었다.

옥봉은 백호 임제(1549~1587)의 12년 연하였지만, 같은 호남인으로(옥봉은 장흥 출신으로 영암서 살았고, 백호는 나주 출신이었다.) 연륜을 뛰어넘어 같이 소통하고 교유(交遊)하였다. 옥봉이 가장 스스럼없이 교유했던 이는 아마 백호 임제였을 것이다. 해남 지역에 전해오는 옥봉과 백호의 일화가 있다. 옥봉과 백호는 함께 조랑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국을 함께 유람하던 중 하루는 백호가 주인이 되어 말을 타면 옥봉이 마부가 되어 고삐를 잡고, 다음 날은 옥봉이 주인이 되고 임제는 마부가 되어 장난을 하면서 다녔다고 한다.

조선 최고의 호남아(好男兒)로 불리었고, 호방하고 활달한 성격이지만 벼슬도 부귀명리도 멀리하고 주색, 기방과 산수를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일세를 풍미했던 백호 임제. 옥봉이 가장 스스럼없이 교유했던 시인 중 한 사람이었던 사람은 아마 백호 임제였을 것이다.

백호가 무인년(戊寅年, 1578년) 2월에 제주도에서 나와 3월경 남원에 들렀을 때 옥봉은 손곡 이달과 함께 백호 임제와도 함께 교유한다. 백호‧옥봉‧이달 등이 함께 창수(唱酬-시나 문장을 지어 화답和答하는 일)하여 남긴 시들이 ‘남원에서 시를 주고받은 시 모음집’인 ‘용성창수집(龍城唱酬集)’이었다.

이 시 모음집 서문에서 백호는 “ …손명부(당시 남원부사)를 관아로 찾아가 뵙는데 옥봉 백광훈 창경과 손곡 이달이 나그네로 노닐고 있었다. …며칠을 머물러 노닐었다. 시를 읊다가 술을 마시는 등 진솔한 모임이 되었다, 광한루로 자리를 옮겼다 …옥봉의 아들 진남은 그 부친의 기풍이 있었다… 그 또한 기록 속에 있다. 歷拜孫明府 於牙門. 時玉峯白光勳彰卿, 蓀谷李達益之, 客遊在座. …留連數. 或詠或觴. …玉峯兒振南, 深有乃父. …”고 ‘용성창수집’을 소개했다.

이때 백호는 ‘따라짓다 –옥봉 백광훈 次-玉峯白光勳’이라는 시를 지었고 옥봉도 백호와 관련된 시 2수를 지었는데 그 시가 ‘광한루에서 백호 임자순의 운을 따라 짓다 廣寒樓-次白湖林子順’, ‘운을 따라 지어 임자순에게 주다 –그는 이때 탐라에서 돌아왔다 次贈林子順- 時歸自耽羅‘였다. (임자순林子順은 백호 임제의 자였다)

또 옥봉이 1582년에 작고하였을 때 당시 해남현감으로 있던 백호는 “근세의 재자를 논하자면 /그대가 무리에서 우뚝 빼어났었네 近代論才子, 徵君獨出群…”로 시작되는 ‘백옥봉 만사 自玉峯輓詞’)를 짓기도 하였다.

다음은 백호의 옥봉에 대한 시 ‘만사(輓詞)’이다.

백옥봉 만사 白玉峯 輓詞

근세의 재자(才子)를 논하자면 / 近代論才子

그대가 무리에서 우뚝 빼어났었네 / 徵君獨出羣

누구 있어 고조(古調)를 추구하리 / 有誰追古調。

다시는 그런 글 찾을 길이 없어라 / 無復覓遺文

옥수(玉樹)는 종내 황토로 돌아가니 / 玉樹終黃土

청산엔 단지 백운(白雲) 뿐이로세 / 靑山但白雲

오직 맑은 술이 남았기로 / 惟餘祭淸酒

외로운 무덤 앞에 쓸쓸히 뿌리오 / 寂莫瀉孤墳

-ⓒ『玉峯別集』/玉峯集後序/신호열‧임형택 외(『신편 백호전집 상』) 역

이 시는 『백호집』(‘辛巳年∼壬午年’)에 실린 시로, 『옥봉집』에서는 ‘별집 부록 만사’에 수록되어 있다. 백호의 옥봉에 대한 간절한 심사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옥봉을 잘 알았던 백호였다. 또 장흥을 수차 찾기도 했던 백호는 옥봉 관련의 시 외에도 ①‘읍청정 주인에게 주다 贈挹淸亭主人’ ②‘청영정 淸瑛亭’ ③‘용호 청영정 龍湖淸暎亭’ ④‘가지사 迦智寺’ ⑤‘관수정 주인에게 贈觀水亭主人’ 등 장흥에 관한 시 5수를 남겼다.

백호의 ‘용호’의 시

백호의 ‘청영정’ 관련의 시에 앞서 ①‘읍청정 주인…’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읍청정’은 바로 문희개의 숙부요, 문위천의 아우인 문위지(文緯地)가 청영정 건너편에 세운 정자였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옥봉이 살았던 당대 부산면에는 부춘리가 있었고 옥봉의 당대에 부춘리 일대에 살았던 남평 문씨 3형제가 성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위천(1529~1573), 문위지(文緯地, 1532~1610), 문위세(1534~1600)가 바로 그 3형제였다.

이들 3형제는 당대 부산면 부춘리 일대에 정자며 서실을 세웠다고 한다. (『풍암 문위세 유고집 3권』). 장남 문위천은 부춘리 지금의 부춘정 자리에 청영정(淸潁亭-옥봉의 시, 장흥읍지 등에 나오는 淸暎亭의 처음 이름은 淸潁亭이었다고 한다.)을 세웠고, 차남 문위지는 청영정 맞은편에 자신의 호를 딴 읍청정(浥淸亭)을 세웠으며, 삼남 문위세는 부춘리에서 31세 된던 해인 1565년 풍산 마을로 분가한 뒤 그곳에서 풍암서실(風巖書室)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의 일부를 증언해주고 있는 시가 바로 백호의 ‘읍청정 주인에게 주다… 贈挹淸亭主人…’이다. 이 시 부제에는 “읍청정이 청영(淸暎=淸暎亭) 주인의 아우 문만호다”고 명기하였다.(문위지는 무반 출신이어서 만호로도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①‘읍청정 주인에게 주다-청영정 주인 문만호(문위천)의 아우(문위지)다 贈挹淸亭主人-乃淸暎主人弟文萬戶也’

궁마로 변방 요새로 나갈 생각 끝이 없고 / 弓馬無心出塞垣

형제간 이웃하여 살아가길 즐긴다오 / 弟兄聊與樂俱存

푸르름이 주렴으로 가로막힌 동서편 언덕에 /碧闌珠箔東西岸

차가운 바위(한암)랑 푸른 대(취죽)는 위아래 마을 / 翠竹寒巖上下村

반세상 숨은 기약 물새들 노는 이곳인데 / 半世幽期鷗鷺渚

온 강의 맑은 흥취는 척령의 언덕일래 / 一江淸興鶺鴒原

다른 날 이 정자에서 하룻밤 묵게 되면 / 他時倘借高亭宿

온갖 시름 털어놓고 술동이를 비우리 / 說盡閑愁倒玉尊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林白湖集卷之三/七言近體/1990/신호열 등 역

*한새塞垣 : 변방의 성채.

*취죽한암翠竹寒巖 : 형제를 말함

*척령원鶺鴒原 : 척령鶺鴒은 새의 일종. 할미새. 형제의 정을 비유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상체(常棣)』에 “할미새가 언덕에 나니 형제의 위급을 구원한다 裴令在原 兄弟急難”하였다.

이 시에서 시인은 문위천과 문위지(취죽과 한암)가 사이좋게 위아래 마을에 살며 동서(東西) 언덕에 정자(청영정과 읍청정)를 세우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척령원처럼 이들의 우애가 깊다는 의미를 시에 담았고, 다른 날 찾게 되면 술동이를 비우겠다며, 읍청정 주인 문위지에게 시를 헌사하였다. (문위세는 백호의 15세 연하로, 백호가 부춘리에 들렀을 때 참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호는 문위지에게 읍청정 관련 시를 작시해 주었고, 그의 형인 문위천과 관련해서는 ‘청영정’의 시 2수를 작시했다. 그 시가 ‘청영정 淸瑛亭’, ‘용호의 청영정 龍湖淸暎亭’이다.

시 ‘청영정 淸瑛亭’의 ‘청영정’은 읍청정 건너편에 있었던, 옥봉도 작시했던 그 청영정이었다. 백호가 읍청정 주인 문위지에게 주는 시로 읍청전 관련의 시를 써 주었으니, 문위천과 관련된 부춘리 청영정에 대해서도 당연히 썼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②‘청영정 淸瑛亭’

난간에 소나무 서늘해라 달빛마저 가을인양 / 松檻微涼月似秋。

이 정자에 5년 만에 다시 올라 한가롭게 노니누나 / 五年重作此間遊。

그날 눈 내린 후 마을 서편 길로 들어가 / 憶曾雪後溪西路

홀로 매화를 찾아 실개천을 넘어갔지 獨訪梅花過小洲。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林白湖集卷之三/七言絶句/1990/신호열 외 역

시인은 이 시 2구에서 이 정자(청영정)를 5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청영정’이라는 시제임에도 그 시제 외에는 부춘리 등과 관련된 시어의 표현은 없다. 다만 시 3,4 구의 “그날 눈 내린 후 시내 서쪽 길로 들어가 / 홀로 매화를 찾아 실개천을 넘어갔지 憶曾雪後溪西路. 獨訪梅花過小洲”라고 회고하는 부문에서, 한양 쯤에서 부춘리의 눈 속의 기막힌 매화 풍경을 기억하던 옥봉의 시 ‘김계의와 함께 용호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與金季義 話龍湖…’를 떠 올리게 된다.

③‘용호의 청영정 龍湖淸暎亭’

(1)

겨울 매화 한 가지 꺾어들고 / 手折寒梅花一枝,

좋은 자리 동이 술로 새 친구와 즐기노라 / 綺筵尊酒樂新知。

거문고 노래 어울려 잠긴 용도 춤을 추고 / 絃歌激噪潛蛟舞,

주렴이 높고 맑아지는 해 더디구나 / 簾幕淸高落日遲。

먼 산에 안개 걷히자 옥빛처럼 푸르고 / 遠嶂煙銷靑琬琰,

맑은 못에 바람 자니 벽(碧) 유리 그대로다 만澄潭風靜碧瑠璃。

안타까울손 짧은 그늘 싸락눈을 빚어 / 却恨輕陰釀小雪,

난간에 밝은 달은 좋은 기약 저버렸네 / 玉闌明月負佳期。

(2)

섣달 지난 용호(龍湖)에 객의 말이 머무르니 / 臘盡龍湖住客鞭。

엄뢰에 얼음 녹아 푸른 물결 느릿느릿 / 凍銷嚴瀨碧漫漫。

요포(瑤圃)라 삼천리에 두루미 날아오고 / 鶴來瑤圃三千里。

경루(瓊樓)라 열두 난간 사람들 앉아 노닐구나 / 人倚瓊樓十二闌。

은촛불 이울어라 긴 밤도 반이 지나 / 銀燭欲殘長夜半。

옥통소 맑은 소리 온 하늘 차가우이 / 玉簫淸囀一天寒。

연화(煙花)에 월정(月艇)이라 봄이 응당 좋으리 / 煙花月艇春應好。

꿈은 갈매기 따라 물굽이를 넘어간다 /逐沙過別灣。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林白湖集卷之三/七言近體/1990/신호열 외 역

*요포(瑤圃) : 아름다운 동산, 즉 신선이 사는 곳 의미.

*경루(瓊樓) : 상상 속의 화려한 건물. 또는 화려하게 꾸민 술집 의미. 이백의 ‘少年子’라는 시에 …‘金丸落飛鳥 夜入瓊樓臥-금 탄환으로 나는 새 떨어뜨리고 밤이면 옥루대에 들어가 잔다.’라고 하였다.

*연화 : 봄에 피는 꽃, 곧 봄꽃을 의미. 두보의 시 ‘상춘오수(傷春五首)’에 “관새(關塞·변방 요새) 삼천리에는 關塞三千里/ 연화가 일만 겹으로 피었네 花一萬重”라고 니온다

* 월정(月艇) : 달과 거룻배. 퇴계 이황의 ‘도산잡영 26절 陶山雜詠 二十六絶’에 “12. 월정月艇 : 하나의 잎 같은 작은 배 一葉小艇/ 풍월을 가득 실었구나 滿載風月…”.라는 ‘월정(月艇)’의 시가 아온다

옥봉과는 몇 날 며칠을 전국을 함께 유람하기도 하였을 백호였으므로, 옥봉으로부터 장흥 부춘리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못 들었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백호는 이 시에서 보다 확실하게 용호, 청영정, 부춘리의 우의적 이미지를 보다 확실한 이미지로 탄생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예 시제부터 ‘용호의 청영정’으로 정하면서, ‘용호=청영정’으로 확실히 표현하여 용호에 대한 마치 옥봉 시의 그 모호성을 불식시키려고 하였는지도.

어쨌든 백호는 이 시 (1)의 3구 “잠긴 용(蛟=교룡)도 춤을 추고 潛蛟舞”에서 청영정 앞 물속에 잠긴 용암을 표현한 데 이어, (2)의 1,2구 “섣달 지난 용호에 객(客)의 말이 머무르니 / 엄뢰(嚴瀨)에 얼음 녹아 푸른 물결 느릿느릿 臘盡龍湖住客鞭。凍銷嚴瀨碧漫漫”이라는 대목에서는 용호(龍湖)며 부춘리를 상징하는 엄뢰(嚴瀨)까지 끌어들였던 것이다.

부춘리라는 지명을 칠리탄(七里灘), 동강(桐江) 등과 연결시킨 것은 1714년 『장흥읍지』 부산방 편에서였다. 그리고 1714년 이전의 여러 시편에서 부춘정과 연관된 시로서 엄뢰나 동강의 시어가 나오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부춘리를 엄뢰와 결부시킨 이는 아마 백호의 이 시가 최초였을 것이다. (당대 옥봉이나 계은의 부춘리와 관련된 시에서도 엄뢰며, 동강 등의 시어나 이미지와는 연결되지는 않았다. 옥봉도 시 ‘부춘 별장에서 富春別墅’의 시에서 처음으로 부춘리를 의미하는 지명으로서 ‘부춘’을 표현하였지만, 그 부춘을 엄뢰의 의미 등과는 연결 짓지는 않았다.)

그러한 이유 등으로 혹자는 백호가 ‘청영정’ 시와 달리 ‘용호 청영정’ 시제로 구분한 것은 여기서의 청영정은 서울 한강의 용호의 청영정이었을 것으로 해석하고, 엄뢰 역시 단순히 ‘은자가 사는 물가’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또 요포(瑤圃), ‘경루(瓊樓)’ ‘열두 난간’ ‘은촛불’‘옥통소’ 등의 시어가 화려한 정자를 의미하므로, 부춘리 청영정과는 상치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시인의 ‘이미지의 상상력’이나 우의(寓意)의 표현을 무시한 해석에 불과하다. 시인은 초라하고 담박한 정자에서 얼마든지 열두 난간쯤의 화려하게 치장한 한양 등지의 정자를 상상하고 그것을 이미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시 역시 ‘용호’와 ‘청영정’을 연결시킨, 장흥의 용호와 청영정의 시였다고 봐야 타당하다. 특히 ‘용호 청영정’이라는 시제가 그렇고, 시에서 사용한 물에 잠긴 용(용암), 용호, 엄뢰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특히 이 엄뢰의 시어 역시 단수한 은거처로의 의미가 아니라 엄뢰로 상징되는 장흥 부산면의 부춘리를 의미한 것이 틀림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 시제의 ‘용호 청영정’을 한강의 용산 쪽의 용호로 해석하기는 더욱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엄뢰를 단순히 ‘은거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하여도, 그 은거처를 서울에 있는 용산강으로 표현하는 시인이 과연 있겠는가. 그러므로 설혹 ‘엄뢰=은거처’로 이해한다고 하여도 그 은거처의 강은 한양 중심부인 한강이 아닌, ‘벽촌의 장흥 부춘리의 예양강’, 곧 ‘부춘리의 용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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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함께 광한루 시회에서 힘께 수창한 이로는 옥봉, 백호 임제, 소곡 이달, 남원부사 양대박 등이었고 이들의 수창한 시들이 용성창수집(龍城唱酬集)’이란 이름으로 묶여져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때의 용성창수집(龍城唱唱集)’의 백호의 서문이며 시편 등 일부가 백호의 시집에도 전한다.(신편 백호전집-, 284-302.)

2) 伽智寺 : 第一䕺林伽智寺紅塵不到綠蘿天仙翁夢斷靑溪月詞客寒尋玉洞煙香火尙留三寶殿風雷傳說九龍淵赤燈夜打空門話鍾梵聲中未得眠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林白湖集卷之三/七言近體/1990

3) 관수정(觀水亭) 주인은 장동면 밤실 마을의 송정 김경추(松汀 金景秋,15191612)를 말한다. 송정은 처사였으나, 학문을 깊이 연구였고, 과거에서 향시에 9번 합격하였으나 부모를 모시느라 벼슬을 그만두고 위기지학에 전념하면서 은거하였다. 관수정은 그의 강학 터였다. 유집이 있어 송정선생유집(松汀先生遺集1938년에 간행되었다. 그가 교우한 벗으로는 백호 임제를 비롯 청련 이후백(靑蓮 李後白,1520~1578),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죽천 박광전(竹泉 朴光前), 반곡 정경달(盤谷 鄭景達, 1542~?), 청련 이후백(靑蓮 李後白, 1520~1578) 등이었다.

4) 贈觀水亭主人 : 夫君蕭洒謝時譽長澤橋邊有弊廬三尺素琴元亮調一床黃卷馬卿書煙深堤柳閑來釣雨細園蔬手自鋤慙愧吾人逐名利白湖孤艇夢歸踈-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林白湖集卷之三/七言近體/1990

5) 장흥문화원, 2023, 탐진강변의 정자, ‘부춘정’, p50

6) ‘읍청정(挹淸亭)’의 관련 시는 문위지 대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후, 장흥 출신 문인으로 시 300여 수를 남긴 장흥 출신 장육재 문덕구(藏六齋 文德龜,1667~1718)의 유고 문집 장육재유고(藏六齋遺稿)에서도 나온다. 여기서 문덕구는 청영정 취한 뒤 문천두와 운자를 부르다 淸暎亭醉後興文天斗氏呼韻읍청전 옛터 挹淸亭 遺址라는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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