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물/ 성암 김재계(하)-= 멸왜기도운동 고문 휴유증으로 55세로 순도
■근대인물/ 성암 김재계(하)-= 멸왜기도운동 고문 휴유증으로 55세로 순도
  • 김선욱
  • 승인 2018.11.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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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동학농민운동가-성암, 부친 영향·지원받아 독립운동가 입지


생가 농기계 창고 –생가 일원 복원, 선생의 문집 발간해야 한다

■성암의 말년

김재계 선생은 1938년 6월경 고향 덕도 신상으로 돌아와 휴양하면서 1년여를 보냈다.

강진군 대구면 동학교도 김황순 씨의 증언(육필수기)에 의하면, 성암은 고향으로 내려온 후 문을 잠그고 누구의 방문도 받지 않고 모친 외에는 아무도 출입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보기 싫은 사람이 보일까봐서”였다고 한다. 강진의 양해선이 위문을 가 “어찌 지내십니까”하니 “나는 사람을 잘못 만나서 죽게 되었네”라고 대답했는데, 성암의 몸이 금방이라고 헐어질 것 같았다고 한다.

그 후 춘암 박인호로부터 상경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정신이 좀 더 나아졌다고 한다. 상경하여 춘암을 만났는데 춘암은 “자네하고 나하고는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간다고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이네”하였다고 한다.

고향에서 1년간 휴양하면서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른 데다 춘암을 만난 후 선생은 건강이 좀 호전되고,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 선생은 53세 때인 1940년 3월 13일 막내딸 출산의 기쁨도 맛본다. 건강도 어느 정도 호전 된 데다 막내딸 출산의 기쁨을 본 선생은 춘암과 더불어 다시 운동을 재개하려고 하였으나, 1940년 4월 3일 춘암 박인호가 향년 86세로 순도한다.

춘암이 환원(還元)한 후 성암도 다시 고문 후유증이 발병하여 1942년 6월 27일 서울 중구 옥인동의 조그마한 골방에서 향년 55세로 순도한다.

장례 후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50년대 고향인 신상리로 후손들에 의해 이장되었다.

이후 1978년 4월 22일 장흥군민들이 선생의 독립운동을 높이 기리기 위해 당시 장흥교육청 소관 억불산장 식물원이 있던 현재의 장소로 이장하였다.

성암은 1976년 독립유공자 대통령 포장을 받으며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1991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아 독립운동에 대한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다.

■ 성암의 부친 김규현-동학농민 운동가

성암의 독림운동은 부친인 김규현시로부터 비롯되었다.

성암은 1888년 4월 25일 부친 김규현과 노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모친 노씨가 성암을 잉태할 때 부엌에서 죽순이 자라나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중간에 뚝 끊어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그 후 성암을 출산하던 날 서기가 용암산을 덮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김규현씨 증언)

성암의 부친 김규현씨도 실은 즉 동학농민군이었다. 동학농민군으로 참전할 때 당시 7세였던 성암은 직접 부친을 따라다니며 동학농민군의 활약상을 목격하기도 하였는데, 김규현씨는 천도교인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 시 석대전투에 직접 참전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향토사학자 위의환이 2018년 4월 22일 천도교장흥교당에서 개최된 ‘2018 년 성암 김재계와 장흥동학 학술제’에서 발표한 글 중 김규현씨에 대한 일부 내용이다)

김규현은 1863 3월 14일 부친 상석(相碩)과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32살 때 동학혁명 전선에 참여하였고, 1906년 천도교 장흥군교구가 공식 출범할 때 그의 나이 44세로 천도교 장흥교구에 참여하여 중요 직책을 충분히 맡을 수 있었지만 당시 19살인 그의 아들 김재계가 교구의 교훈(敎訓)으로 참여하게 하고 그는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김규현씨가 기록에 등장한 것은 1918년 ‘천도교장흥군교구사’로(당시 56세), 천도교구신축 공사 때 건립자금을 낸 연조인(捐助人)으로서다.

이후 김규현은 장흥천도교인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다음 기록들이 이를 증명한다.

즉 김규현씨 기록으로 ▲1923년(61세) 장흥, 강진, 완도 3군이 통합된 종리원이 관내에서 천도교 공로자 111명의 상훈 수여자 중 1인으로 기록 ▲1926년(64세) 은동장 모금운동 때 은동장 모금자로 참여 기록((이때 김규현은 본인은 물론 둘째아들 셋째아들까지, 동생 양현의 아들 두종(斗宗)도 은동장 모금에 참여시켰다) ▲1927년(65세) 3월 22일 천도교로부터 당암(塘菴)이라는 도호를 받을 때 기록 ▲1929년(67세) 천도교 전남 서쪽지역을 대표하는 서(西)대표위원으로 선출된 기록 ▲1931년(69세) 장흥 천도교에서 법문(法文)이 있을 때 참석자 기록 ▲1934년(72세) 4월 5일 장흥 천도교 포상자 명단 출전 기록, 동일 천도교 건설록 간행준비위원 선정 ▲1934년 8월 12일 포상장 명단 기록▲1939년(77세) 7월 27일 법도사(法道師) 추대 명단 기록 등이다.

김규현은 아들 성암이 순도한 지 2년 후인 1944년 4월 5일 별세하였다.

현재 생존해 있는 관산읍 외동리 거주 김규현의 손자 김윤호(金潤鎬 : 현 77세)씨가 ‘동학농민혁명참여자 유족신청’에서 김규현(호적명 김태삼金太三)을 신청, 동학혁명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혹자는 김규현의 당시 연륜이나 활동상으로 보아 천도교 장흥교구에서 교구장을 했어도 몇 번은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일체의 임원을 맡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자리나 권위를 대신 아들인 김재계로 하여금 맞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이처럼 김규현의 일제 강점기시절 청도교인으로 활동과 독림운동의 참여도 확실히 공인되고 있는 바, 성암의 천도교인으로 독립운동은 부친 김규현으로부로 큰 영향과 음양으로 큰 지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4월 22일, 성암 김재계선생의 환원(還元) 76주년을 맞아 그의 행적과 사상, 최근 조사된 장흥 지역의 동학과 천도교의 문화유산을 주제로 ‘2018년 성암김재계와 장흥 동학’ 학회가열렸다. 또 2018년 4월 27일에는 억불산 기슭의 성암선생의 묘소 앞에서 김재계 선생의 추념식이 개최된 바 있었다.

■성암공 생가 복원, 선생의 문집 발간해야

이처럼 최근 들어 성암 선생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면서 성암의 독립정신에 대한 조명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는 점과 관련,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선양사업으로 절실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다.

첫째, 장흥군의 대표인 독립투사요, 항일운동가인 김재계 선생 생가의 복원사업이 여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성암공의 생가는 회진면 신상리 205번지다. 이곳은 동학혁명군 김규현, 독립운동가 김재계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지금은 농기계 창고로 쓰이고 있다.

선생의 생가 신상리 205번 지 옆 206번지는 김규현의 어머니이자 김재계 선생의 할머니와 조카 김재진(金在辰)이 살았던 곳이고 205번지와 206번지 바로 뒤 대밭(산 60번지)은 덕도 독립운동의 산실인 기도소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덕도에 천도교 교리강습소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훗날 덕도 명덕초등학교의 전신이 된 사설강습소와 양영학원이 시작된 곳이다.

성암 생가 일원 모두를 매입하여 선생의 생가 복원은 물론 기도소, 망루 등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의 생가인 205번지 바로 영 204번지는 한승원 생가로, 지금은 복원이 된 상태이므로, 김재계선생 생가 복원으로 한승원 생가와 연결된 역사 탐방코스로 관광자원화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성암공의 독립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으로 선생이 생전에 <천도교회월보>에 게재한 모든 글(200자 원고지 1,600매 정도 분량)을 책자로 발간, 선생의 독립정신과 업적을 기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암 김재계는 항일투사요, 독립운동가로 분명히, 이론의 여지없이, 장흥군의 근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가장 큰 족적을 남겼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분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고 버려져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단순히 성암을 천도교인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보여준 독립투사로서 보여준 행적은 종교를 초월, 참으로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업적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그분의 사상과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문집을 발간, 군민 모두 그분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김재계 선생의 생가-지금은 농기계 창고로 변해 있다(사진 이의환). 왼쪽은 소설가 한승원 생가로 장흥군에서 잘 정비해 놓았다.
김재계 선생의 생가-지금은 농기계 창고로 변해 있다(사진 이의환). 왼쪽은 소설가 한승원 생가로 장흥군에서 잘 정비해 놓았다.
2018년 4월 27일, 김재계 선생 묘소 앞에서 추도식
2018년 4월 22일, ‘2018년 성암김재계와 장흥 동학’ 학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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