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옥봉의 아름다운 동행(1)
사설 - 옥봉의 아름다운 동행(1)
  • 김선욱
  • 승인 2023.06.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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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옆으로 비끼고 반달도 밝으니 銀漢橫斜月漸彎 / 이 좋은 밤 한 쌍의 견우직녀 마음껏 즐기리 良宵靈匹正成歡 / 여보게 어여쁜 아가씨 하나 불러 주게나 憑君要喚娥眉艶 / 하늘이나 인간이나 쾌락은 일반이라오 天上人間樂一般” (『東國李相國全集』卷第十三)

상기 시는 고려조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의 “칠월 칠석에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七夕飮友人家”라는 시다.

음력 7월 7일 밤 칠석절, 해마다 이날이면 은하수 동쪽에 있는 목동인 견우(牽牛)와 은하수 서쪽에 있는 옥황상제의 딸 직녀(織女)라는 두 별(천문학상으로 견우성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성은 거문고자리의 베가Wega 별이다)은 이날 밤에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난다는 전설이 있다. 오작교는 칠석날 밤에 견우와 직녀 두 별을 서로 만나주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은하(銀河)에 놓는 다리를 말한다. 이들 부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가 가로놓여 있어 애만 태운다는 사연을 전해들은 까마귀와 까치들이 해마다 칠석날이면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데 그것이 곧 오작교(烏鵲橋)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견우와 직녀의 전설은 두 연인 간의 가장 아름다운 전설 중의 하나이다. 이런 전설을 차용한 시가 있다. 그것도 남녀 사이의 애타는 사랑과 연관된 시도 아니다. 남자 친구 간의 우의(友誼)의 깊이를 담은 시에 차용한 시(詩)여서 더욱 이채롭고 놀랍다.

옥봉은 그의 행실이며 삶의 흔적이 전기(傳記) 등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가 남긴 시를 통해 진실한 우의를 가진 사람들과 당대에 아름다운 삶의 동행을 실현한 서정시인이었다.

낯선 객지에서 평생토록 고단하고 힘든 삶을 영위하였던 옥봉은 현실이 버거운 만큼, 주위의 수많은 인연들, 시(詩)를 통해서나 삶의 노정에서 만나고 맺어진 인연들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그 인연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절친으로 또는 성실한 지기(知己)로 나아가 삶의 진실한 동반자요 동행자로서 자기가 만나고 있는 버겁고 고단한 삶을 이겨냈던 보기드믄 시인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계의 김종호(季義 金從虎,1537∼?)와 삶의 끈끈한 유대였다. 이들의 우의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옥봉의 ‘인연(因緣)의 진지한 삶’의 정도를 능히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계의(季義)는 김종호는 옥봉과는 동갑으로 당대 거유였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둘째 아들이었다. 부친의 음덕(蔭德)으로 창원에 있던 자여역(自如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고 하지만, 일설에는 자여역 찰방에 제수되긴 하였으나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서 아들 중 가장 기재가 뛰어났다고 하며 하서의 후손이며 문중이 계의와 그의 자손들에 의해 빛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서(河西)가 누구였는가. 조선조 전기, 사림(士林) 정치가 부침을 거듭하던 중종·명종 대에 전라도 장성 출신의 사림의 영수로 큰 명성을 얻었고 정조대에 이르러서 호남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문묘에까지 종향된, 조선시대 호남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이러한 부친의 영향력으로 찰방을 제수받기는 하였지만, 한양의 대단한 명숙도 고관 출신의 명사도 아니고 더구나 시문집을 남길 정도로 시를 쓰는 유명한 시인도 아니었다. 그저 별 볼 일 없는 고관 자식의 평범한, 한량 같은 백수의 선비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옥봉과 계의의 우의(友誼)는 아주 돈독하였다. 옥봉의 시에 계의와 관련한 시가 4수가 나오고, 그 시 내용도 절실한 우의를 담고 있음이 이를 증거한다.

① ‘김계의와 작별하며-그의 선친 하서집을 나에게 가려 뽑아 맞춰주기를 청했다 別金季義-以其先公河集 請余抄定’ ② ‘김계의와 함께 용호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다 與金季義 話龍湖之勝’ ③ ‘3월 그믐에 김계의와 작별하며 三月晦 別金季義-名從虎’) ④ ‘김계의를 위해서 칠석에 회포가 있어 짓다 爲金季義七夕有懷’ 등이 옥봉의 시에 나오는 김계의 관련의 시들이다.

이 시들은 하나같이 옥봉의 우의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게 하는 시들이다.

①의 시 1,2구에서 옥봉은 “서로 그리워 멀리서 꿈만 꾸다가 / 한 번 웃자 이별 시름 삭여졌네 相思空遠夢 一笑却離愁”하며 옥봉이 두 사람의 우의를 마치 남녀 연인의 애정처럼 표현, 새삼 두 사람간의 깊은 우의를 유추하게 해 준다.

②의 시에서 옥봉은 김계의에게 고향의 용촌마을(장흥 부산면 부춘리)의 기막힌 겨울 풍경, 즉 하얀 눈 속에 지천으로 피어난 매화꽃의 절경을 자랑스럽게 말해준다. 이 시 속의 두 사람간의 담소하는 장면이 눈앞에 선히 그려질 정도이다. 이는 옥봉이 아름다운 제 고향(장흥)에 대한 그리운 추억담을 이야기해 줄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부담없는 절친이었음을 말해준다.

③의 시 3,4구에서 옥봉은 김계의와의 이별을 버드나무 꽃의 낙화와 어지러운 바람에 비유, 역시 시인으로서 풍모를 내보인다. 이 비유를 통해 옥봉은 김계의와 이별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버들 꽃이 이별을 한탄하고 / 바람은 스스로 어지럽구나 楊花似別恨 風處自紛繽”고 표현하고 있다.

④의 시는 두 사람의 만남을 마치 연인간의 애타는, 칠석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오작교에서 만나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런데 그 만남 자체가 여간 여의치 않다. 김계의가 한양에서 옥봉을 만나러 오는 길이 ‘(남도)의 아득한 산골짜기(옥봉의 집)이고 그것도 멈추지 않은 우중(雨中)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계의가 옥봉을 찾아온다. 이를 시에서는 은하수 동쪽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시 1구에서 “산골짝 길 아득하고 비는 좀처럼 개지 않아도 峽路迢迢雨未開”라고 표현하고 3,4구에서는 “고운 기약(1년에 한 번씩 재회하는 기약) 그 누구가 하동(은하 동쪽=김계의) 여인 같겠는가 / 해마다 등지지 않고 한 번씩 찾아오니! 佳期誰似河東女 不負年年一度來”라고 읊으며,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우의(寓意)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옥봉은 김계의와의 우정을 견우직녀로 표현했다. 1년 동안 간절히 그리워하여 칠석날에야 간신히 만나는 남녀사이의 그 애달프고 안타까운 사랑 못지않은 우의를 표현한 것이다.

당대 사회에서의 문명(文名) 있는 거유나 석학이나 명사나 고급 관리도 아닌, 한낱 지금으로 말하자면 ‘백수건달’ 쯤 되는 김계의와의 우정도 그렇게 진실하고 절실하게 대하였던 옥봉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옥봉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동행(同行)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기에 그는 고단하고 궁핍스럽고 고독한 해남에서의 객지생활을 이겨내며 시인으로서 찬란한 성취도 일굴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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