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아, 예양강(11)/옥봉과 예양강(7) - ‘용호’ 시어 차용한 시인은 옥봉 백광훈이 최초였다
■기획 - 아, 예양강(11)/옥봉과 예양강(7) - ‘용호’ 시어 차용한 시인은 옥봉 백광훈이 최초였다
  • 김선욱
  • 승인 2023.07.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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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 시인. 본지 편집인

“ 옥봉 때는 한강의 용호로 불러지지도 않았다

옥봉 당대의 어느 시인도 용호를 노래한 적이 없었다.

조선조에서 용호를 시어로 차용하여 노래한 시인은

옥봉 백광훈이 최초였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중심지 한강의 용호가 아니었다.

남도 끝자락 예양강을 용호로 시화시켰던 것이다.

옥봉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지난 호에 이어>

한양의 ‘용호=용산의 강’으로 인식

옛날에 한강의 각 유역을 ‘호(湖)’라고 칭하였고 전 강역을 오호(五湖)로 칭하기도 하였다. 오호는 두모호(豆毛湖 : 지금의 팔당댐 부근 유역), 미호(渼湖 : 지금의 남양주 부근 유역), 동호(東湖 : 지금의 옥수동 부근 유역), 용산호(龍山湖 : 지금의 용산 부근 유역으로 용호龍湖 또는 남호南湖), 마호(麻湖 : 지금의 마포 부근 유역), 서호(西湖 : 지금의 마포에서 양화까지의 유역), 행호(杏湖 : 양천에서 행주까지의 유역) 등을 말한다.

대체적으로 한강의 이명인 오호를 비롯하여 서호, 동호, 남호 등에 대한 호칭은 이미 고려 말엽에서 조선조 초부터 불러온 명칭이었다.

오호에 관련된 시는 조선조 초기의 문인 성임(成任,1421~1484)의 시에 나온다. 즉 “ … 외로운 돛단배 하늘 저 끝에 가물가물/ 오호(五湖)의 연파(煙波)가 창주(滄洲) 신선 있는 곳에 잇닿았네. / 표연(飄然)한 이내 종적 어데다 비길꼬 / 흐르는 물 따라 정처 없이 가는 몸 갈매기와 같구나.孤帆隱映天盡頭,五湖煙浪連滄洲。飄然蹤跡何所似沿流無定同沙鷗。”(ⓒ신증동국여지승람/卷三/漢城府/제영)의 시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오호는 이로 보아 고려 말이나 초선 초기부터 불러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서호도 고려 말부터 불러온 한강의 서강(西江)의 이명이었다. 고려 말 이색(李穡)의 아버지로 ‘죽부인전’ 등을 저술하였던 가정 이곡(稼亭 李穀,1298∼1351)의 시문집 『가정집』(1364년 간행)에 시 ‘6월 15일에 서호(西湖)에서 노닐며 六月十五。遊西湖’가 나온다. 이미 서호(西湖)는 고려 말 때부터 불러졌음을 알 수 있다.

동호(東湖)도 조선 초기부터 나온다. “중종 31년 병신(1536)에 정부와 육조가 날마다 동호(東湖)에서 연회하였다”(『조선왕조실록』)라는 기사(記事) 등의 기록뿐만 아니라 옥봉과 동시대 시인이었던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1539∼1583)도 ‘동호에서 이런저런 시를 짓다 東湖雜詠’의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 또 『동국여지지』에서 조선 초기 문신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시를 소개하였다. 즉 “두모포(豆毛浦) 도성 동쪽 10리에 있다. 한수가 흐르는 물이 모여 호수를 이룬 것을 동호(東湖)라고 한다. 심수경(沈守慶)의 시에 ‘동호의 승경을 세상 사람이 다 아네.東湖勝槪世人知’라고 한 것이 바로 이곳이다. 이수포(二水浦)라고도 칭한다. 豆毛浦。在都城東十里。漢水有沱,渟匯成湖,謂之東湖。本朝沈守慶詩“東湖勝槪世人知”者卽此。又稱二水浦。”(ⓒ『동국여지지』/卷一/京都/ 산천)”라고 하였다.

남호(南湖 : 용산강)에 대한 시도 고려 말부터 등장한다. 즉 야은 길재(冶隱 吉再,1353~1419)가 남긴 『야은집(冶隱集』의 ‘무명씨의 오언고시 五言古詩 無名氏’라는 시에서 “남호 물에서 낚시를 하다 釣水向南湖”라는 시구가 표현되고 있어 남호(용산강) 역시 고려 말부터 불러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5호 중 시에서 주로 등장하는 ‘호’는 동호, 서호, 남호(용산호, 용호)였다. 지명성이 섞힌 동호나 서호, 남호 등과는 달리 ‘용호(龍湖)’로도 불리었던 용산호의 경우는 용호에 대한 이명(異名)의 호칭이 늦은 탓인지(1600년 이후), 이에 대한 시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용호가 용산의 강이라는 지명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그 호칭의 특이성 때문에 시인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보통은 한양 외의 다른 지역 이를테면 낙동강이나 영산강 등 지역의 강 중에서도 어떠한 지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강들에 대한 이명으로서 용호의 작시(作詩)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용호(龍湖)의 어휘 자체가 지니는 ‘용(龍)의 강’, ‘최상의 강’이라는 의미 외에도 그에 대한 나름의 우의(寓意)의 의미나 널리 알려진 용 관련의 민담·설화 등에 대한 정보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강의 용호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장흥의 예양강을 제외하면) 용호와 관련된 시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옥봉 이전에는 남호의 이명으로서 알려진 ‘한강 용호’의 시는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아마 당대에는 용산의 강이 남호로 불러지고 있었을 뿐 용호(龍湖)로는 옥봉 후대인 1600년 전후였다고 추측이 된다.

장유(張維,1587~1638)의 행장에서 그가 1613년에 용호(龍湖)가에 은거하였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또 옥봉 이후에 등장한 용산 용호의 시도 1600년 초반이었다. 즉 남봉 김치(南峯 金緻,1577~1625)의 ‘용호에서 龍湖’, ‘용호 10경 龍湖十景’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므로 옥봉 당대까지는 한강에서 서호, 동호, 남호로, 또는 한강을 오호로 불러지긴 하였으나, 용산의 남호를 용호로까지는 불러지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강의 이칭인 서호(西湖), 동호(東湖)의 승경 등을 노래한 시가 각각 200수 가량 있으며 한강·오호(五湖-한강을 달리 부르는 이칭)의 경우도 200여 수가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용산강(龍山江), 용호(龍湖), 남호(南湖)로 불러진 용산강(龍山江)에 대한 시(용산강, 남호, 용호 포함)도 200여 수가 된다.

그런데 ‘용산강’으로서 ‘용호’의 시는 100여 수에도 못 미친다. 이는 서호, 동호, 남호 등의 이칭이 고려조 말엽부터 불러져왔지만, 용산강의 용호의 경우 최초 1600여년 이후부터 불러져 온 그 시기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선조에서 용산강이었던 ‘용호’ 시 내용을 알아보자.(여기서 검토해 본 시문들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등에 등재된 모든 시문집을 기준으로 하였다)

용호 시 2편 이상의 시문들

‘용호’를 시제로 쓴 2수 이상의 시를 쓴 주요 시인과 그 시문들은 다음과 같다.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 (7수) ‘용호 침실에서 龍湖病枕’, ‘5월에 대간에게 탄핵 당하여 용호 시안정으로 피해 나가다 五月有臺參逬出龍湖之是岸亭’, ‘석우촌에서 용호로 방향을 바꾸다 自石隅。轉向龍湖’ ‘유하원(柳河源)의 관직 파면으로 용호로 몸을 숨기다 因柳河源事罷職。旋仍屛出龍湖請譴疏。丙辰’ 외 3수(시 3수는 시제가 너무 길어 생략한다)(『번암집』)

⬛김득신(金得臣,1604∼1684) : (5수) ‘용호에서 龍湖’, ‘또 용호에 갈 때 次往龍湖時’ ‘용호에 옮겨 살며 龍湖移居’ ‘용호에 있는 죽은 친구 집에 들렀다가 龍湖過亡友宅’ ‘잠자다 기러기 울어 용호에 갈 때 見宿雁詠 往龍湖時’(『백곡집』) ⬛강위(姜瑋,1820~1884) : (5수) ‘용호에 초암 박치한(蕉庵 朴致翰)이 방문하여 파초를 짓다 龍湖。訪朴蕉庵 致翰 賦芭蕉’ ‘옛날의 용호를 찾다 龍湖訪舊’, ‘용호를 생각하는 사람의 시를 뒤이어 짓다 龍湖續懷人詩’ 외 (『고환당수초』) ⬛조긍섭(深齋 曺兢燮,1873∼1933) : (3수) ‘용호 도중에 읊다 2수 龍湖道中 二首’, ‘용호에서 저물녘에 바라보다 장차 천령으로 가려고 하다 龍湖晩望 將之天嶺’(『巖棲集』) ▶김민택(金民澤,1678∼1722) : (3수) ‘용호를 떠나며 出龍湖. 龍湖에서 夢窩三世 遷葬의 喪行을 맞아 곡하다 龍湖迎哭夢窩三世遷葬喪行. 서울로부터 龍湖를 나와 自京出龍湖. 죽은 아내의 忌祭에 참여하며 爲參亡室忌祭。龍湖를 가다 往龍湖’(『죽헌집』) ⬛박윤묵(朴允默,1771~1849) : (3수) ‘눈이 온 뒤에 용호를 건너다 雪後過龍湖’, ‘다시 용호에서 운을 띄우다 再次龍湖寄示韵’,‘다시 용호 운을 빌려지어 부치니 운을 보시오 謹次龍湖寓居徐公 俊輔 寄示韵’(『존재집』)

⬛김민택(金民澤,1678∼1722) : (3수) ‘용호를 떠나며 出龍湖’ ‘용호에서 夢窩三世 遷葬의 喪行을 맞아 곡하다 龍湖迎哭夢窩三世遷葬喪行’, ‘서울서 용호를 나와 自京出龍湖’, ‘ 죽은 아내의 忌祭에 참여하며 용호에 가다 爲參亡室忌祭。往龍湖’(『죽헌집』) ⬛채팽윤(蔡彭胤,1669~1731) : (3수) ‘용호를 우연히 만나다 龍湖感遇’, ‘내일 다시 용호를 건넌다 明日復過龍湖’, ‘용호의 감격을 다시 능가하다 重過龍湖感遇’(『희암집』) ⬛이세귀(李世龜,1646∼ 1700) : (3수) ‘용호에서 龍湖’, ‘용호의 질펀한 풍치 龍湖漫景’. ‘용호의 壽 龍湖壽’(『양화집』) ▶이의현(李宜顯,1669∼1745) : (3수) ‘용호를 任生의 운을 빌려지어 부치니 운을 보시오 龍湖次任生 述 寄示韻 壬寅’, ‘대사헌 국포 조관빈(國甫 趙觀彬) 용호부터 방문하여 맡기다 趙都憲國甫 觀彬 自龍湖委訪’ ,‘ 선장의 묘문을 부탁하여 보이다. 또 一律을 주다. 그 운을 빌려짓다. 입춘 후 일일 용호를 김추사 학사가 방문하다 示先狀托墓文。且贈一律。次其韻. 立春後一日’(『도곡집』) ⬛김근행(金謹行, 1712∼?) : (3수) ‘용호의 배 안에서 龍湖舟中’, ‘용호의 달밤. 주인과 대화하며 당나라 고사를 듣다 龍湖月夜。與主人會話。聞唐使故事’, ‘임술년 가을 칠월 망일. 원령과 술부는 용호의 배에서 내려왔다 ….壬戌秋七月望日。聞元靈與述夫自龍湖舟下。抽淵集韵。以紀欣企’(『庸齋集』) ⬛정필달(鄭必達,1611∼1693) : (3수) ‘용호 12 시를 읊다 龍湖十二詠’, ‘용호를 지나며 過龍湖’ ‘용호 운의 爀을 朴啓晦이 빌려짓다 次朴啓晦 以爀 龍湖韻’(『팔송집』)

용호 관련 시 2수를 쓴 시인은 13명, 1수를 시인들은 30여 명에 이르러, 용산강의 용호 관련시는 100여 수에 이르고 있다.

역대 시인 중 ‘용호’ 차용은 옥봉이 최초

이처럼 용호의 시는 줄기차게 많은 시인들에 의해 구현되었다. 이는 너무나 당연힌 일이곘지만, 용호 시 내용을 봐서도 거의 같은 뜻이겠지만, 용호에 대한 어떤 우의 의미 같은 아니고, 단순히 용호가 동호 서호처럼 불리는 지명의 의미를 전제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 모든 시인 중에 옥봉 버금 갈 만큼 ‘용호’ 시를 많이 쓴 시인은 백곡 김득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용호 龍湖’는 용산에 있는 어느 정자에서 바라본 용산강(용호)의 모습을 그림처럼 잘 묘사한 시로 널리 회자되는 명시 중의 하나인데, 이 시 말고도 용호가 시제로 쓰인 시가 5수에 불과하지만, 그의 다른 시제의 시에서 ‘용호’ 시어가 표현되는 시가 10여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채재공도 ‘용호’ 시제의 시는 6수지만, 다른 시나 기문(記問) 등 5수에서 용호의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김득신이나 채제공의 경우처럼 용호시가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모두 한양의 시인이었기 때문이었고, 그들 당대에는 이미 용호에 관한 많은 시들이 작시된 상황이었던 데다, 여기에 더해 ‘용호는 곧 용산의 강’이라고 인식이 된 지명성까지 더해져 ‘용호’관련의 시를 부담없이 많이 작시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이처럼 서호, 동호, 남호에 등에는 미치지 못해도 수많은 시인들이 한강의 용호를 노래하였다. 그러므로 옥봉도 당연히 한강의 용호를 노래하였을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옥봉의 시를 역해한 분도 옥봉의 용호를 한강의 용호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옥봉 때는 한강의 용호로 불러지지 않았고, 옥봉 당대의 어느 시인도 용호를 노래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에 등재된 시문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므로 조선조에서 용호를 시어로 차용하여 노래한 시인은 옥봉이 최초였으며, 그것도 우리나라의 중심지 한강의 용호가 아닌 남도의 끝바락인 예양강을 용호로 시화시켰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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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오호(五湖)에 대해 무영자 윤기(無名子 尹愭,17411826)탁영정에 대한 기문 濯纓亭記에서 한강을 오호(五湖)’로 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한양성은 삼면이 모두 강이다. 맑은 강과 여울, 깨끗한 모래와 바위가 구불구불 이어져 곳곳마다 절경이다. 사대부들은 왕왕 강가에 정자나 누대를 지어 경치를 즐기곤 한다. 제일 서쪽에 두어 칸짜리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산수의 풍경이 동쪽ㆍ남쪽에 비해 특히 뛰어나다. 삼각산(三角山)과 와우산(臥牛山)이 뒤를 받쳐 주고 관악산(冠岳山)과 청계산(靑溪山)이 앞을 에워싸며 왼쪽으로는 오호(五湖-한강) 뛰어난 경치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두 줄기 강물의 기이한 모습이 한눈에 바라다. 천혜의 명승이다. 環漢陽城三面皆水也澄潭淸瀨明沙白石逶迤屈曲處處奇勝士大夫往往置亭臺供遊眺最西有數間一小亭山水風景比東南更絶三角卧牛鎭其後冠岳靑溪拱于前左控五湖之勝右攬二水之奇別於天作”(-無名子集 文稿册一//‘탁영정에 대한 기문 濯纓亭記에서).

2) 六月十五遊西湖: 舟人見客競來迎笑指荷花多處行此日泝流應更好夜來山雨水添生淸風不用

玉壺迎紅日如催畫舸行欲識西湖奇絶處夜深花睡暗香生龍舟幾向此中迎玉仗摐摐夾岸行但道

側金開梵刹誰知前席問蒼生小兒安可折腰迎高士多應掉臂行湖上秋來花易落人閒日出事還生

曉日舟人似喜迎晚來何事却催行人情利盡皆如此悵望西山暮靄生-한국문집총간/亭先生文集/卷之十六/律詩.

 

3) 東湖雜詠 : 入夜連檣宿大堤凌晨搖曵向巴西水村山店遙相望烟樹依微聽午鷄// 流澌淨盡水溶

二月風帆下峽中欲問舟人南郡事皆言來自廣陵東-한국문집총간/孤竹遺稿/七言絶句.

 

4) 讚詠諸詩 幷序 五言古詩 無名氏 : 溪流八九曲山木數千株足以供爐冶餘皆無所須勤勤非鑄物

汲汲豈趨途所期主明敎萬世爲鴻儒淸節映簡冊英風吹寰區採山登北嶺釣水向南湖床上有書籍架頭懸葫蘆身爲冶隱子心是一唐虞-한국문집총간/冶隱先生言行拾遺卷下/讚詠諸 詩 幷序.

5) 고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용산 한언국(韓彦國) 서재에서 유숙하다라는 시에서 두 물은 용용(溶溶)하게 흘러 제비 꼬리처럼 갈라졌는데 / 세 산은 아득하게 서서 자라 머리에 탔네.라는 시의 서()에 이르기를, “산봉우리가 굽이굽이 서려서[屈盤] 형상이 푸른 이무기 같은데 / 서재(書齋)가 바로 그 이마[]에 있으며 / 강물은 그 아래에 와서 나뉘어 두 갈래가 되고 / 강 밖에는 멀리 산이 있는데 바라보면 산자(山字) 같다.” 하였다. 高麗李仁老宿龍山韓彦國書齋二水溶溶分鷰尾三山杳杳駕鼇頭。…其序云峯巒屈盤狀若蒼蛇而書齋正據其額江流至其下分爲二派江外有遙岑望之如山字”(ⓒ『신증동국여지승람3/ 한성부(漢城府/산천)고 하였다. 이인로의 이 한상국의 용산 서재에서의 시 중 산봉우리가 굽이굽이 서려서 형상이 푸른 이무기 같은데라는 시구에서 용산(龍山)’의 유래가 기인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용산의 강을 줄여, 자연스럽게 용호(龍湖)’라는 이칭이 생겨났을 것이다.

6) 장유는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이다. 조선 후기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공신에 책봉되었다. 양명학자이며, 이정구(李廷龜) 등과 함께 조선시대 4대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행장에 계축년(1613)에 옥사(獄事)가 일어났을 때 공이 여러 이름 있는 공경(公卿)들과 함께 옥에 갇혔는데, 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조정에서 쫓겨나는 몸이 되어 용호(龍湖) 가에 은거하였다. 癸丑獄起公與諸名公卿同逮繫出獄猶被黜屛居龍湖之上”(계곡선생집16/행장(行狀) / ‘資憲大夫知敦寧府事兼知義禁府事趙公行狀에서)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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