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대대(待對)의 논리
특별기고 -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대대(待對)의 논리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7.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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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밀/한양대 연구교수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고전 용어이다. 오늘날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학계와 일반에서 공인된 용어로 쓰고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설명되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비슷한 의미로 쓰고 있지만, 온고지신이 새것을 아는 데[知新] 머물고 있다면 법고창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創新]는 데서 차이점을 찾는다.

법고창신이 유래한 「초정집서(楚亭集序)」 첫머리에서 연암은 당시 치열한 문학 논쟁이었던 법고와 창신의 폐해를 지적한다. 법고(法古)는 옛것을 본받아 쓰자는 것이고 창신(創新)은 새롭게 만들어 쓰자는 생각이다. 옛것을 숭상하는 생각을 지닌 문인들은 법고(法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로운 문예사조의 영향을 받은 문인들은 창신(創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암은 법고는 단순 모방과 답습의 병폐가 있고 창신은 허황되고 경박한 글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진실로 법고하되 변화를 알고 창신하되 법도에 맞는다면 지금 글도 고전의 글과 같다.[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今之文 猶古之文也]’고 말한다. 여기서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을 줄여 법고창신이란 용어가 나왔다.

나는 이 말뜻이 각자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 상대방의 장점을 수용하는 상생(相生)의 정신을 담은 용어라 본다. 법고는 창신의 장점인 변화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창신은 법고의 장점인 전아함의 미덕을 수용한다면 둘 다 고전이 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편을 배척하기보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어진 글에서 연암은 “우임금과 후직(后稷)과 안회는 그 도가 한 가지이니 편협함과 공손치 않음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우임금과 후직은 평화로운 시절에 직무에 충실하여 자기 집 문을 세 번 그냥 지나쳤다. 안회는 혼란한 시절에 궁핍하게 지내면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 우임금과 후직은 집밖에서 어진 정치를 했고 안회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집안에서 도를 닦았다. 전자와 후자는 분명 완전히 다른 행동을 취했지만 정사(政事)에 나아가면 백성을 구하고 물러나면 자신을 수양하는 도를 실천한 측면에서 보자면 같은 정신이다.

이와 비슷한 취지를 담은 뜻이 「의청소통소(擬請疏通疏)」에 나온다. 연암은 귀천의 차별을 두지 말고 서얼을 등용하자고 주장하는데, 옛 제도를 혁신하는 논의를 말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무릇 법은 오래가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고 일은 막히면 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준수(遵守)해야 할 때 준수하는 것도 성인을 계승하는 것이며 통변(通變)이 마땅한 때에 통변하는 것도 성인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굳게 지키거나[固執] 혁신하는 것[更張]은 오직 때[時]에 맞으면 그 의의는 한가지입니다.” 법고와 창신, 고집과 경장은 서로 대립하지만, 때에 맞게 하면 둘 다 옳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부정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는 대립하고 충돌하는 두 입장이 서로를 힘입어 발전을 도모하는 상생의 정신이다.

연암은 「홍범우익서(洪範羽翼序)」에서 상생(相生)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생한다는 것은 서로 자식과 어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힘입어서 살아가는 것이다.[故相生者 非相子母也 相資焉以生也]” 오행상생설에 따르면 나무는 불을 낳고 불은 흙을 낳는다. 곧 나무는 불의 어미가 되고 불은 나무의 자식이 된다. 그러나 연암은 불이 나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쇠와 돌이 부딪혀도 불을 일으키고 벼락이 쳐도 불을 일으키며 기름과 물이 서로 끓을 때도 불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상생은 어미와 자식 같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를 힘입어 살아가는 관계이다.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는 “말똥구리는 자신의 경단을 아껴 흑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흑룡 역시 자신에게 여의주가 있다고 해서 저 말똥구리의 경단을 비웃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말똥구리에겐 말똥이, 용에겐 여의주가 소중하듯이 각자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은유이다.

이런 면에서 법고창신은 동양의 전통적 관계를 표상하는 대대(待對)의 논리를 닮았다. 대대의 논리는 『주역(周易)』의 음양(陰陽) 관계를 일컫는다. 『주역』에서 음(陰)과 양(陽)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의존하고 감응하는데 이 논리가 대대(待對)이다. 대대(待對)는 마주하며 기다린다는 뜻이다. 대(待)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대립물이 맞서고 있는 것이고 대(對)는 둘이 상보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대대 관계에서는 대립하는 쌍이 적대적이지 않고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으며 대립을 통해 서로를 비추어주고 서로의 존재성을 확보해 준다. 곧 대대의 관계는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들이 서로 의존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을 내포한다. 서로 대립하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가듯이 법고는 창신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지극한 고전에 이르고 창신은 법고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지극한 고전에 이른다. 법고와 창신은 서로 대립하나 서로를 배척하지 않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상보적 관계라는 점에서 법고창신은 서구의 변증법적 지양이나 이분법 모순율보다는 동양의 대대의 논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법고창신은 고전에 대한 존중과 혁신에 대한 지지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입장이든 변화의 기미를 잘 포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때[時], 곧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롭게 바꾸어가는 정신이 중요하다. 연암은 이를 선변(善變)이라 부른다. 법고창신이 우리 사회와 문화를 변혁하고 중심과 주변을 아우르며 대화와 화해의 가치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정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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