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어머니 품 살아계실 때 감사하자
칼럼 - 어머니 품 살아계실 때 감사하자
  • 장흥투데이
  • 승인 2023.08.14 16: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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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 수필가

새벽의 미명 속에서 바스락대는 소리 들려온다. 조심스럽게 무엇을 뒤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구겨진 한지를 곱게 펴는 소리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 들키지 않게 가만가만 움직이는 소리, 소리로만 보면 잔잔한 음악 같지만 소리에 냄새가 섞여 있다. 아주 역한 냄새다.

어머님 기저귀가 젖은 모양이다. 벽을 바라보고 쭈구리고 앉아 혼자 기저귀를 가신다. 곁에 있는 칠순의 자식에게 부끄러웠을까? 몸에 베인 습관으로 벽을 향해 돌아앉으신 모습이다.

화장실에 갈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한 겨를도 없었으리라.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애써 누른 신음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온다.

그 뒷모습이, 그 소리가 서럽도록 쓸쓸하다.

벌써 수년째, 고관절 봉합수술 이후 망가진 삭신을 겨우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이미 나는 익숙해졌다. 한 평생 바느질로 골수를 문드러지게 해놓은 터에 헐어진 요실금으로 언제부터 기저귀를 차게 되었다.

어머니의 야윈 엉덩이를 본다. 관능이 떠나버린 한 여자의 엉덩이를 비로소 그림자로 만난다. 여자의 엉덩이가 성소라는 것을, 생명의 본향이라는 것을 아무 잡스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훅 꺼져버릴 것 같다. 풍만해서가 아니라 마른 나뭇가지처럼 뼈만 앙상해서 비로소 어머니를 온전하게 본다.

내가 거기서 왔다. 저 엉덩이가 나를 낳았다. 내 뒤로 여섯을 낳았다.

그 엉덩이를 팬티형 기저귀로 감싼다. 나에게 기저귀를 둘러주시던 때로부터 70여년 넘게 되었을 터이다. 곱게곱게 나에게 기저귀를 채워주시던 그 모습을 그려 본다.

이제 쭈그리고 앉아 아이에게 그러 하듯이 당신 에게 기저귀를 두룬다.아기처럼 조그맣다. 내게 어머니가 그러 하셨듯이 이제는 아이가 된 스스로에게 기저귀를 둘러주는 것이다.

마흔 고개에서 남편을 여의신 어머님의 삯바느질로 나는 내 젊음을 건너왔다.

긴 겨울밤 어린 자식들을 온돌방에 나란히 눕혀놓고 윗목에서 사륵사륵 바느질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자장가 였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시던 어머니, 밭을 매시는 어머니의 황토빛 적삼에 땀이 말라 하얗게 소금기가 맻힌 것도 나 어릴 적 많이 보았다.

나는 어머니 등에 구운 소금 닷 되를 빚졌다. 어머니 가신 다음 내 눈물 몇 말을 말려야 그 소금을 값을 수나 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그림자 진 뒷모습을 보면서 뒤늦게서야 깨달은 스스로를 책망한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자꾸 기저귀의 접착 부분을 놓친다. 서두를수록 몰입의 손길이 빗나간다. 다가가서 기저귀를 둘러드리고도 싶으나 나 그저 모른 체한다. 평소 정갈하고 결기 있는 어머니의 자존심은 아직 나의 갑작스런 도움을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을 것이다.

요양보호사 마저 돌려보낸 성정으로 보아 다른 누군가의 손길도 당신의 인격에 불명예이리라.

그런데도 어머니 항상 바쁘시다. 앉은뱅이 의자를 요리조리 비틀면서 텃밭 호미질에 등은 더욱 굽어지고, 정교한 바느질 솜씨로 가위질을 뽐내며 정원을 다듬고, 빨래 방망이 쥐듯 앙상한 손에 빗자루를 꽉 쥔 모습이 일상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험 하다고 한사코 만류하는 아들을 오히려 타이른다.

‘내 재미로 하는 거니 너는 가만히 보고만 있거라, 풀어보니 그럴듯하다’

허나 노인의 과로는 바로 보호, 간호의 주문이다.

어머니 입고 주무시던 바지까지 젖은 모양이다. 힘겨운 몸을 굴려 허둥지둥 바지를 갈아입으시더니 둘둘만 젖은 기저귀와 함께 바지를 움켜지고 힘들게 욕실로 가신다. 그러나 그 뿐 그 다음은 당신의 기력으로 남은 힘이 부족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힘겹게 몸을 누이신다, 잠이 드셨을까? 꿈을 꾸실까? 아이가 되는 꿈을 꾸셨으면 좋겠다, 내가 모시기에 훨씬 수월 할 테니까,

내가 욕실 한 구석에 가져다 놓은 어머니의 젖은 바지를 빤다.

알량한 효심을 보이려 한다고 누가 비웃더라도 흔쾌히 감수 하겠다.

오랫동안 이 약 저 약 드셔서 그런지 냄새가 역하기 그지없다.

빨래비누를 칠하고 하이타이 분말을 풀어 빨래판에 주물주물 그 옛날 어머니가 하던 방식대로 어머니의 바지를 빤다. 그래야만 송진 냄새가 산골의 향긋한 추억이듯 빨래하는 진 맛이 알싸하다. 덜커덩 거리는 세탁기 드럼의 조급함과 색감있는 고급 세제의 요염으론 정성이 부족하다.

70 여년 굽이굽이 속 썩인 불효도 함께 문질러 빤다.한 차례 내 스스로의 얄팍한 위안일지도 모른다.그 위선 까지도 함께 빤다

이제 어머니 100세 인생까지 남은 여생 불과 5~6년, 살아계시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모셔야 두고두고 덜 후회할텐 데 나이로 짐작 이미 45도 기울어진 내 한 몸 가축하기도 한 짐이라서 이마저 힘들고 바쁘기만 하다.

하물며 생명수 우물터 같은,맨발로 뛰 놀아도 아프지 않은 정겨운 고향의 품도 거역할 수 없는 눈에 담은 나의 뿌리 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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