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호 사설 - 장흥 인천이씨 文林 전통 위에 “금화 선생 『금화유고』 발굴”
제198호 사설 - 장흥 인천이씨 文林 전통 위에 “금화 선생 『금화유고』 발굴”
  • 김선욱
  • 승인 2023.08.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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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근대사, 생활문화 조명‧연구에 귀한 자산 — 국역화 발간 추진돼야 한다

요즘은 성씨의 본관을 그리 따지지는 않는다, 2,30년 전 ‘면지’를 만들면서 마을 별 성씨 조사때는 보통 장흥위씨, 밀양박씨 하고 본관을 구별해 적시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박씨, 김씨 하고 성씨만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에서는 혈족이며 성씨의 본향이 매우 중요시됐다. 우리가 보통 장흥을 ‘문림의향(文林義鄕)’이라 칭할 때 그 문림의향의 전통에서 ‘인천이씨 장흥파’의 존재는 전혀 무시 못 한다. 인천이씨 장흥파는 장흥의 역사적인 전통에서 가히 문(文)과 의(義)에 뚜렷이 빛나는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의향(義鄕)’의 전통에서 중요한 역사적 통과는 장흥의 동학혁명이었다. 장흥동학에서 인천이씨의 전통은 거의 독보적이라 할만 했다. 이방언(李邦彦), 이사경(李仕京)은 장흥동학을 대표한 지도자였으며 이인환(李仁煥), 이소사(李召史) 여사도 인천이씨로 알려져, 장흥동학은 가히 인천이씨가 주도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문림(文林)’의 전통에서도 장흥의 인천이씨(장흥파)는 무시 못 한다. 조선조 중후반기 때 장흥은 ‘장흥가단(長興歌壇)’이라고 부를 만큼 가사문학이 발흥된 고을이었다. 이들 가사작가 중 이상계(李商啓)·이중전(李中銓)은 인천이씨였고, 당대 저명한 시인 청강 이승(李昇)과 만수재 이민기(李敏琦)도 인천이씨였다. 이들 외에도 동곡 이복연(李復淵), 송파 이청흠(李淸欽) 등 30여 명의 선비들이 문집을 남겼다.

이러한 인천이씨의 문림의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세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점쳐지는 장흥출신 이승우 소설가를 비롯해 중견 시인인 이대흠, 이성관, 이한성, 이세규, 이승옥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가문도 인천이씨 장흥파였다.

지금의 시대와 달리 전 국민에게 공유된 현대와 같은 교육기관이나 교육 매체‧정보가 없던 당시에는 가승(家乘)이며 가학(家學)이 공부와 학문 연마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인물도 대(代)를 이어 배출되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학맥(學脈)이며 가학, 가승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었다.

인천이씨 장흥파의 경우, 문림(文林)과 의기(義氣)의 전통이 두고두고 전승될 수 있었던 동인(動因)도 기실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지 지난 7월 25일자 신문에서 용산면 금곡리 출신의 금화(金華) 이성호(李誠浩, 1873~1929) 선생의 문집인 『금화유고(金華遺稿)』 발굴 확인 소식을 전한 바 있었다.

특히 금화 선생의 유문집 『금화유고』는 이성호의 종손 이영채(인천이씨 37세)가 소장하고 있던 유문집으로, 종원간 협의를 통하여 문림의향의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큰 뜻에 동참하여 그 유문집 원고를 장흥으로 보내와 전격 공개하게 된 것이다.

금화 선생은 인천이씨 공도공파(14세) 후손이다. 선생의 조부는 남정 이중악(南亭 李重岳, 1829~1872)으로 노사 기정진(奇正鎭) 문하이다. 부친은 소곡 이휴석(小谷 李休錫, 1848~1904)이다.

금화의 자는 윤명(允明), 호는 금화(金華)이며 당시 장흥부 남면 금곡리(현 용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성품과 도량이 정직하고 지행이 맑으며 겸손하고 마음이 높고 고상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한말 때 송사 기우만(奇宇萬)과 교유하였고 당곡사(唐谷祠) 복설에 힘을 모았으며 평생을 학문에 궁구하고 저술하며 인근의 선비들과 교류하였던 장흥을 대표하는 선비요 유교적 지식인이었다.

특히 금화(華)花) 선생은 유문집 『금화유고』에 시(詩) 100여 수를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시인이기도 했다.

선생의 유문집은 19세기 장흥 지역의 근대사와 생활 문화사 조명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화유고』의 국역화 사업 추진이 필요한 이유다.

이성호의 금화유고에 대해 해제를 한 김희태(전 전라남도문화재전문위원) 씨는 “당대의 장흥 지역은 물론 동복 등 다른 지역의 자연경관과 풍물, 세시절기, 생활사 공간, 문화유산 등을 읊은 시가 많고 교류한 문인들도 20여 명 이상이었으며, 당대의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서간문이나 기문이 많아 이를 통해 근대 장흥지역의 인문학적인 배경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문림의향 장흥의 귀중한 자산적인 가치가 있는 유고집이다”고 밝히고 “향후 『금화유고』의 자세한 해제, 영인본의 발간과 보급, 국역 주석서의 발간, 학술 자료 조사와 공유화 등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도 선생의 『금화유고』 서둘러 영인본의 발간과 보급, 국역화 발간 등이 추진되기를 기대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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