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면 고향을 생각한다. 장흥 하늘은 나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줬다. 흐릴 때도 맑을 때도 비가 올 때도 장흥 하늘은 그때그때 정서적인 위로와 자신감을 채워준 것이다. 그래서 고향 장흥은 내가 꿈을 먹고 꿈을 키운 희망의 땅이다. 사방을 부드럽게 감싼 산, 푸릇푸릇한 장평 들과 산허리를 감싸고 돈 물길이 나의 심성이다.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이 있을 터이지만 내가 자란 장흥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감성 안에서 따뜻하게 숨 쉬고 있다. 그래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고맙다. 우연히 고향 출신을 만나면 직접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어도 평생 만나온 사이처럼 포근하게 된다. 고향이라는 믿음으로 모두 녹아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향을 지킨 나의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님이 떠나시던 그날은 하늘이 잔뜩 흐렸다. 나의 슬픈 마음을 아는 듯 흐린 하늘은 함께 슬픔을 덜어준 것 같았다. 14년 전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고 다시 어머님이 가시니 고향이 지워진 천애의 고아가 된 듯싶었다. 어쩌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앞으로는 아버님 어머님이 안 계시는 장흥 하늘이 더욱 그리워질 것 같다. 어릴 적 고샅길 너머 정답게 들린 이웃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중학교 때까지 형들과 동생들이 함께 뛰어놀며 어울렸던 동네 골목길은 고스란히 내 성장 세포를 채워준 추억의 공간들이 지워질까 두렵다. 나는 자주 찾을 것이다. 광주로 옮겨왔지만 고향이고, 내 정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힘들 때 늘 나를 위로해 준 고향이 장흥이다. 장흥의 산과 들, 장흥의 하늘과 물, 그리고 장흥 사람들이 내게 채워준 선한 마음은 나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는다. 장흥에서 숨 쉰 호흡은 나의 신념으로, 가치로, 삶의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기에 그게 흐트러질 때 나는 고향으로 달려가 위로받을 것이다.
최근 장흥군이 호국원을 유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내 고향이라는 자긍심을 가졌다. 장흥은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은 지역이다. 그 사연을 우리 집안도 비껴가지 못했다. 구한말 증조부님께서는 동학의 접주로 활약하셨다. 그 유물들을 장흥군에 기부하기도 했다. 동학농민군이 마지막 격전지, 남도의 뜨거운 피가 흐른 곳이 장흥이다.
장흥 유치재는 한국전쟁을 전후로 현대사 안에서도 좌우 대립이 심했던 곳이다. 이는 희생과 피해가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호국원 유치는 남다른 감회가 들었다. 이 호국원 유치의 의미는 내 고향 장흥이 미래를 향해 던진 새로운 도약의 다짐으로 보인다.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상생, 위로와 감사로 차분한 장흥이 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장흥의 변화가 보인다. 장흥의 미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