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사설 - 천방 유호인과 만수재 이민기
204호 사설 - 천방 유호인과 만수재 이민기
  • 김선욱
  • 승인 2023.11.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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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기 경의(敬義) 정신 실천 … “천방은 천세(千歲)에 기억될 인물이다”

장흥의 선비 만수재(晩守齋) 이민기(李敏琦,1646~1704) 선생은 누구인가.

만수재 선생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자는 경징(景徵), 호는 만수재(晩守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장흥읍 건산리 출신이다.

아버지 이원욱(李元郁)이 일찍 죽은 관계로, 이민기는 어머니 순창조씨(淳昌趙氏)의 가르침 속에 자랐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며, 장흥(長興)으로 유배 온 노봉 민정중(老峯 閔鼎重,1628∼1692, 후에 좌의정 역임)에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배웠으며, 조선 중기 문신·학자로 유명했던 우계 성혼(牛溪 成渾, 1535~1598)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또 한 마을에서 먼저 살았던 천방 유호인(天放 劉好仁, 1502∼1584)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수재는 1681년(숙종 7)에 식년시(式年試)로 생원이 되었다. 뒤에 민정중이 유배가 풀려 서울로 올라간 이후, 공을 여러 벼슬에 추천하였지만, 공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과거공부를 준비하여 1699년(숙종 25) 책문일 교문관학(策文一 敎問館學)으로 장원, 책문이 관학(策問二 館學)으로 입격(入格)하여 이창명(李昌命)‧위세직(魏世稷)과 『여지승람신증(輿地勝覽新增)』을 수정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5년 후 낙향, 만수동(萬壽洞)에 칩거하며 후학들에게 강학하고 학문을 연찬하며 유학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천방의 학문을 전수받았던 이민기는 생의 중반을 천방처럼 거의 처사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당대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평가받았던 이민기는 천방의 경의(敬義)정신을 실천한 큰 선비요, 학자였다는 사실이다. 전란(戰亂) 등이 있어 창의 하지는 않았지만, 민생구제를 위해, 아니 당대 사회의 정의(定義), 공(共)을 위해 끊임없이 상소하고 민생의 폐단을 위해 아낌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이민기는 관학에 입격하여 관리로 있었을 때, 공은 충직하며 소신 있는 관리로, 유학정신에 충직한 책무를 다했던 것으로, 그가 당시 올린 여러 상소문에서 드러나고 있다.

1694년(숙종 20)에 정읍(井邑)에 원재서원(元齋書院)을 세울 것을 상소하였고, 1696년(숙종 22)에는 장흥읍 연곡(淵谷)에 노봉서원(老峰書院)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으며, 조선 중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학자였던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 1535~1598)를 비봉서원(飛鳳書院)에 배향하는 것을 주도하기도 했다.(비봉서원은 황해도 연백군, 현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서원으로 주자朱子·최충崔冲·김굉필金宏弼·이이李珥·성혼成渾·박세채朴世采 등이 배향되어 있다)

이민기는 당대 지방의 대학자로서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 43호’로 지정된 부산면 호계리별신제의 축문과 홀기 등을 저술하기도 했으며, 관직에서 낙향한 재하 학자로서 순찰사에게 당시 민생의 폐단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시하고 이를 구제, 개선하려는 사회개선책인 ‘상순상민막장(上巡相民瘼狀)’을 비롯하여, 또 흉년에 피폐한 민인의 구제 방안을 담은 ‘상순상청진황민장(上巡相請賬荒民狀)’, 토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상순상청개량장(上巡相請改量狀)’, 흉년에 피폐한 장흥읍민을 진휼하자는 ‘상순상청문장(上巡相請文狀)’ 등 여러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실로 이민기는 당대 경의(敬義)정신, 의(義)의 가치관 실천에 앞장섰던 지방의 저명한 경세학자요 장흥 유림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당대 장흥유림에서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이민기가 예양서원의 연원과 현황에 대한 기록을 비롯해, ‘예양사’라는 시에서 ‘천방 유호인의 학문이 천세에 이어질 학문’으로 평가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끈다.

이민기가 기술한 예양서원의 기원과 그 현황, 그리고 천방에 대한 시를 소개한다.

노봉선생서원창건사적(老峯先生書院創建時事蹟) : ……예양서원은 처음 영천(靈川) 신잠(申潛, 1480∼1552)을 주향으로 하고 천방(天防) 유호인(劉好仁, 1502∼1584)을 배향하였다. 그 후 안방준(安邦俊,1573∼1654) 선생의 발론으로 월봉(月峯) 김광원(金光遠,1478∼1550)을 영천과 병향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향의(鄕議)는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 惟時鄕議先以生汭陽書陽院竹川 相리爭倡至建成圭角 盖以朴玄石所論 老峯位次當在秋宰江之上 而 不當於申靈潛川配食之列 故一種論議甚有不好至定竹竹川 側反欲戲敗畿至 此殽亂極矣 玆用別紙所布如左

앞의 기문에서, 장흥의 거의 사서(史書) 관련 책자들이 예양서원의 시작을 영천 신잠을 배향하면서 시작됐다는 내용과는 다른, 즉 당초부터 영천 신잠과 함께 천방 유호인을 배향하면서 시작됐다는 이민기의 증언 기록을 확인하게 된다.

다음은 ‘예양사’라는 이민기의 시다. “군의 성곽 동남쪽이 예양강의 물가이니 郡郭東南汭水濤 / 성 안쪽의 시가와는 다른 구역인 산림에 別區城市是山林 / 긴 들판의 봄 빛깔은 푸른 강에 이어지고 長郊春色連江壁 / 긴 대에는 차 기운이 섬돌 그늘에 얽히는구나 修竹寒光繞砌陰 / 천세(千歲)에 누가 알 것인가 연하동의 가르침을 千歲誰知霞洞學/오직 한편의 기록은 조대기(釣臺記)로 읊어지네 一篇唯記釣臺吟 / 수 칸의 사당 제실은 단청으로 아름답고 數間祠廟丹靑在 / 절하는 오늘 아침 경앙심(景仰心)이 더욱 깊구나 / 來拜今朝景仰深”

이 시의 5구 ‘연동(煙洞)’은 곧 ‘연하동(煙霞洞)’을 뜻하고 연하동은 천방 유호인 선생의 기거처였다. 그러므로 “천세(千歲)에 누가 알 것인가 연하동의 가르침을 千歲誰知霞洞學”은 천방의 가르침은 천년동안 이어질 학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6구의 ‘오직 한편의 기록이 있으니 조대기(釣臺記)라네 一篇唯記釣臺吟’에서 조대기는 추강 남효온이 지금의 독취정 앞 독실보에서 낚시를 한 일화를 적은 추강의 기문(記文)을 말한다. 이는 천방의 학문이 추강을 추배함으로써 추강에게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는 아마 추강을 추배한 후 예양사에서 참배한 후 예양사에서 지은 시로 보인다.

당시 추강이 예양서원에 추배되었을 때(목은 이색은 그 이후에 추배됐다), 그때까지 예양사에 배향된 인물은 영천자 신잠, 천방 유호인, 월봉 김광원, 새로 추배된 추강 남효온 등 4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민기는 이전에 배향된 3인 중(신잠, 천방, 월봉)에서 천년 세월에 기억될 인물로 신잠도 제쳐두고, 오로지 천방만을 거론하였다. 그 천방에 대한 기억이 천방에 이어 새로 추배한 추강에게 이어진다는 의미를 이민기는 이 시에서 표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예양서원에 배향된 천방 유호인의 영향력이 당대까지도 크게 미쳤음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이민기는 예양서원과 관련한 이 ‘예양사’ 외에도 ‘추강 조대원운 秋江釣臺原韻과 ‘영천사우에 추강 선생을 머리에 모시고자 하는 일로 관산 사우들에게 주는 시 2수 靈川祠欲首享秋江先生事贈冠山士友 二首‘를 남겼다.

이로써 당시 예양서원은 예양사, 영천사로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때는 목은 예양사에 목은 이색을 추배하기 전이어서, 이민기의 시 ‘영천사우에 추강 선생을 머리에 모시고자 …’에서처럼,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늦게 추배되었지만 연대 순으로는 가장 윗자리에 있었던 추강 남효온을 종(宗)으로 모셔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던 사실도 유추할 수 있다.

이후. 목은 이색(李穡)도 추배되면서 이 5현사에 대한 연대 순(생몰연대)이 목은, 추강, 신잠, 월봉, 천방의 순이 되면서 이들 순으로 배양되었고, 예양사도 ‘오현사(五賢祠)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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