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호 사설 - 장흥이 왜 의향이요, 의병의 고을인가(1)
제206호 사설 - 장흥이 왜 의향이요, 의병의 고을인가(1)
  • 김선욱
  • 승인 2023.12.06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량 해전의 전초 기지가 된 장흥 회령포

12척(13척)으로 일본 수군 133척과 싸워 기적 같은 대승을 이끌었던 충무공 이순신 명량 해전의 전초 기지가 되었던 장흥부의 회령포진. 1597년 정유년, 당시 회령포의 회령진성은 이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 교지를 받은 후 수군 재건을 마치고 회령포에 도착한 후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취임식을 가진 역사적인 장소였다.

당시 회령포는 만호가 있었던 수군 진(鎭)에 불과했는데, 왜 하필이면 충무공이 회령포에서 수군의 해전 출정식을 거행했을까.

당시의 상황을 소환해보자.

1597년 2월 26일 충무공이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된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새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元均)은 1597년 7월 15일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대패함으로써 일본 수군이 사실상 해상 제해권을 독점, 이제는 왜군이 마음 놓고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서진(西進)하고 이어 전라도는 물론 한양 가까운 인천 해안까지도 유린할 수 있는 국면이 조성된 상황이었다.

이후 충무공이 백의종군 중 진주(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손경례 집)에 머무는 중에 삼도수군통제사 제수를 받게 되는데, 이때가 칠천량해전 대참패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1597년 8월 3일이었다.

충무공이 진주에서부터 수군의 재정비를 위한 잠행을 떠날 때, 충무공 곁에는 고작 군관 9명, 병졸 6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충무공의 1차 목표는 수군의 재건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병사와 병선, 군수물자와 군량미 확보였다. 충무공은 이처럼 수군 재건이라는 큰 목표로 잠행에 나섰던 것이다.

충무공이 왜 전라도 쪽으로 잠행을 감행했을까. 우선은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경상우수사 배설(裵楔,1551~1599)이 판옥선 10여 척을 이끌고 전라도 남해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경상도 해안은 이미 일본 수군에 장악돼 있었던 형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을 막기 위해서는 전라도 남해 연안에서 왜군과의 대첩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충무공의 2차 목표는 수군 재건을 마친 후에, ‘과연 어디서 해전에 출전할 것이냐? 어디를 해전의 전초 기지로 삼을 것이냐?’였을 것이다. 이것이 충무공의 두 번째 과제요 주요한 현안이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충무공은 남해안의 사정과 지형 지세 등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가장 먼저 전라도 남해 연안 중 ‘울돌목 해전’을 고려했을 것이다.

실제로 충무공도 울돌목의 지형적인 이점, 즉 소수의 배로 수백 척의 일본 수군과 대첩해 승리 가능성이 큰 지형의 장점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마 밤낮으로 울돌목의 전투를 수없이 상상하고 구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충무공이 울돌목 해전을 가정했다면, 그 다음으로 울돌목에서 가장 가까운 연안의 어딘가를, 즉 보성만, 득량만, 강진만 중 해남과 진도간의 해협과 가까운 곳, 일본 수군으로부터 정보도 차단하고 효과적으로 은둔할 수 있는 내항이면서 수군진이 있는 곳으로 해남현과 강진현, 보성군 사이의 유일한 부사 고을이던 장흥부의 회령포를 생각했을 것이다. 즉 장흥부 관할의 유일한 만호수진인 회령포진을 ‘해전 출정식’의 장소로, ‘해전 전초 기지’의 최적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장흥부는 서남해안에서 대표적인 부사 고을이었다. 또 충무공과는 아주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충무공의 병참 참모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자신이 옥에 수감되었을 때 선조 왕에게 나아가 목숨을 내걸고 자신의 방면을 주청했던 반곡 정경달이 바로 장흥 출신 문관이었음을 충무공이 모를 리 없었다.

또 정유재란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장흥은 ①임란 때 네 아들 원개(元凱)‧영개(英凱)‧형개(亨凱)‧홍개(弘凱)와 사위 백민수(白民秀), 조카 희개(希凱) 등과 함께 창의했으며, 자신은 군량을 조달하여 전라좌의병군(全羅左義兵軍)의 성주성 수복전(收復戰)을 승리로 이끌게 하였던 문위세(文緯世)의 고을이었고 ②의병 100여 명을 이끌고 자신의 막하로 들어와 한산도 해전에서 전사했던 위방(魏魴)을 배출한 고을이었으며 ③충무공 자신의 막하에서 조전장으로 옥포, 적진포, 율포 해전에서 전공을 세웠던 위대기·신용호·변홍달 등의 수많은 의사(義士)들을 배출한 고을이었다. 그처럼 수많은 의사들을 배출했던 고을이 바로 장흥이었음을 충무공이 모를 리가 없었다.

충무공은 또 서남해 연안 중 유일한 부사 고을인 장흥을 충절의 고장이요 선비의 고장이요 더없이 의로운 고장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선비들로부터 큰 지원과 협조가 있을 것을 고려도 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정유년 충무공이 장흥부로 잠행하는 중에 미리 장흥의 선비들에게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명을 내린 것이 정명열의 ‘정유년 일기’에서 확인된다.

“지금 곧 이통상(李統相-충무공)에게 적 탕진(蕩盡)의 명을 받았다. 남은 배나 군사(軍師)가 박약하고 군량미도 부족하다.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적을 막을 수 없다. 만일 적을 섬멸하는 데 공이 될 수 있다면, 피란선 일척과 양미 오석이라도 이통상(충무공)에게 보내드려야겠다. 이때는 정문(呈文 : 하급 관아에서 동이계통의 상급관아로 올리는 공문)도 있어 편하다. 則李統相受命於蕩敗之 餘舟師甚盡 單兵糧不足 未可以禦賊不如助 基萬一以成殲賊功遂 以 避難船 一隻 糧米五石送呈 于李統相 時有呈文以逸(ⓒ 『齊岩集』 (정명열), 106쪽)”

충무공이 장흥고을에 진입하면서, 혹은 진입하기 그 전에 미리 “군세가 미약하고 군량미도 부족하다.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적을 막을 수 없다.”등의 내용과 적을 함께 탕진하자는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정명열에게만 보냈을까. 아마 장흥부에 있는 거의 모든 선비들에게 보냈을 것이다. 정명열의 경우만 보더라도, 충무공은 이미 ‘의향의 고을’인 장흥부에는 의사(義士)로 나설 선비들도 많고 이들로부터 능히 지원도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거의 확신했음이 틀림없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정유재란 때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충무공 막하로 장흥의 수많은 의인(義人)들이 모여들었다. 백진남(白振南), 정명열(丁鳴說), 문영개(文英凱) 등 장흥의 지사 10여 명이 향선을 이끌고 후원군으로 참여했으며 이들 외에도 장흥의 많은 선비들과 수많은 상민들까지 의병으로 또는 후원군으로 참여하지 않았던가. 또 안양면 동촌 출신의 초계변씨인 변홍주‧변국형‧변국간‧변국경 등이 전선 10여 척과 노를 젓는 사람 300여 명을 데리고 통제사의 군영에 합류하지 않았던가. 또 60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 마하수도 네 아들 성룡(星龍)‧위룡(爲龍)‧이룡(而龍)‧화룡(和龍)과 함께 후원군으로 참여하지 않았던가. 또 조선 해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후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끌고 온 전선 중 부서진 8척을 장흥 출신 김세호가 장흥 의인 300여 명과 함께 수선하여 명량 해전에 참전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하여 충무공은 당초부터 장흥부의 회령포에서 ‘해군의 기포’를 작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리하여 정유재란 때 충무공의 공식적인 해전 출정 선포로, 장흥부 산하 회령포진과 회령진성은 역사적인 명량 해전의 전초 기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수많은 장흥 출신 의사들이 충무공의 막하로 모여들었거나 또는 후원군으로 대거 참여하여 결국에는 기적 같은 명량 해전의 대승을 일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써 회령포는 정유재란 때 실로 충무공의 대승전(大勝戰)의 기폭제가 되었던 곳으로 ‘의병 장흥’의 상징 같은 곳이 될 수 있었다.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