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호 사설 - 의향 장흥의 정체성, 의사(義士)들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
제210호 사설 - 의향 장흥의 정체성, 의사(義士)들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
  • 김선욱
  • 승인 2024.01.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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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독립정신, ‘통일 시작의 땅 정남진’이 장흥의 비전, 그 뿌리는 ‘의향 장흥’이다

지난 호 본란에서 강조했듯, 장흥은 전통적으로 의향(義鄕)이요, 의병(義兵)의 고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선비에게 의(義)는 최선의 가치였다. 그러므로 사림(士林)·유림(儒林)문화가 그 어느 곳보다 융성하였던 장흥은 의행(義行)에서도 그 어느 곳보다 돋보인 고을이었고, 이러한 의행의 실천이 당연스레 임진왜란·정유재란 등 국가 위란시에 의병정신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의(義)는 유가(儒家)에서는 선비가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正當)한 도리(道理)로 오상(五常, 仁·義·禮·智·信)의 하나였다. 그런데 공자 시대에 의(義)는 당연히 인간의 실천윤리로 제시되긴 했지만, 최상의 가치인 인(仁)의 하위개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맹자시대에 이르러 세상이 매우 혼탁해지고 부덕(不德)이 심화되면서 공자의 인(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강한 실천 방안이 요구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의(義)의 사상’이었다.

그리하여 맹자는 의(義)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하나로 정의하고 특히 의(義)에 있어, 맹자는 “목숨(생명)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의’ 역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라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할 것이다.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孟子』 告子上편)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즉 맹자는 의(義)의 정신을, 나를 버려서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설사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선택해야 하는 정신으로 주창한 것이다. 여기서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이른바 부정이 아닌 정의요,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公的)인 것이다. 한 마디로 공적인 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 의(義)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비정신에서, 수많은 선비들이 국가 위란 때 기꺼이 목숨을 담보로 창의하고 의병으로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장흥은 이러한 선비정신이 투철하여 장흥을 의향이요, 의병의 고을로서 전통을 이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흥 고유의 의의 정신, 곧 절의(節義) 정신은 조선조 말 동학혁명 때는 동학정신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독립운동으로 발현되었다.

특히 장흥군의 경우, 장동면 해동사에서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항일독립운동의 영웅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사당을 1955년에 설립하고(죽산안씨 안홍천씨가 순흥안씨인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 죽산 안씨 문중에서 안의사 사당을 건립하였다.) 안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가운데 해마다 안 의사 제향을 지내왔다.

안 의사가 누구인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통감으로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살한 ‘하얼빈 의거’의 주인공이요, 민족정기의 표상이요, 호국충절의 사표요, 대한 남아의 기개와 민족정신을 전 세계에 떨쳤던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안 의사의 정신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대한제국의 독립’이었다.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의 전날, 자신의 굳은 뜻을 담은 ‘장부가(丈夫歌)’ 마지막 구절에서 “만세 만세여 대한 독립이로다 / 만세 만만세여 대한 동포로다”고 외쳤다.

안중근과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의 ‘단지 혈서 태극기에 표현된 ‘대한독립’ 기록에 이은 장부가에 분명하게 표현된 구절은 ‘대한독립(大韓獨立)’이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안중근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여기서 대한(大韓)은, 당연히 일본과 합방 이전의 우리나라 국호였던 ‘대한제국(大韓帝國)’을 말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재판에서 미조부치 검사관이 “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는가?”라고 물었을 때 안중근은 분명히 “내가 이토를 죽인 것은 나 한 사람의 원한 때문이 아니오. ‘대한 제국의 독립’과 나아가서 동양의 평화를 위한 사명이기 때문이었소.”라고 확실하게 대답한다. 당신의 대한제국은 조선조 말 대한반도(압록강-백두산-두만강 이하)의 영역이었던 그 대한반도였다.

그러므로 안중근의 정신은 지금의 남북한으로 분단된 통일된 한반도의 독립이고 해방이었다.(물론, 안 의사의 항일 독립운동은 간도-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당시 간도와 연해주는 우리 민족의 고토古土로, 일찍이 고조선을 잉태한 우리 민족의 발상지였다. 특히 19세기 말엽에는 우리 민족이 대거 이주하여 1백여만 명이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 거주하던, 우리 역사 속에서 명명백백 검증된 우리 민족의 영토요, 우리의 고토였다. 특히 19세기에 우리 민족의 대거 이주로 간도지역은 우리 민족이 실질적으로 간도의 주인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일제 시대에는 청산리대첩과 봉오동전투 등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의 무대였다. 그러므로 안 의사가 말한 대한제국은 한반도 뿐만이 아니고 우리의 고토였던 간도 지역을 포함한 대한大韓, 바로 ‘해동국海東國’의 독립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해방 이후 간도는 사실상 중국령으로 고착화되어버려 간도의 통일한국의 영속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 의사의 소원이었던 대한독립은 아직도 미완으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중근의 정신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흥군이 70여 년 기려 온 것이다.

지금의 민선 8기의 김성 장흥군수는 민선 6기 말, 해동사를 중심으로 한 안중근 사당 성역화 사업을 설계하고 국비(70억) 용역을 추진, 민선 7기 들어 안중근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 추진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선 8기 들어 김성 군수는 관산읍 우산리 ‘정남진 전망대’에 통일기원탑 조성, 통일기원동산 조성 등으로 정남진을 ‘통일 시작의 땅’, ‘남북통일 시원’으로 조성하는 역사를 추진 중이다.

조선조 의향이요, 의병의 고을이었던 장흥의 전통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절의(節義)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안중근 의사를 70여 년 동안 장흥에 모셔와 안 의사의 정신을 기려 왔고, 안 의사 사당을 성역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안 의사의 정신이 발현된 통일 대한반도의 독립 정신의 계승과 확충을 위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정남진 장흥을 ‘통일 시작의 정남진’으로의 이미지 구축과 그 통일기운을 확산하고 확충시키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장흥이 미래 비전의 하나로 내세우는 안중근의 독립 정신, 통일 시작의 땅이요 통일기운의 정남진이 될 수 있는 그 뿌리는 ‘의향이요 의병의 고장으로서 장흥의 역사요 전통’이었다.

장흥 전통의 뿌리인 의향의 정신, 곧 절의(節義)의 정신이 오늘날 안중근의 대한독립 정신, 통일기운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향 장흥’의 정체성을 보다 확실하게 더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수많은 장흥의 의사(義士)들을 조명하고, 잊혀지고 묵어져가는 ‘의(義)의 자원’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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