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의 전통금융기관 농업협동조합
109년의 전통금융기관 농업협동조합
  • 정남진 장흥신문
  • 승인 2018.12.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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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12

양기수/장흥향토사연구회장

우리나라에 근대적 금융제도가 도입된 것은 개항 2년 뒤인 1878년 일본의 다이이치은행(第一銀行)이 부산에 지점을 개설하면서부터이다. 전남지역의 근대적 금융기관은 1897년 목포항 개항후인 1898년 10월1일 다이이치은행(第一銀行) 목포출장소의 설치가 그 효시이다. 이에 자극을 받아 국내에서도 1897년 2월 한성은행(구 조흥은행, 현 신한은행)이, 1899년 대한천일은행(구 상업은행, 현 우리은행)이 민족자본에 의한 은행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국내 민족자본에 의한 은행은 운영에 있어 자본의 약화로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고 우리 국민들이 은행에 대한 신뢰감을 쉽게 주지 않았다. 그런데다 1904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목표로 화폐개혁의 실시하였고, 1905년에는 금융공황으로 타격을 입어 일반서민에까지 빠르게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1906년 3월에 이르러 대한제국의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다(目賀田種太郎)가 식민정책의 하나로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전을 위한 자금 대부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농공은행조례”를 발표케 하고, 지방 상공업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공은행(農工銀行)”을 설립하여 부동산 담보대출과 지방 공공단체에 대한 무담보 대출, 그리고 농공업자 20명 이상의 무담보 연대대출을 시행케 하여 지방 농공업의 발전을 도모케 하였다.

이어 1907년 5월30일 칙령 제33호로 ‘지방금융조합규칙’을 공포하여 지방금융조합을 결성케 하면서 주업무를 농업자금의 대부로 하고 부수사업으로 창고, 위탁판매, 공동구입, 통화의 정리, 농사개량 등을 시행케 하였다. 특히 미곡 담보대부를 장려함으로써 농촌에서의 미곡 수집과 공업상품의 판매를 강화하여 농촌의 최하 단위까지 화폐경제권에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근본 취지는 일본의 식민회사에 대한 자금 공여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농촌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지방금융조합은 농민 및 지방 중·소상공업자 등 서민층의 금융을 도우려는 목적의 사단법인체로서 오늘날 신용협동조합과 비슷한 “금융조합(金融組合)”이었다.

이 규칙에 따라 전국 최초로 “광주지방금융조합”이 1907년 8월24일 창립하게 됨을 개기로 각 군단위에 금융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1910년 6월까지 130개소로 늘어났다.

장흥에는 1909년 7월12일 장흥읍 기양리 66-2번지에 “장흥지방금융조합”이 처음 설립되었고, 이후 1919년 8월3일자로 장평금융조합이 장평면 용강리에 그리고 고읍금융조합이 1928년 12월27일자로 관산면 죽교리에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는 1914년 5월 새롭게 지방금융조합규칙을 공포하고 조합원은 1구좌에 10원의 출자의무를 지며, 종래에는 우리나라사람에게만 한했던 조합원의 범위를 일본인 농민에게까지 확대하였다.

1918년 6월29일 칙령 제13호로 지방금융조합령을 개정하여 ‘지방금융조합’을 지방이라는 이름을 빼고 ‘금융조합’이라 개칭하고 시가지를 구역으로 하는 도시금융조합 설립을 인정하였다.

당시 정부는 “금융조합”을 은행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1926년 3월25일 “조선농회령(제령제1호)”과 “산업조합령(제령제2호)”를 발표하여 군마다 “농회(農會)”와 “산업조합(産業組合)”을 별도 설립케 하여 금융조합 창립당시 부수사업으로 운영하였던 창고운영, 위탁판매, 공동구입, 농사개량 등의 업무를 분리하여 전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따라 1928년 3월27일 되어 창고운영, 위탁판매, 공동구입 등을 담당하는 “장흥산업조합(長興産業組合)”을 장흥읍 예양리에 설립한 후 장흥읍 건산리 705번지(현 정남진농협부지, 구 흥성도정공장부지)에 창고를 지어 옮겨 와 업무를 보면서 산업조합은 판매사업으로 저포(苧布;모시) 면포(綿布;무명)를 주로 하였고 후에 쌀도 취급하였으며, 구매품으로는 비료, 저마(苧麻) 마사(麻絲) 기계나 경제용품을, 그리고 초창기에는 창고업과 작업장을 대여 등을 하다가 나중에는 트럭운송, 표백설비, 정미설비 등의 이용사업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섬유공업을 주로 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은행회사조합요람(1929∼1942, 동양경제시보사)과 전국주요기업체명감(1956∼1957, 대한상공회의소)에 보인다.

한편, 농회(農會)는 그 시작이 작물 적지 재배, 자급비료 증산, 농기구 개량, 유축농업 촉진을 위한 모임으로 민간에 의해 운영되었던 비영리단체로 출발하였다. 그러다가 1910~1919년의 초창기에는 권농모범장(勸農模範場)과 도 종묘장(道 種苗場)을 비롯하여 농사개량기관에서 지주회, 권농회, 농우회, 권업회 등 관제 단체를 조직하였다. 이들 관제 단체는 일본인 관리와 대지주가 주축이 되어 조직된 타율적인 단체였으나 당시 정부는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1926년 각종 단체를 통합한 후 작목별로 계통농회(系統農會)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농사개량지도사업을 군단위로 시행하면서 군수가 농회의 회장이 된 후, 1921년부터 군에 기술지도원을 배치하여 지도토록 하였다.

농회의 주요사업은 작물의 적지재배, 자급비료의 증산, 농기구의 개량충실, 유축농업(有畜農業)의 촉진, 농업에 관한 조사 및 연구, 소작쟁의에 관한 조정 및 중재, 농산가공의 정비확충을 위한 기술지도의 철저와 농업시험기관의 정비충실에 따른 연구의 강화, 공동구입·판매사업 등으로 일제의 농업정책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를 운영하는 데는 의사결정기관인 총회, 집행기관인 회장·부회장·평의원, 집행보조기관인 이사·주사·서기·기수 등이 있었다.

장흥읍지 일명 무인지(戊寅誌 1938년간) 금융조(金融條)에 의하면 장흥금융조합의 조합원이 2,515명으로 예금은 10,938명이 56,481원, 대부는 2,116명이 88,264원을 하였으며, 장평금융조합의 조합원이 2,094명으로 예금은 3,325명이 20,481원, 대부는 1,297명이 149,358원을 하였고, 고읍금융조합의 조합원은 2,356명으로 예금은 6,164명이 90,561원, 대부는 162명이 328,348원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장흥읍지 일명 무인지(戊寅誌 1938년간) 관원조(官員條)에 의하면 장흥산업조합에는 조합장과 이사가 각1명이고 감사가 내지인 1명과 조선인1명, 평의원에 조선인 10명과 내지인 1명, 서기1명 고원(雇員)3명 감정원이 내지인과 조선인이 각각 1명이 있었으며, 장평면에는 산업조합 지소를 두어 2명이 업무를 보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각 군청에 농회를 두어 기술지도원을 배치하여 기술지도케 하면서 군농회의원 12명과 장평, 장동, 안양, 대덕면에는 각2명의 군농회의원이 남면은 4명, 관산면은 6명의 군농회 의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장흥읍지는 기록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1933년에 들어 금융조합은 장흥산업조합과 연합하여 “대한금융연합회”가 되어 장평, 고읍, 대덕에 지소를 두어 운영하다가 해방을 맞자 농회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고, 장흥산업조합은 해방 이후 “장흥산업조합직물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존치 되다가 농업협동조합 발족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금융조합은 1957년 2월3일 “농업은행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1957년 2월17일 “금융조합”을 “농업은행”으로 명칭을 바꾸고, 1958년 10월20일 농업협동조합이 새롭게 발족하게 되었으나,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 모두가 활동이 미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5·16 당시 혁명정부는 농협의 개편을 서둘러 1961년 7월29일 법률제670호로 “농업협동조합법”을 제정하고 ‘농업은행’과 ‘농협조합’을 합병하여 1961년 8월15일 “농업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설립하였다. 새롭게 설립한 당시 농협조합은 이동(里洞)조합과 군조합 그리고 농협중앙회로 나뉘어 조직되었다. 당시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뿐 만 아니라 1965년 6월부터는 공제사업을 시작하고 지도사업 등을 겸영(兼營)하는 종합적인 농업협동조합 형태를 취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동조합은 농촌지역의 자원이 부족한데다가 조합당 조합원수가 100여명 정도로 영세하여 독자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 1970년대에 들어 대단위 합병운동을 벌여 장흥의 경우 180여개의 이동조합을 10개의 ‘읍면단위농업협동조합’으로 통합하였다.

장흥은 1972년 8월5일, 용산은 1970년2월24일, 관산은 1971년 8월21일, 대덕은 1970년 10월22일, 회덕단위농협은 1969년10월3일, 안양은 1973년 3월23일, 장동은 1972년 10월4일, 장평은 1970년 1월10일, 유치는 1972년 10월4일, 부산은 1974년 9월28일자로 각각 통합을 마쳤다.

1981년 1월1일 ‘장흥군농업협동조합’을 “농협중앙회 장흥군지부”로 이름을 바꾸고 1909년 7월12일 장흥읍 기양리 66-2번지에서 “장흥지방금융조합”으로 출발한 농협 장흥군지부 사무실을 1987년 8월 건산리 715-4번지(현 위치) 구 “장흥토목관구사무소” 부지를 매입하여 신축 이전하였다.

이후 “농협중앙회 장흥군지부”는 2011년 3월11일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에 관련한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2012년 3월2일 현재의 “농협중앙회” 산하의 ‘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 장흥군지부”는 “NH농협은행 장흥군지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5년 12월26일에는 유치농업협동조합이 장흥농업협동조합과 부산농업협동조합을 흡수 통합하여 “정남진장흥 농업협동조합”으로 명칭을 바꾸고, 대덕농업협동조합은 2006년 2월10일 회덕농업협동조합을 흡수 통합하여 “천관농업협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장평농업협동조합이 2006년 5월20일 장동농업협동조합과 통합하여 “용두농업협동조합”으로 이름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장흥군에는 6개소의 단위농협과 단위농협 소속으로 4개소의 지점이, NH농협은행 장흥군지부와 농협은행 군지부 소속의 출장소 1개소가 운영 중이다.

사람들은 가끔씩 “NH농협은행” 과 “○○농협” 즉 “단위농협”에 대한 차이점을 묻는 이들이 있다. 농협의 상징표식도 같고 하는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NH농협은행과 단위농협과는 서로 다른 회사이다. 단위농협은 지역농민이 출자하여 운영하지만 NH농협은행은 단위농협들이 출자하여 만든 “농협중앙회”에서 설립한 별도의 금융회사가 “NH농협은행”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금융회사지만 농협중앙회가 전국의 각 단위농협의 업무를 조율하고 대표할 뿐 아니라 ‘NH농협은행’이라는 명칭으로 은행 업무를 보기 때문에 단위농협과 NH농협은행간 여수신업무에 대한 협약으로 농협을 이용하는 이용객에게 편의를 도모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NH농협은행은 말 그대로 은행으로서 제1금융으로 공금융에 속하고 단위농협은 제2금융으로 사금융에 속한다. 때문에 NH농협은행 창구에서 펀드와 보험을 팔수 있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운영하는 예금공사에서 5천만 원까지 보장해 주지만, 단위농협은 창구에서 펀드나 보험을 팔 수 없고, 예금에서 문제가 생기면 농협중앙회에서 자체적으로 보장해 주게 된다.

그리고 단위농협은 지역농민들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관계로 단위농협의 운영 여하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있게 되고, 운영의 부실을 초래한 단위조합은 그대로 파산을 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NH농협은행은 만약 파산에 이르게 되면 각 시군 NH농협은행이 동시에 고사하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달리 표현하자면 단위조합은 농사를 직접 짓는 부모와 같고, NH농협은행은 열심히 농사지어 보내준 부모의 돈으로 공부하여 좋은 회사에 들어가 잘 나가고 있는 아이들과 같다.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아이는 부모를 돌보듯 하는 관계에서 농촌지역의 기반을 단단히 다져가는 오늘날의 ‘단위농업협동조합’과 ‘NH농협은행’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농협을 운영하는 그들의 노력이 지역경제와 문화를 선도하여 군민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도록 투자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小庭♣

사진1. ▲장흥읍 기양리에서의 장흥금융조합 직원

사진2. ▲해방 전 장흥산업조합 직원

사진3. ▲현재의 NH농협은행 장흥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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