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호 사설 - 초계 변씨 13인 의열(義烈) 정신도 조명되어야 한다
제217호 사설 - 초계 변씨 13인 의열(義烈) 정신도 조명되어야 한다
  • 김선욱
  • 승인 2024.03.27 11: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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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국가 위란을 맞아 수많은 장흥의 선비들이 창의하거나 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하는 등 장흥의 의병전정을 드높였다. 이중 장흥 의병사에 일가족이 모두 참전하여, 일가족 또는 일문 일족의 절의정신을 빛내는 경우가 많았다.

명량해전에서 주촌 마하수 의병장이 아들 넷을 모두 대동하고 참전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풍암 문위세도 임란 때 네 아들 원개(元凱)‧영개(英凱)‧형개(亨凱)‧홍개(弘凱)와 사위 백민수(白民秀), 조카 희개(希凱) 등과 함께 창의했다.

정명세(鄭名世,1550∼1593)도 임진왜란 후 충청 해미 현감으로 부임, 호서지방의 의병장이 되었으며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아군이 전멸한 후 군사 5~6명과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는데, 이때 진주성 전투에서 그의 아우 명립(名立)‧명홍(名弘)도 같이 순국하였고 또 정명세의 또 다른 아우 정명원(鄭名源,?∼1593)도 임란 때 청안(淸安) 현감으로 부임한 이후, 괴산‧음성이 적에게 붕괴된 후 거의 혼자서 왜적을 맞아 수많은 왜적을 참살한 후 순절했는데, 결국 정명세 4형제가 모두 순절한 것이다.

김여중(金汝重,1556∼1630)도 임진년에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여 창의하여 금산, 무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김여중의 종제(從弟) 김여홍(金汝弘,1552∼1628)과 김여강(金汝剛,1572∼1597), 김의룡(金懿龍,1574∼1627)도 임계영 막하와 변사정 막하에서 의병으로 참여하였는데 김여강은 정유재란 때 삼협(三峽) 전투에서 종횡무진으로 적을 참살하다가 순절하니, 공의 나이 26세였다

또 정유재란 초기 때 안양면 동촌 출신의 초계 변씨 변국형‧변국간·변국형 등 3형제가 향선 10여 척과 노를 젓는 사람 300여 명을 데리고 이충무공 통제사의 군영에 합류하여 전투에 참전하였던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 중 초계 변씨들의 참전은, ‘초계변씨 13충훈 열사의 참전과 순절’로 이어져 장흥 의병사를 더욱 빛낸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초계변씨의 본향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이다. 현재 장흥군에는 3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안양면 모령리 목단마을 입구 야산에 10세조 이조참판 변효경 등 이하 선조를 모신 묘각 덕후재(德厚齋)가 위치한다. 매년 11월 둘째 주 토요일 후손들이 시제를 모신다.

이들 ‘초계 변씨 13인 충훈 유허비’는 안양면 수양리 357-2번지, 구 안양서초교 앞 밭두렁에 세워져 있다. 이 유허비는 수양리 태생의 후손 변익수(27세, 1917-1933), 변상호(28세, 1932년생)의 성력과 지원으로 1968년 세워졌다.
이들 13인 충훈훈 유허비 인물 중 변국간·변홍건·변홍부·병홍랑·변덕황·병홍달 등 6인에 대해서는 임란 때 도원수를 지낸 권율 장군의 1592년 이치대첩 공훈을 기리기 위해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 세운 ‘원수 권공이치대첩비’와 충장사(금곡사)에 관련 공훈자로 모셔져 있다.

이들 초계변씨 13인 중 변국경 3형제 집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장흥 초계변씨의 시작은 충청도 태생으로 동복현감을 지낸 13세 변온(卞溫,1474~1554)으로부터 비롯된다. 변온이 지금의 안양면 동촌에 입촌하여 입향조가 된다.

이후 16세 변국형‧변국간·변국형 3형제 대에 이르러 동촌 마을 변 씨의 성세가 두드러진다. 이 3형제 중 변국간은 특히 전라도 병마절도사 등 7곳의 병·수사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들 3형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고 이들의 아들대인 17세, 손자대인 18세 후손들도 임진왜란 때와 명랑해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순절하며 이른바 초계변씨 13충훈훈 의절의 주인공이 된다.

장남 변국형은 홍원‧홍제‧홍주 3남을, 차남 변국간은 홍건‧홍달‧홍적‧홍선 4남을, 삼남 변국경은 변홍량을 두었다. 그런데 이들 17세 8종 형제 모두가 다 명량해전 등에서 충무공을 돕거나 장흥 지포해전 등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섰다가 순절한다. 그리고 18세 중 17세 변호홍주의 아들 변덕황, 변홍건의 아들 변덕장, 변홍달의 아들 변덕일과 이들과 종형제로 알려진 변공의(부는 17세 변종영)까지 18세 4명의 종형제 역시 모두 정유재란 등의 전장에서 순절한다.

초계 변씨들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참전과 순절은 충무공의 조모, 모친이 모두 초계 변씨여서, 이른바 충무공의 외척인 이들이 충무공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국난 극복에 앞장서면서 장흥을 ‘의병의 고을’로서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졌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하여 17세 8인, 18세 4인에 16세 변국간(명종 때 북병사로 오랑캐를 수차 무찔러 7도 병마사를 역임하였다)까지 포함하여 ‘13인 충혼 열사’가 탄생되기에 이르렀고, 후인들이 그들 변씨들의 고향인 동촌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에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13인의 의열비’ 즉 ‘초계 변씨 13충훈유허비’를 세우니, 그 유허비가 지금도 실존해오고 있다.

한편 마산 출신의 변연수(1538∼1592)‧변립(∼1597)도 임란 때 순절, 초계 변씨 13인 의열과 이들 2인을 포함하여 초계 변씨 15인을 ‘임란 조계 변씨 15충의사’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변연수(卞延壽)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마산 출신의 무신·의병장이다. 자는 오원(吾元). 변남룡(卞南龍)의 9대손이며, 아들은 변립(卞笠)이며, 며느리는 안동 김씨이다. 변연수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변훈남(邊勳男)에게서 수학하였고, 무예에도 능하여 『조선명현록』에 ‘문무를 겸전한 명장’이라 기록되어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가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전쟁에 참여하였다. 옥포 해전에서 이순신, 김효성(金孝誠) 등과 함께 왜선 30척을 격파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고, 당항포 해전에 아들 변립과 함께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선무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리 성구사(誠久祠)에서 향사하고 있다. 정문(旌門)을 세워 공을 기리고 병조판서를 추증하였다. 변연수 부자와 며느리 안동 김씨의 충, 효, 열(烈)을 표창하여 세운 ‘변씨 삼강려(三綱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도 있다.

이들 초계변씨 13인 충혼 정신은 의미가 크다.

변씨 일족의 멸문도 고려하지 않고 참전, 국란에 참전, 장렬히 순사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흥의병 정신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늦었지만, 이들에 대한 조명운동이 추진되어야 하고, 찾는 이 없이 쓸쓸히 세워져 있는 안양 수양리의 ‘초계 변씨 13충훈 유허비’를 이충무공과 연관이 깊은 회령진성으로 이설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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