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럼- 장흥에 역사박물관을 만들자
■시사컬럼- 장흥에 역사박물관을 만들자
  • 정남진 장흥신문
  • 승인 2018.12.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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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수/시인, 본지 논설위원, 장흥향토사연구회장

동동리 진골목을 지나 북문고개 넘어에 살다가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떠났던 옛 친구가 찾아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명석하여 공부도 잘했고 늘 명랑했던 친구로 뒤늦게 객지에서 고생하며 야학으로 대학까지 마쳐 지금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며 사는 어린 시절 나와는 다정한 친구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휴대전화를 해왔을 때. 난 그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우리는 토요시장 국밥집에서 만났다. 배고픈 시절 늘 먹어보고자 했던 따끈한 국물의 소머리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을 먹고 싶었다 한다. 우린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날로 돌아갔다.

그 친구의 이야기에는 지금도 법원통과 진골목, 늘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칠거리의 차부. 천변도로에 나뭇짐을 놓고 맛있게 먹었던 시장통의 폿죽, 그 친구의 기억에는 아직도 5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들어있었다.

그동안 힘들게 살면서 몇 차례 고향에 내려왔지만 친구들을 찾아 차분하게 옛 얘기를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한다. 우선 고향에 내려오면 고향을 떠나던 날의 기억만을 되세기곤 하면서 열심히 오늘의 삶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한다.

이제 고희의 나이가 되어 조금은 여유가 생기니 몸이 예전과 같이 않고, 자꾸만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느낌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어 옛날을 기억해 날 찾았다 한다. 다정하기만 했던 친구기에 그동안 아득히 들리는 그의 소식에 내 마음 한 켠에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만이 있던 친구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딱히 이렇다 할 얘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나를 기억하고 찾게 된 깊은 인연의 사연을 들먹이는 것은 지금은 아물어진 그의 아픈 상처를 새삼스럽게 건드릴 것만 같아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옛날에 함께했던 그 길과 골목들을 함께 걸어보자 했다.

서초등학교 골목을 통해 ‘예양서원’과 ‘영회당’ 골목을 지나 아직 남아있는 비탈의 10평 남짓한 작은 집들을 보며. 먹을 것은 없었지만 평균 6∼7명의 형제자매들이 아웅다웅 지내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래도 그때는 정이 있던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 조선시대부터 근 현대에 이르기 까지 약 오백여 년 동안 종3품인 장흥도호부사가 집무를 하는 동헌의 남쪽에 있어 붙여졌다는 ‘남산공원’이 아니냐며, 봄이면 벚꽃이 유명해 인근 고을에 거주하는 상춘객이 몰려 장흥의 상가를 활기있게 했던 남산공원의 영화를 얘기하여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남산공원의 명명유래와 화려하고 성행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난, 그 친구에게 시대의 변화로 줄어든 인구에 나이드신 어른들이 많고 전국유일의 “문학관광특구”인 만큼 현임 정종순 군수께서 남산공원을 어른들의 건강을 위한 “산책의 길”과 시나 명문장 한 소절만이라도 읊조리며 걷을 수 있는 “문학의 길” 그리고 인생의 삶을 반조해보면서 무엇이 인간의 진정한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숲”을 기획하여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남산공원이 자신의 꿈과 야망을 키웠던 곳이라 했다. 그는 봄보다는 여름과 가을에 이곳을 자주 올라와 지금은 시가지가 되어버린 한들을 내려다보며 여름철 푸른 너울과 가을의 황금 너울이 이는 이곳을 모두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야 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한다.

우린 ‘장흥읍성 남문터’와 경찰서를 거쳐 내려오면서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진 옛 이야기를 했다. 문자를 모르던 할머니를 대신해 전보와 전화를 했던 우체국, 울며 때를 쓰는 아이에게 ‘말 안듣는 아이는 순사가 잡아간다.’며 겁을 주던 경찰서. 서남부 6개 고을사람들이 법원에 일을 보러와 고민에 차 설친 잠을 청하던 일제시대 2층건물의 여관, 어린 날 주린 배를 자극했던 짜장면집, 한 여름 순간의 시원함으로 삶을 행복하게 했던 어름과자 아이스케익을 만들었던 집, 유행의 첨단을 걷게 하기위한 즐비한 양복점과 양장점, 인연의 끈을 맺게 하고, 한때 유명 사업가와 정치가들이 들끓던 다방은 어떤 사유에선지 빈터가 되어 승용차들이 긴 하품을 하며 낮잠을 자는 곳이 되었다. 어린 시절 오로지 돈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 알았던 금융조합과 조흥은행만이 우리가 반갑다는 듯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반겼다.

당시 장흥초등학교를 다니던 그와 나의 기억에는 동교다리를 건너자마자 전도관과 주조장, 그리고 유치 길목에 국자조합과 산업조합의 큰 창고들도 사라져 버리고 말굽을 박던 솟부리 공장 또한 흔적을 감추었다. 다만 우리의 기억을 튼튼히 잡고 있는 ‘고려상회’라 했던 지금은 이름이 바뀐 문방구점과 ‘문화당’이라는 서점이 대를 이어 영업을 하면서 아직 우리를 잊지 않고 맞아드렸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의 한 쪽을 차지하던 토목관구, 손공장, 흥업회와 열동네는 모두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 얘기꺼리로만 남게 되어버렸다.

한들 들판 한가운데에 ‘공용버스터미널’을 세워 힘들기만 하다는 불평을 늘어놓던 어르신들의 불평이 벌써 한세대를 한참 넘기고 보니 벽해가 상전이 되었고, 까까머리였던 그 친구와 나의 머리는 수건을 두른듯 하얗게 되었다. 또한 얼굴에 세월의 흔적으로 가로와 세로로 금을 그어 놓았다.

헤어지기 전 그 친구가 말했다. 객지에 살면서 가끔씩 방송이나 지상에 올라오는 장흥의 ‘토요시장’과 ‘우드랜드’ 그리고 어느 고장에도 없는 ‘문학관광특구’가 소개될 때에는 나도 장흥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졌고, 객지에서 사귄 다른 친구들과 내 고향 장흥 ‘노력항’에서 내 자동차를 가지고 싼값에 제주를 빠르게 갈수 있다는 자랑을 하며 함께 가자고 약속했는데 폐쇄되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옛 어른들의 문자나 역사에 대한 공부가 천박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문림의향(文林義鄕)’이나 ‘문림고을 장흥’이라는 장흥군을 소개하는 별칭을 들으면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잠시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게 하고, 옷매무새를 살피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내가 어린 시절 지냈던 동문안과 칠거리가 호남의 남부중심으로 오백년 도읍지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아 감회로웠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옛 건물에 간단하게나마 건물의 내력과 역사를 소개한 글들이 붙어 있음을 보고 ‘역시 내 고향 장흥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하는 야은(冶隱) 선생의 시를 읊조리더니, 그는 고향을 떠날 때 굳게 마음먹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지금은 다소 소원해졌었는데 오늘 다시 고향을 둘러보니 당시의 꿈을 굳건하게 만들었다며 자신의 꿈을 상기시키게 만든 장흥읍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옛 조흥은행 자리나 금융조합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그 건물을 이용해 ‘한반도 서남부의 중심고을이었던 옛날을 기억하고 장흥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박물관’을 세웠으면 한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기회가 되면 군정에 반영하여 꼭 역사박물관을 세우도록 군수에게 건의하라는 당부를 하면서 “좋은 관광자원을 방치하면 안된다.” “시대에 앞서가는 창조적적인 발상에 시기를 놓치면 놓친 만큼 경제적인 손실이 크고, 다른 고을과의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없다”면서 옛날의 관광과 요즘의 관광 실태를 비교해가며 내일의 관광에 대하여 논리적인 설명을 곁들여 설명하는 사업가다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친구는 오늘 멀리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아왔다고 했다. 장흥시장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소머리 국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왔다는 말에 처음엔 배고프게 지낸 세월의 한을 풀기 위함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들의 고향인 장흥의 미래를 생각하고 더욱 발전하는 내일을 준비하도록 불을 붙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큰 꿈을 주기위한 행보였다. 자신의 고향 장흥이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향우로서 자신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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