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17-장흥군 시장의 변화와 정남진토요시장(1)
■역사산책 17-장흥군 시장의 변화와 정남진토요시장(1)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3.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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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수

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장흥향토사학회장

“시장”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 상품을 팔고 사는 장소’ ‘특정한 상품이 거래되는 곳 또는 상품의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추상적인 기구’라고 적혀 있다. 또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 파는 일, 또는 그러한 곳이라 했다. 곧 주기적 또는 지속적으로 교역이 이루어지는 한정된 장소를 이르는 말로 장터의 의미를 말한다. 이러한 시장을 우리는 예전에는 “장시(場市)”라 부르던 것을 일제 개화기에 들어 “시장(市場)”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장시’나 t'시장‘보다 우리는 “장(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시장에 대한 규정은 1914년도에 “시장규칙”을 제정하여 시장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이 규칙에서는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제1호시장, 공설시장을 제2호시장, 위탁 및 경매를 통한 어물 및 청과물시장을 제3호시장으로 구분하였다. 일제 말에 이르러 5일장 중에서 상설시장으로 바뀌는 곳이 생기고 지방 중심지에는 아침 저녁으로 2∼3시간씩 서는 시장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번창한 곳은 종일토록 벌이는 전일시장이 되었다. 따라서 도시의 근대적 상업조직과 농촌지역의 재래시장이 공존하는 이중구조의 시장조직을 갖게 되었다.

이후 우리 정부가 들어서 새롭게 “시장법”(법률 제704호)이 1961년 8월31일 제정 공포되었다. 이법에 의하면 ‘시장이라 함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말한다.’ 라 하고, 상설시장은 ‘이 법에서 정해 놓은 시장개설 요건을 갖추고 일정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대통령이 정하는 수의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교환 이나 기타 이를 지원하는 용역을 제공하는 영업장을 말한다.’고 하였고, 정기시장이라 함은 ‘일정 구역 안에서 규정에 의한 시설기준을 갖추고 정기 또는 계절적으로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여 물품을 매매, 교환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용역을 제공하는 장소를 말한다. 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정기시장은 상품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이냐? 연속적 또는 매일 이루어지느냐? 에 따라 상설시장과 구분한다. 최근 재래시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 재래시장이라 함은 ‘기 개설 허가된 시장 중 1980년 이전에 개설된 시장으로 시설이 노후화 되어 재개발 및 근대화의 필요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 이는 ‘시장법’에서 시장으로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구분하여 차별적 정의를 하는 것과는 달리 재래시장을 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 개설 허가된 시장이란 1961년 제정된 ‘시장법’에 의해 시장 개설허가를 얻은 기존의 시장으로서 본래의 상적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고유의 전통시장을 의미한다. 또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없지만 재래시장의 기준년도를 1980년 이전으로 설정한 것은 통상적으로 노후불량건축물의 재개발 년 수와 개설 허가년도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통건물의 년 수가 10∼20년이 지나면 재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낙후되고 노후화된 전근대적인 유통시설인 시장을 시간적, 편의적 차원의 재래시장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해 정의하면, 재래시장이란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상시 또는 계절적으로 집합하여 물건을 구매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매장 또는 장터로서, 주로 근대적 유통시설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 대략 1980년 이전에 개설된 상설시장 또는 정기시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래시장이라는 개념에는 근대적인 대규모 소매 기능이 취약하고 건물시설이 노후하여 대부분 재개발 및 근대화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하여 법적으로 구분한 시기는 2002년도에 제정 공포한 “중소기업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 조치법”에서 재래시장에 대한 정의를 확고히 하였다.

■ 시장의 기능과 장흥의 장시 개설

▲부상의 반수 임명한 차정첩

 

이러한 시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시장이 생성된 시대나 연원은 신라시대부터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문헌으로 추적가능한 시장의 형태는 고려시대 전기로 보고 있다. 당시의 시장은 물물교환 형태의 자연적 시장이었고, 시장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때는 조선 태종 때부터라 할 수 있으며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시장(市場)”이라 하지 않고 “장시(場市)”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있어온 시장제도를 발전시켜 1412년(태종 12) 한양의 도성 안에서의 무질서한 상행위를 막고자 남대문 등지에 행랑(行廊)을 지어 상인에게 임대해 준 관설(官設) 점포인 공랑상점(公廊)이라하는 시전(市廛)과 육의전(六矣廛)을 좌상(坐商)으로 설치하여 지금의 도시 시장과 같이 상설화 하였다.

지방의 시장은 열리는 날이 정기적인 시장으로 2일장, 3일장, 5일장, 10일장, 15일장, 연시(年市)등이 있었으나 가장 보편적인 시장은 한 달에 6번 열리는 5일장이었다. 5일장은 1·6일, 2·7일, 3·8일, 4·9일, 5·10일의 다섯가지 형태로 열린다. 예컨대 1,6일 장은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 열리는 장이다.

그러나 지방의 장날이 5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학자들은 지방의 정기적인 장날은 한 고을의 인구와 교통 및 수송, 상품의 생산성 등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오면서 과정에서 5일이라는 시간과 30리 또는 60리라는 공간이 체계화되어 이루어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예컨대 5일장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대체로 하루 걸어서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30리 내외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을별로 장날이 어떻게 날을 정하였는지에 대하여도 확실하게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전하는 이야기로는 풍수설(風水說)에 의해 장이 열리는 고을의 산세를 오행(五行 ; 목·화·토·금·수)으로 구분하여 정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곧 지역의 산세가 목형(木形)해당 되면 3,8일. 화형(火形)이면 2,7일. 토형(土形)이면 5,10일. 금형(金形)이면 4,9일. 수형(水形)이면 1.6일로 정하였다는 설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록을 살펴보면 시장이 열리는 날이 불변이 아니라 시장발달의 제반 요인에 따라 시대적으로 조금씩 바뀌었음을 살필 수 있어 꼭 풍수설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앞서 살핀바와 같이 시장의 개설은 인구와 촌락의 형성, 지역사회의 경제적 기반, 교통과 수송수단의 방법 여하에 따라 시장의 규모가 크고 작음으로서 인근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지방의 행정중심지가 지방시장의 중심지가 되어 인접해 있는 다른 작은 장터를 연이어 돌며 상품 판매와 거래를 할 수 있게 전개된 듯하다. 때문에 지방의 중심이 되는 곳이 인구는 물론 시장의 교통이 좀 더 발달하였고 상대적으로 도소매업이 성행하게 되어 인근 지역의 생산물을 도시에 공급하는가 하면 타 지방의 산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됨으로 지방의 중심시장이 되는 시장일이 우선 풍수설에 말하는 장날로 확정된 후 인근 작은 소도읍의 시장도 이에 준하여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의 시장은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에 제한이 없는 ‘보통시장’이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특정의 상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수시장’이 발달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가축만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가축시장’, 어류만을 다루는 ‘어물시장’, 곡물만을 다루는 ‘곡물시장’, 장작이나 숯 등 땔감을 공급했던 ‘시탄시장’(柴炭市場) 등이었지만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대구와 전주, 원주 등지에서 열렸던 약령시(藥令市) 등이다.

전라도 장흥부 지도
전라도 장흥부 지도

 

그러나 일반적인 소도읍의 시장은 대부분 5일장이었다. 5일 만에 열리는 시장은 일정한 날짜에 아무런 설비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보부상(褓負商)과 같은 지방 행상들과 부근의 주민들이 모여 식료품, 의류, 도자기, 가축, 농기구 등과 같은 물건들을 교환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이 컸다. 따라서 부피가 적고 가벼우며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속칭 봇짐장사라 하는 보상(褓商)과 무게나 부피가 크고 값이 비교적 낮은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이른바 등짐장사라 칭하는 부상(負商)은 시장의 소매상인이나 행상들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각 연안의 포구에 자리 잡고, 지방에서 오는 객상(客商)들을 위해 화물의 도매, 위탁판매, 보관, 운송업 등과 금융업, 여관업을 겸하던 여각(旅閣)이나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거간(居間)하며, 여러 가지 부수 기능을 담당한 중간상인인 객주(客主)는 대도매상과 중도매상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각 궁(宮)과 관부(官府)에 필요한 물자(貢物)의 조달을 맡았던 어용적(御用的) 공납청부업자인 공인(貢人)의 상업적 활동도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조선왕조의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이 집약되어 국왕의 정무총람으로 활용된 1808년경에 기록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농본주의적 유교사회 속에서의 상업은 억압정책과 뿌리 깊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관으로 특히 지방의 시장과 상업 발달을 저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소도읍에 인구의 과밀화와 농축산물 집산지로서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조선시대 중종ㆍ명종 시대에는 전라ㆍ충청ㆍ경상 등 3남 각지에 시장이 파급되어 형성되기 시작하여 순조 때(1801∼1834)에는 전국에 약1000여 개의 시장이 생겨났다. 그러나 조선시대 나라의 각종제도와 문물제도의 연혁 등을 기술하여 실용에 도움이 되게 하고 경국제세(經國濟世)의 도구로 삼으려 1903년부터 1908년 사이에 칙명(勅命)으로 편찬한 ‘중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조선 말기에는 전국의 시장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19세기 후반에 거듭된 일련의 반봉건적 농민 운동과 자연재해 및 질병 등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와 사회 경제적 혼란에 따른 농촌 경제의 피폐화가 그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장흥에서 옛 시장에 대하여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는 장평면 민가에서 보관 중인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에 대한 “차정첩(差定帖)”이 있다. 이 자료는 당시 실질적인 부상 조직의 운영을 맡았던 “반수”(班首)에 임용됐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임용장이다. 이 차정첩은 1895년 4월 보부상을 관리하는 상리국(商理局)에 발급된 장평면 출신으로 알려진 김준권(金準權)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차정첩에는 “장흥·강진·영암·해남·진도군 반수(班首)의 일을 맡김. 산하 부상 중 공사장(公査長)을 맡은 자 중에서 잘 살피어 적힌 자를 임명하여 보내니 이에 맞추어 시행하기 바람. 반드시 첩이 그에게 이르게 하라. 오른쪽의 좌사(左社) 김준권(金準權)이다. 을미년 4월”(行長康靈海珍班首位差定事 場內負商中公査長差定 位遣盡以察任宜書者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右下金準權 乙未四月)이라 적혀 있다. 여기서 반수(班首)란 보부상 임원으로서 실질적인 조직을 운영하는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다. 이에 의하면 당시 보부상도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의 관하로 볼 수 있는 장흥·강진·영암·해남·진도군을 관장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어 보부상에 대한 조직구조와 함께 각 고을의 객주(客主)를 매개로 하는 시장 상인들과 거래 관계 그리고 각 면 단위의 자치기구인 임방(任房) 조직의 거래관계도 상상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1910년대 장흥장 전경
1910년대 장흥장 전경
1930년대  장흥 시장
1930년대 장흥 시장
1950년대 장흥장 전경
1950년대 장흥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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