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청향(寶林靑香), 조선후기 차 문화와 청태전 [ 1 ]
보림청향(寶林靑香), 조선후기 차 문화와 청태전 [ 1 ]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5.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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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전 국가중요농업유산등재 1주년 특집

이정호(야천서예연구원장)

“보림청향”이라 이름 할 수 있는 우리 장흥의 전통차 청태전이 2018년도에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긍심을 가질 만 합니다. 따라서 본 청태전의 모태가 된 떡차와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를 되새겨보고 특히, 조선후기의 차인과 관련된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 차의 원류를 찾아 정리해보기로 합니다. 인용 자료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박학천재(薄學淺才)한 제가 원고를 싣게 되어 오히려 우리 고아한 차 문화와 연구에 누가 될까 염려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초의선사의 말씀처럼 사특함이 없이 차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감 없는 질정(質正)이 있길 바라며, 장흥땅이 키우고 장흥사람이 만든 청태전차가 지역을 뛰어넘어 국내외에서도 많은 찬사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 乙亥 봄, 汭陽停舍에서 野川 李井鎬


Ⅰ. 보림떡차와 청태전의 탄생

■ 조선후기의 차 문화

  고려시대에 흥성했던 차 문화는 조선시대 접어들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차의 수입도 원활하지 않았고 국내 차 생산도 시들해졌다. 왕실과 사찰뿐 만아니라 민간에서도 차에 대한 관심은 외면되고 있었다. 다만 차는 일부 상비약처럼 사용되어질 뿐이었다.


  18세기의 조선시대 음다풍속을 전해주는 자료로 1757년 기록인『부풍향다보』가 있다. 부풍은 부안의 옛 지명이다. 이 기록은 필선 이운해(李運海, 1710~?)가 부안 현감으로 있으면서 고창 선운사의 차밭에서 찻잎을 따서 7종의 향차를 제조한 기록이다. 조선 후기에 정리된 최초의 다서로서 가치가 높다. 이후 40여년이 지난 후, 조선 차 문화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은 최근까지 묻히거나 다산의 저술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동다기』와 저술자 이덕리의 발견이었다.

우리 차 무역을 주장한 이덕리의 이 기록은 조선 후기의 차 문화를 다시금 되살리는 불씨가 되었다. 이러한 불씨를 더 지피며 조선차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중국차 전매제도를 분석하여『각다고』를 저술하였다.

이후 홍현주의 요청에 의해 초의선사가『동다송』을 저술함으로 중국 수입차에 밀려난 국산차에 대한 관심은 경화사족을 중심으로 사회적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바람은 일제강점기까지 유지되어 오다 한국전쟁등 사회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우리차 문화는 다시금 침잠해져 갔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성행했던 떡차에 대한 자료와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755년 이운해는 『부풍다향보』에서“선운사에는 이름난 차밭이 있는데 관민이 채취하여 마실 줄을 몰라 보통 풀처럼 천하게 여겨 부목(땔감)이나 쓰니 몹시 애석하다”하였고, 1785년 이덕리의『동다기』에서는“우리나라는 차가 울타리 가나 섬돌 옆에서 나는데도 마치 아무짝에 쓸모없는 토탄처럼 본다”또 우리나라 풍습이 비록 작설을 사용하여 약에 넣기는 해도 대부분 차와 작설이 본래 같은 물건인줄은 모른다. 때문에 차를 채취하거나 마시는 자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정민교수 자료 참조). 

이후 50여년이 지난 1837년 초의의『동다송』기록에서도 지리산 화개 칠불선원의 승려들도 다 쇤 잎을 따서 볕에 말려 나물국 삶듯 솥에서 끓여 내오는 무지함을 개탄하였다. 이처럼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기 까지 조선의 차 문화는 명백히 끊어진 상태라고 분석된다. 또한 음다문화에 관해서도 이덕리는“권세 있는 집안의 잔치자리에서 중국에서 구한 차를 꿀에 타서 내온 일이 있는데,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입으로는 칭송했지만 정작 마실 수는 없었다고 참으로 촌스러운 일이라 개탄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까지 우리차 문화는 잊히거나 변질되어 오던 것이 1755년 부풍향다보와 이후 30년 후의 동다기, 다시 50여년 후의 동다송을 중심으로 차와 그 문화가 토착되는 과정과 떡차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청태전의 원류와 현대적 가치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다음호에 계속)

▶ 항윤석(1729-1791)의 '이재난고'표지   본 기록에 이운해의 '부풍향다보'가 기록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차서로 꼽힌다.
▶ 항윤석(1729-1791)의 '이재난고
'표지 본 기록에 이운해의 '부풍향다보'가
기록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차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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