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22-장흥의 육상교통과 운수산업의 발전(1)
■역사산책 22-장흥의 육상교통과 운수산업의 발전(1)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5.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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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의 최초의 차 포드(유실됨)
가솔린 엔진의 최초의 자동차
1839년 페달 달린 자전거 
순종이 탔던 어차 캐릴락(1918년형. 등록문화재 318호) 
칼 폰 드라이스 드라이지네(1817)-세계 최초의 조항 가능 자전거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 라이트 바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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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수/본지논설위원, 시인, 장흥향토사연구회장

육상교통수단의 발명과 보급

탈것을 이용하여 사람이나 짐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을 교통(交通)이라고 하고, 비교적 큰 규모로 사람을 태워 나르거나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운수(運輸)라 한다.

조선 시대, 성종의 명에 따라 노사신 등이 조선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을 기록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면, 장흥에서 서울까지는 8백80리로 10일이 소요되고, 전주감영까지는 3백70리로 4일 반이 소요되며, 강진군의 병영까지는 30리로 반나절이 소요된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특별한 이동수단이나 운송수단이 없어 주로 걸어 다녔고 소나 말 등을 이용하여 물건을 옮기었다. 사람들이 지게나 우마차 그리고 배를 언제부터 이용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뚜렸하게 찾아지지 않는다.

오늘날과 같은 육상교통과 운송수단은 반듯이 순차적이지는 않지만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 순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발전은 도로의 확장과 개설 그리고 문질문명의 발전이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전거의 발명과 보급

자전거는 바퀴를 굴려 사람의 힘만으로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장거리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탈것이다. 인간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탈것 중에선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발명품으로,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으며, 인류 10대 발명품에도 들어가 있다. 바퀴의 개수에 따라 외발 자전거(unicycle), 두발 자전거(bicycle), 세발 자전거(tricycle) 등으로 나뉘지만 보통 자전거라고 하면 가장 흔하고 널리 보급된 두발 자전거를 의미한다.

자전거는 자전차, 자전거 두 가지 다 사용되지만 국어사전에서 자전차는 잘못되었다고 명시한다. 축약어로는 경상도에서 주로 쓰이는 '잔차'가 있다. 유치원생쯤 되거나 그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따릉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전거는 1817년 독일인 ‘카를 폰 드라이스(Baron Karl von Drais)’가 만들어 소개한 ‘드라이지네(Draisienne)’라고 소개한 자전거이다. 이 자전거는 사람이 손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발로 땅바닥을 차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 뒤 자전거가 달리는 동안에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1839년에 페달이 달린 자전거가 만들어졌다. 오늘날과 같이 체인과 기어로써 바퀴를 돌리는 오늘날과 같은 자전거는 1885년 영국의 존 켐프 스탈리(John Kemp Starley)과 월리엄 힐먼(William Hillman)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공기가 든 타이어가 장착된 것은 1888년에 영국의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이 발명하였다

이렇게 개발되고 발전한 자전거를 우리나라에서는 서재필(徐載弼)이 미국에서 돌아온 후인 1895년에 처음 소개하고 독립문 공사현장을 둘러봤다는 기록이 있고, 1896년 당시 예조(禮曺)의 외국어학교 교관으로 그리고 예식관(禮式官)이었던 고희성(高羲誠)으로 자전거를 타고 장안을 달렸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그 외에 1898년 유치호(尹致昊)가 타고 다녔다는 설이 전한다. 자전거가 처음 들어왔던 당시는 축지차(縮地車)라고 불렀으나 1903년대에 정부가 자전거(自轉車)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자전거는 1910년 한일한방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자전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여 1930년대까지 다소 많은 양이 들어와 중산층이상의 교통수단으로, 상인들의 운반수단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오토바이의 발명과 보급

오토바이는 가솔린 기관을 장치하여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2륜 자동차이다. 보통 뒷바퀴가 기관에 의해 움직이고, 앞바퀴는 방향을 잡는다. 자동 자전거라고도 하며, 오토바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에 이미 일본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미국어 오토바익(autobike)으로 영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和製英語)로 이 말이 당시의 조선으로 건너왔다. 영어권에서는 모터사이클(motorcycle), 모터바익(motorbike), 오토바이클(autobicycle) 라고 부르며, 그 외에도 모터(moto)나 사이클(cycle) 이라는 약칭을 사용한다. 영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바익(bike)이라 하면 자전거 즉 바이시클(bicycle)을 의미한다.

오토바이는 1869년에 프랑스의 마차 수리공인 피에르 미쇼(Pierre Michaux)의 아들 에르네스 미쇼(Ernest Michaux)가 증기 기관을 단 것을 처음 개발하였고, 1885년 11월 독일의 ‘다임러자동차’의 설립자인 고틀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가 자신이 새롭게 설계한 가솔린 엔진을 나무로 만든 자전거에 붙여 ‘타 는차(riding car)’라는 뜻을 붙여 ‘라이트바겐(Reitwagen)’ 이라는 두 바퀴를 가진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이 오늘날의 오토바이 이다. 오토바이가 대중화 된 시기는 1900년도 이후이다.

오토바이는 기관의 총배기량에 따라 50cc 정도의 소형부터 300cc 전후의 중형, 500cc가 넘는 대형 등이 있다. 또 구조도 차체에 걸터앉아 타는 정통적인 것에서부터 자전거에 50cc 이하의 보조 엔진을 단 모페드(moped), 양쪽 발을 가지런히 하고 앉는 스쿠터(scooter), 차체 옆에 승객 전용칸을 붙인 사이드카(sidecar)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밖에도 용도에 따라 짐을 싣거나 이동을 위해 사용하는 실용형, 취미나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나 레저용, 특별한 경기를 위해 만든 경주용 등이 있다.

오토바이는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므로 힘이 들지 않으며 두 바퀴로 달리기 때문에 좁은 길도 거침없이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보다는 싸기 때문에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로가 번잡해지고 외부에 노출되기 때문에 배달이나 순찰 등의 특별한 목적이나 스포츠나 레저용 외에는 사용자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바이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세운 원두우(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의 아들인 원한경(元漢慶, Horace Grant Underwood)이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것이 시초였다.

자동차의 발명과 보급

자동차란 사람이나 말이 끌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라는 뜻이다. 일찍이 16세기 초에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태엽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고안했고, 1599년 네덜란드의 시몬 스테핀 (Simon Stevin)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그리고 1680년에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증기의 반동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고안했다. 그러나 실용적인 자동차가 만들어지기는 1763년에 영국의 와트(James Watt)가 증기 기관을 발명한 뒤의 일이다. 1769년에 프랑스의 니콜라 조제프 퀴뇨(Nicolas-Joseph Cugnot)는 바퀴가 3개 달린 수레 앞에 증기 기관을 달아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것이 자동차의 시초이다. 이후 1885년 11월, 독일의 고틀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가 오늘날의 자동차처럼 가솔린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발명했다.

한편, 자동차의 바퀴도 처음에는 마차 바퀴처럼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몹시 덜커덕거렸느나, 1835년부터는 고무바퀴가 사용되다가, 1888년에 영국의 수의사인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이 튜브를 넣는 타이어를 발명한 뒤로 자동차는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자동차를 만들려면 한 대씩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자동차 값도 매우 비쌌다. 그래서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 )는 자동차 값을 말 한 마리 값과 같게 만들면 많은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하여, 1903년경 대량생산방식과 일관작업공정이라는 대대적인 생산혁신을 도입하여 미국의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거대한 산업국가로 변모시켰다. 그 후 이러한 방법으로 자동차는 온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자동차의 종류는 용도별로 보면 적은 인원(6인 이하)을 운송하는 승용차, 주로 화물을 운반하는 트럭, 뒷좌석에 많은 인원을 태우는 버스 그리고 구급차, 소방차, 청소차, 불도저 등 특수한 용도로 사용하는 특수차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는 1903년 고종(高宗)의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식(稱慶式) 때 사용을 위한 대한 황실 의전용으로 미국인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4~ 1932.12)을 통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판매상 '프레이저'로부터 포드의 A형 4인승 무개차 1대를 어차(御車)로 수입한 자동차 이다. 알렌은 1884년 대한제국에 와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자로, 최초의 서양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을 세워 고종의 신임을 받고, 고종의 어의를 지냈다. 그리고 외교관으로도 활동한 자 이다. 그러나 이 대한국(大韓國) 최초의 어차는 이듬해 러일 전쟁 중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후 1908년 황실 의전용으로 수입한 2대의 차이다. 한 대는 고종용으로 영국제 흑색 다임러 리무진이고, 다른 한 대는 순종용으로 프랑스제 적색 르노 리무진이다. 1910년 한 대를 더 수입한 차가 현재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캐딜락이다.

그 이후 조선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가 1911년 자동차를 들여온 후 일본인들과 국가 대신들이 자가용을 타고 다니기 시작해 1913년경부터 비로소 일반 국민의 자동차 시대가 개막 되었다. 이후 부유층의 자가용과 운수사업용으로 들여오기 시작하고 판매와 서비스 회사까지 생겨나 1945년에는 7,386대로 보유대수가 늘어나면서 광복을 맞았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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