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통신 15 -상기하자 6‧25
■호반통신 15 -상기하자 6‧25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6.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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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山月/시인

6‧25 한국전쟁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1950.6.25.-1953.7.27.까지 3년 1개월 1129일 간의 전쟁이었다. 이때 우리 대한민국을 지원한 나라가 63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참전국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 지원국 32개국 복구 지원국 7개국, 물자지원 표명국 3개국을 포함해 모두 63개국이다. 지금까지 정전 66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남북 분단과 끝없는 대치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6‧25 한국 남북전쟁의 상흔은 우리들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더욱이 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이 왜,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관심조차도 없다.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황당한 말까지 입고 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91년 붕괴한 옛 소련이 보유한 핵탄두는 무려 4만5천기에 달했다. 훗날 러시아는 미국과 체결한 전략무기 감축협정에 따라 상당수를 해체하고도 현재 1만1천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8,500기 정도이다. 그러기에 구 소련이 냉전시절 과도한 군비경쟁과 빵을 빼앗은 일당 독재체제를 열어보니 속이 텅텅 빈 강정이었다. 북한 역시 일반 군비경쟁이 아닌 핵탄두와 미사일이라는 엄청난 화력에 재정을 쏟다 보니 그들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구 소련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더욱이 공산주의 이상과는 동떨어진 부패와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와 인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기에 북한의 안정을 위협하는 급변사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군은 북한정권 붕괴시 핵무기 처리 등에 대비한 전쟁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불원간 핵무기 실전배치를 선언하는 상황이 온다면 동아시아는 핵무기 생산 경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북한이 계속 추가 핵 대응에 나서다 보면 국력은 더욱 소진되어 자폭하게 될 것이다.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몰락을 자초한 구 소련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는 북한은 돌이키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 제거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거듭 주장하고 있으나 성사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북한의 추가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더욱 강화되는 만큼 북한 내부의 불안정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군사적 충돌이나 핵물질 유출, 또는 핵탄두 사용으로 인한 급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현정부는 그러한 급변 사태까지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지난 6‧25 한국전쟁에서 우리 국군은 13만 8천여 명이 전사했고, 45만이 부상당했으며, 포로와 실종이 3만3천여 명이나 되었다. 미군은 교체병력까지 178만 9천 명을 파병해 병력 피해가 13만 7천여 명이나 되었다. 유엔군 포함 병력 피해는 총 15만5천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맥아더 동상 철거니 뭐니 하는 황당한 소릴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에티오피아의 참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6‧25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쉘라시에 황제의 은혜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쉘라시에 황제는 6‧25 전 유엔 총회에 나아가 전쟁시에는 약소국을 도와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게 유엔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로부터 두 번의 침략을 받았던 쉘라시에 황제는 그후 강한 군대를 양성하였다. 그러하여 한국전쟁 당시에는 3,518명을 파병(부대명:강뉴)해 657명의 병력을 잃었다. 황제는 말했다. ‘장병들이여,가라! 가서 전쟁이 이기고 살아서 돌아오라! 만약 전쟁에 지면 살아서 돌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들 에티오피아 장병들은 포로가 없었다. 포로가 되면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지면이 허락한다면,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을 기습 남침한 국방부 증거자료를 추스려 보려 한다. 첫째, 공개가 이미 된 구 소련의 비빌문서엔 1950년 3월 30일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북한주재 소련대사가 ’50,6.15. 본국에 보고한 문서에는 6월 25일 새벽에 진격한다고 공격 개시일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북한군 정찰명령 제1호(1950.6.18.)에 공격준비는 6.22. 24:00까지 완료하도록 되어 있다. 넷째, 전투명령 제1호(1950.6.24.)에는 공격개시 이후의 임무를 명시하고 있다. 다섯째, 북한군 제3사단 참모부 지령에 병사들은 6.24. 19:00까지 식사 종료 후 공격준비, 23:00에 공격선에 도착 공격준비를 완료하도록 했다. 여섯째,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에는 김일성이 전쟁을 발의하고 스탈린이 승인했다고 쓰여 있다. 일곱째, 전인민군 작전국장 유성철은 내가 남침 선제타격 계획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자, 사실이 이러한데도 어느 노조는 우리가 사실상 북침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피흘려 싸운 전쟁터에서 오늘의 부를 일구어 놓았는데도 가당찮은 소릴 함부로 해댈 터인가! ‘어느 쪽으로 통일이 되든 되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라고 어처구니 없는 소릴 하는 자도 있다. 오직 1%만이 누리는 북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로 통일이 되었어도 좋단 말인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기필코 전쟁은 피해야 한다.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이다. 피아간에 사람을 죽여야 만하는 전쟁에 강산은 초토화되어 병마까지 휩쓸고 지나진다. 6‧25 전쟁시 이곳 장흥 유치 일대는 아무것도 남아나질 않았다. 인명 피해는 또 얼마이던가. 그 춥고 떨림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피난살이는 인간의 삶이 아닌 형극의 길이었다. 뉘라서 평화를 말하는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공산 독재체제인 북한을 가까이 두고 있는 한 우리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상기하자. 6‧25는 우리에게 크나큰 비극을 남기었다. 대한민국 만년사에 지워지지 않을 생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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