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2)
■특별기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2)
  • 장흥투데이
  • 승인 2019.08.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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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에서 겪은 1주일, 8월 21일, 22일 겪은 그날

김재열/전 장흥향교 전교

8월 15일 출정군인들의 해산 그 자리에서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장흥읍 남산공원에서 경찰서장의 전쟁을 쉬게 되었다. 는 소식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었다.

읍내시가지에서부터 촌락에까지 그날은 감격과 환호와 함성으로 밤을 새우며 마을 사람들은 농악을 울리며 마을 잔치를 벌리고 끝없는 환호와 환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새날은 시내가 어떤가? 시민들의 움직임도 알고 싶고 보고자한 호기심 아니면 새로운 시사를 얻으려고 나가보았다. 사람마다 환희에 찬 얼굴빛으로 마주친 분들과 반가운 인사 교환을 나누었다. 읍사무소 앞의 광장은 별일보다 즐거워 누구에게나 새로운 소식을 들은 정보를 얻으려 읍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지방에서 낯익은 지성미 있고 덕망 있어 보인 어른들 읍사무소에 모인 것은 나오라고 해서 나옴이 아닌 자기 재능을 봉사하려고 왔다 란다. 어른나이였으나 저명하신 분들이었다. 일본인들의 집은 문이 굳게 깊이 닫혀있다. 시민들의 같은 처지라 새로운 소식을 들어보려고 자기 생각을 말하면 그게 새로운 정보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17일 친구들을 만나면 아는 것이 있을까 나가본다. 읍사무소 앞에 “시국대책위원회” 간판을 달고 있다. 지방의 유지 어른들이 간판 건너편에서 직역봉사하며 시내도로에는 까닭 없이 왕래하는 시민들의 많아 질서유지를 하려는 지방유지들이 가득햇다. 다음날 읍사무소 공고판에 시국대책위원회 잠정적 대표자를 발표하는 공고가 붙었다.

군수는 현 문 군수

경찰서장 교사출신 손석민孫錫玟

읍장 교원출신 김중기金中基

교장 현 교사 고정흠高正欽

우체국장 박00

금융조합장 여익지

전매서장 차00

8월20일에 청년단을 조직한다기에 무덕관에 가보았다. 복장을 받아 입고 단가 노래연습을 하고 있었다. 군에서 돌아온 청년과 지방에 있는 청년으로 구성했단다. 일본 군복과 군화까지 흡사 일본군같으나 조선청년단이란 완장이 다를 뿐이다. 시가행진을 읍사무소 앞으로 시장통을 거쳐 남외로 무덕관으로 돌아온단다. 청년단가가 흥미로웠다. 80여 단원이 사열종대로 당당히 행진함이 거창스럽기도 향토를 보안하고 나아가서는 국군으로 편성할 것이란다. 처음들은 단가가 흥겹기도. 단장은 문병곤이란 장대한 청년이었다. 행진하면서 부른 단가는 보무도 당당하였다.

흘으는 강물 높이 솟은 매뿌리

무궁한 이 동산에 새날이 왔네

만사 만만세

우리 조선 만만세

우리 조선 만만세

22일이었다. 23일에 해방 후 처음 등교하는 날이니 예비 소집한다고 장흥초등학교 아동들은 준비할일이 있으니 전일 나오라는 연락이 있었다. 어린 동생이 있기에 데리고 나갔다. 식량증산한다고 운동장을 개간하고 콩을 심었으니 학생들을 프라다나스 나무 그늘로 모이게 하였다. 며칠 전까지 일본어 상용이라 해서 우리말 한마디만 해도 벌을 받던 아이들이다. 우리말로 사죄한 교사의 말이 있을 때 마다 웃음바다였다. 교사 소개를 “샌새이”를 “선생님”하는 것도 우습기도.

고정흠 선생님-다가시마(高島)

안도영 선생님- 다개야마(竹山)

이길우 선생님-쓰기시로(月城)

모두 모여라! 웃을 수 밖에 ~아쓰마래 하다가 어색한 선생들 웃는 학생들.

일본인 교사가 반수이상 이였으니 중학교 이상 졸업생들을 위촉하였다. 교재가 문제되었다.

일본인들은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고 밤낮으로 한번씩 일본인 가정을 젊은이들이 순회 보호하였다. 외딴 사안리의 요시미(吉見), 연산리의 모리모도(森本), 행원잣두의 다무라(田村)집은 횟수를 더하기도 했다. 면단위에 적게 사는 일본인은 장흥으로 이사 오게 하였다. 일본인 장흥회(日本人 長興會)를 조직하고 오오가미조기찌(大神文吉)가 회장이 되었다, 한국어가 능숙하고 한국인과 교류를 많이 하고 있는 분이었다. 장흥회 사람들은 차례대로 부산으로, 일본으로, 수문포에서 배를 대절하여 귀국케 하고 회장 가족과 시모가와(下川), 와다나배 등 이해성 있는 가족들은 11월 1일~2일경 76명은 작은배 2척에 나누어 마지막 수문포항에서 출발하였다.

뒤에 가던 배가 대마도 지난 곳에서 미군이 설치하여 철거하지 않은 기뢰에 부딪혀 침몰하였다. 그 때 일부 구조도 되었으나 장흥회 회장 오가미 가족은 부인, 본인, 아들내외가 익사하고 16,7세된 손녀 둘만 살았다. 그 손녀는 바바후지애(馬場富土技)는 장흥 고향 방문을 7~8회 했으며 2017년까지 왔었다. 지금도 90세인데 고향 방문을 하겠단다.

1986년 장흥회 간사 사사오가(笹岡 )가 고향 방문한 이래 나가마쓰(永松), 다가다(高田), 미모리(三森) 등 등 많은 이가 방문을 하고 김인규 군수 근무 시 32명이 대거 방문하였던바 있으며 지금도 조오노부요시(城信義)회장 외 2세 3세가 더러 방문 온다.

필자가 안내 통역하며 장흥회에 2회 참석한 적 있으며 장흥회지 책자에 기고도 한적 있다.

생존한 장흥회 회원분들과 전화 편지 왕래한데 나라는 비롯 다르나 고향은 어찌 잊으리오.

“저 억불산 탐진강은 나의 돗자리요 여러 고향인들과 함께 “아배”를 미워할께요.

내 고향 장흥이여 날로날로 달라짐은 자꾸 가보지요.“

-타향에서 후지애(富土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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